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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뭘 해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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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5-11 11:57 조회4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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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맛있는 걸 먹을 때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누구도 배가 부르기 전에는 그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진 않는다. 우리는 일차적 본능을 채우려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많은 본능 중에 억제할 수 없는 생존 본능, 식욕. 식욕이 해결돼야 다른 욕망도 불태울 수 있다. 장을 보고, 다듬고, 씻고, 썰고, 지지고, 볶고, 끓여서 요리를 한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하며 정성을 들인다.

 

인도에 도착한지 몇 개월이 지나자, 한국 쌀이 동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이곳 남부 쌀로 밥을 하니, 후 불면 날아갈 듯 힘없는 기다란 쌀밥이 맛이 없다고 애들이 먹질 않는다. “먹을 게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벌레 같아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오늘은 무얼 싸줄까, 고민해서 힘들게 싼 도시락을 아들은 한 숟갈도 뜨지 않고 되가져오곤 한다. 누가 북부 델리 쌀이 맛있다 하여 구해서 찹쌀을 잔뜩 넣고 밥을 했다. 밥알은 길지도 않고 찰기도 있었다. 애들은 차츰 먹기 시작하더니 이젠 반찬 타령이다.

 

모든 야채와 고기를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카레, 짜장, 하이라이스, 볶음밥도 먹질 않는다. 해줄게 없어 자주 해줬더니 질렸단다. 즐겨 먹던 달걀, 김도 이젠 보기 싫단다. 샌드위치, 토스트만 먹겠다 하여 며칠간 그것만 해줬더니 이젠 빵마저 안 먹는다.

 

냉장고, 냉동고를 열어보니 해 먹을게 없다. 창고에 쌓였던 통조림 참치, 햄 몇 박스도 다 먹어 치웠다. 3년 먹을 수 있는 양을 사왔는데, 먹을 게 없다 보니 1년 만에 모두 동이 났다.

 

먹을 게 없다. 마땅한 한국마트가 없어 사먹을 것도 없다. 매일 먹는 것이 거기서 거기니 질리기도 하고 입맛도 없다. 먹을 게 없으니 한국서 안 먹고 버렸던 유효기간 지난 식품, 온갖 화학성분 들어간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과자류, 탄산음료, 단 주스를 먹게 된다. 건강을 염려하기 전에 먼저 먹게 된다.

 

한국 본사에서 이곳의 열악한 사정을 알고 가끔씩 원하는 식 재료를 지원해주는데도 금방 떨어지고, 뭘 해 먹을까 고민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뭘 해 먹지, 뭘로 도시락을 싸고, 뭘로 하루를 버틸까, 걱정한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반찬을 만들어 두 애들의 도시락을 싼다. 안 먹고 가져와도 싸준다.

 

“다 먹어. 그냥 주는 대로 먹어.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다 맛있어져. 이 나라에도 먹을 게 없어 굶주린 애들이 많아.”

 

반찬 투정하는 아들한테 매일 잔소리한다. 어떻게 하면 밥을 잘 먹을까, 이런 저런 요리를 해보고, 한국서 가미하지 않던 당류를 넣고, 어떻게 해서라도 입맛이 돌게 하려고 궁리하고 반찬을 만든다. 그런데 안 먹는다.

 

우유는 맛이 없어 안 먹고, 멸치, 생선 류는 자주 먹지 못해 맛을 잊어버려 안 먹고, 야채볶음, 김치도 안 먹고, 그 흔한 과일 마저 안 먹는다.

 

“도대체 뭘 해줘야 먹겠니?”

“고기, 매일매일 새로운 것.”

 

이렇게 안 먹어서 요리 하는 것조차 하기 싫을 때는 그냥 하루 한 끼만 먹거나, 식사대용으로 알약 같은 것 하나만 먹으면 만사 해결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노상 더운 날씨 때문인지, 나도 입맛이 없다. 매콤한 비빔막국수, 할머니 표 보쌈, 고소한 콩국수, 가마솥 순두부, 꼬들꼬들한 회 한 접시, 지금쯤 한창 물오른 산에 난 나물들이 들어간 산채 비빔밥, 청국장, 만두, 고유의 우리 음식이라면 뭐라도 화들짝 맛나겠다.

 

시장을 본다. 감자, 양파, 토마토, 양배추, 당근, 오이, 가지. 야채만 잔뜩 산다. 귀한 소고기, 돼지고기, 해물 류는 왕복 3시간을 투자해야 살 수 있는 거리여서 못 사고, 마음먹고 사서 냉동고에 보관해도 금방 다 떨어진다.

 

밥할 시간이 다가온다. 오늘은 또 뭘 해 먹지.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맛있어지는 마법의 가루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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