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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 포토 저널리스트 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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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작성일14-07-19 12:08 조회1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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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성폭력, 아프간 산모 사망 렌즈에 …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
여성인권 불모지, 분쟁지역 찍는 유일한 한국 사진기자
성폭력 고발 '콩고의 눈물' 세계적 주목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은 기금 전해
한때 공황장애·우울증에 빠지기도
작은 변화 돕는 '심부름' 계속 할 것

세계 분쟁지역을 카메라에 담아온 정은진씨. “취재 현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거의 매일 일기를 쓰며 푼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여기, 기사 머리에 작은 사진 한 장이 있다. 환한 빛이 들어오는 허름한 건물에 한 여인과 아이 둘이 서 있다. 여인의 이름은 마시카 카추바. 장소는 중앙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이하 콩고) 동쪽에 자리한 미노바시다. 1998년 콩고 반군 12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남편마저 잃었던 마시카는 이곳에 민간단체를 설립하고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여성 19명과 부모 잃은 아이 49명을 돌보고 있다. 절망의 과거와 희망의 현재가 교차하는 풍경이다.

프리랜서 포토 저널리스트 정은진(44)씨는 지난 한 달간 콩고를 다녀왔다. 2008·2009년에 이은 세 번째 방문이다. 그는 이번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모은 나비기금을 전달하고 왔다. 나비기금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대협이 콩고·베트남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및 자녀들을 지원하기 위해 2년 전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에 만들었다. 위안부 할머니와 일반인의 작은 정성이 저 멀리 아프리카까지 전해진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받았던 이들의 만남이다.

정씨는 중동·아프가니스탄·아프리카 등 국제분쟁 현장에서 신음하는 여성들의 오늘에 앵글을 맞춰왔다. 2008년 콩고의 성폭력 실태를 고발한 포토 스토리(여러 장의 스틸 사진으로 만든 이야기) ‘콩고의 눈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여성의 눈으로 본 여성의 비극을 부각시켰다. 24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성산동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이번에 찍은 사진 약 20점을 골라 ‘콩고의 눈물 2014: 끝나지 않은 전쟁. 마르지 않은 눈물’ 특별전을 여는 그를 16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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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마르지 않는 눈물인가.

“5년 만에 다시 찾은 콩고 북동부는 전보다 정리된 느낌이었다. 2003년 화산 폭발 때 생긴 용암 덩어리로 가득 찼던 길도 많이 포장됐고, 건물도 훨씬 깨끗해졌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 콩고의 자세한 사정을 잘 모른다.

“1994년 이웃 나라 르완다의 인종청소 이후 콩고 쪽으로 도망친 후투족 반군과 이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투치족 반군들이 마을을 약탈하고 여성들을 겁탈했다. 상대방 진영의 사기를 꺾으려는 ‘전쟁무기로서의 강간’이 극성을 부렸다. 2008년에만 1만4245건, 하루 평균 약 40건에 이르렀다. 2012년 M23이라는 반군이 다시 일어나며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2011년 4689건으로 줄었던 성폭력 건수가 이듬해 7075건으로 늘었다.”

- 여성들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가.

“성폭력 외상으로 여성들 생식기에 제3의 누관(屢管)인 ‘피스툴라’가 생겨 소변이 흘러나온다. 평생을 악취에 시달리기도 한다. 남편들이 아내들을 버리고, 아이들과 남은 여인들은 제2, 제3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게 된다. M23과 콩고 정부는 지난해 말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약탈은 끊이지 않고 있다.”

- 우리가 특별히 담당할 몫이 있을까.

“해외분쟁 해결사로 직접 나설 수는 없겠지만 현지 비정부기구(NGO) 단체를 후원하거나 의료 봉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유엔에 근무하는 젊은 한국인을 만났는데, 국제적 감각과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더 많은 이가 국제기구에 진출했으면 한다.”

- 나비기금도 그런 노력의 하나겠다.

“현지 NGO 단체인 호프 인 액션(Hope in Action), 피해 여성들의 자생모임인 우시리카, 피스툴라 수술 및 회복을 돕는 힐 아프리카 병원과 케셰로 병원 등에 모두 2800달러(약 288만원)를 전달했다. 단체 운영비, 수술비, 식비 등에 두루 사용됐다.”

- 크지 않은 금액이다. 실질적 도움이 될까.

“(기사 처음에 등장한) 마시카를 다룬 영국 다큐멘터리 ‘희망의 씨앗’(Seeds of Hope)이 있다. 그런 희망의 씨를 뿌릴 수 있다. 또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부부의 책 『하늘의 반쪽(Half the Sky)』을 보면 100~200달러면 한 명의 여성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 그곳 반응은 어땠나.

“지난해 5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콩고 북부 고마를 방문했었다. 힐 아프리카 병원에 그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졌다. 성금을 건네며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은 소중한 돈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우리도 식민지와 내전을 겪었다고 전했다. 모두 놀라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도와주기를, 동반자(파트너십) 관계가 유지되기를 기대했다.”

정씨는 올해로 프리랜서 생활이 꼭 10년 됐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사진을, 미주리대 언론대학원에서 포토 저널리즘을 전공한 그는 뉴욕 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2004년 전업 사진기자를 선택했다. 지구촌 분쟁 현장에서 뛰는 거의 유일한 한국인 사진기자다. 처음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현장으로 날아갔다. 아프가니스탄에선 1년간 직접 살며 출산 중 사망 등 현지 여성의 심각한 산후합병증을 고발했다. 2009년 브라질에선 빈곤층에 만연한 결핵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2011년에는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높은 산모 사망률을, 지난해에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물 부족 실태를 취재했다. 『카불의 사진사』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 『정은진의 희망분투기』 단행본 세 권도 냈다.

- 사진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제가 일을 하든 안 하든 세상은 당장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을 포기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길이 미치지 않을 수 있다. 2009년 서울 만리현감리교회에서 콩고 취재를 위한 기금모금 전시회가 있었는데 어린 소녀들이 1000원, 2000원을 넣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내 사진이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그런 심부름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

- 폭력적 세상에 대한 절망도 컸을 텐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2011년 심한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죽고 싶다’보다 ‘죽어도 한이 없다’는 쪽이다. 예전엔 사진기자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두려움도 컸으나 요즘은 아니다. 저보다 비참하게 사는 분들이 되레 저를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라며 격려해주기 때문이다.”

- 국제분쟁 현장은 주로 남성의 영역이었다.

“기자는 중립적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여자이기에 불리한 점도 있지만 반면 유리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 20세기의 주요 사건은 대부분 백인 남성의 시각으로 기록됐다. 제 관심은 분쟁 자체보다 그 여파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특히 여성 문제다. 우리도 열강에 지배당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약소국의 입장을 서구인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정은진 ‘내 인생의 여성’

정은진씨에게 ‘내 인생의 여성’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역시 기자였다. 포토 저널리즘 명사 둘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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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 브론스틴(Paula Bronstein 좌)  애니 불라(Annie Boulat 우)

◆폴라 브론스틴(Paula Bronstein)=내 사진 인생의 롤 모델이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도 세계 곳곳에서 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을 30여 년 취재해왔다. 2006~2007년 아프가니스탄,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매일같이 쉬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 그 정열과 스태미나를 본받을 만하다.

◆애니 불라(Annie Boulat)=라이프지 사진작가였던 피에르 불라의 부인이자 사진집단 세븐(Ⅶ)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알렉산드라 불라의 어머니. 딸과 남편을 잃었음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젊은 사진가를 후원하는 ‘피에르 앤드 알렉산드라 불라상’을 2008년 제정했다. 나는 ‘콩고의 눈물’로 그 첫 수상자가 됐다.

[S BOX] 프리랜서 되려면 첫째도 둘째도 돈 관리

정은진씨는 국제 무대에서 뛰는 프리랜서다. 특정 직장에 얽매이지 않아 자유로운 반면 신분이 불안정하다. 정씨는 “프리랜서보다 정직원이 되라고 권하고 싶다. 굳이 프리랜서가 되겠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돈 관리가 중요하다. 돈이 바닥나면 망한다”고 했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려라=자본주의 고용시장에서 거의 최하위에 있는 직종이랄까. 우리나라에서 프리랜서는 4대 보험이 안 되고, 미래도 불투명하다. 언제 어디서든 일이 끊길 위험성도 크다. 일확천금을 벌어 성공할 것이라는 꿈, 가족 생계를 책임진다는 바람은 접는 것이 좋다. 내 한 몸 건사할 정도 벌고 검소한 생활을 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대인 관계도 경쟁력이다=프리랜서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은 수백, 수천 명에 이를 수 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할 만큼의 경쟁력이 있는지 늘 돌아봐야 한다. 사진 분야의 경우 의외로 그 경쟁력은 사진 이외의 것, 즉 나이나 외국어 능력, 대인관계 능력, 하물며 국적이 될 수 있다.

◆한국이라는 땅에서 벗어나라=사고와 행동의 변경을 넓혀보 자. 세계로 눈을 돌릴 때 세계도 우리를 인정해 줄 것이다. 외신 기사를 많이 읽어두거나, 영문서적을 평소 펼쳐보는 것도 경제적인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또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글로벌 인맥을 폭넓게 구축하는 것을 추천한다.


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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