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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 조리·양념·장식 최소화…살아있네, 재료 본연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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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작성일14-08-21 10:20 조회1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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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방통 식재료 (4) '미니멀리스트 키친'

‘미니멀리스트 키친 이수부’의 이수부 셰프. 그가 지향하는 요리의 간결함을 표현하기 위해 접시 위에 다양한 식재료의 단면을 담았다.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한다는 뜻의 ‘미니멀리즘(minimalism)’. ‘최소한’이란 의미의 ‘미니멀(minimal)’에서 나온 말로, 패션이나 건축, 디자인 등 현대 예술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개념을 요리의 세계에 접목한 이가 있다. 

서울 도곡동에서 테이블 하나를 놓고 ‘미니멀리스트 키친 이수부’를 운영하는 이수부(이덕영에서 개명) 셰프다. 요리에 있어서 미니멀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그는 말한다. “재료와 조리법, 양념과 담음새의 과정을 줄이고 줄이면서 재료의 본질을 살리는 것, 즉 포용 속의 절제가 미니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그의 미니멀한 식재료 활용법과 결코 미니멀하지 않은 요리 철학을 들여다봤다. 

요리를 위해 ‘신이 내린 직장’을 버리다. 

그는 소위 말하는 ‘신이 내린 직장’을 두 번이나 버렸다. 경희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5년 기술신용보증기금에 입사했다. 9년차가 되던 해, 21세기 유망 직종이 요리사라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도 ‘Why not me(왜 나는 하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를 이용해 신라호텔의 조리실에 아르바이트를 신청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수영장 청소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땀 흘린 후 샤워하는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둔 그는 본격적으로 신라호텔 조리팀의 문을 두드렸다. 접시닦이부터 시작하겠다는 그에게 누군가 조언했다. “줄무늬 바지(말단 보조)가 검은 바지(조리사)가 되는 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줄 아느냐. 차라리 공채로 입사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 

그는 요리사의 꿈에 빨리 다가가기 위해 삼성그룹 공채 시험을 통해 신라호텔에 입사했다. 하지만 호텔에선 공채 출신인 그를 조리팀 대신 재무팀에 발령을 냈다.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위해 미국 명문 요리학교인 CIA에 입학했다. 요리를 전혀 모르는 그에게 수업이 녹록할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곳에서 만난 은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코스 요리를 만들면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상대방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특별하고 이색적인 메뉴를 준비하되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값비싼 식재료를 쓰지 않는 요리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리의 본질은 결국 상대방과의 소통이고 만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부턴 모든 요리가 어렵지 않게 다가왔다. 

식료품 가게가 작은 레스토랑으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마침내 신라호텔 조리팀에 입사하게 된다. 99년부터 2006년까지 조리팀에서 주방장을 맡았다. 이후 대학원에서 한식과 관련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요리사가 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스펙’들이 원하는 요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만약 저에게 그런 경력이 없었더라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요리는 쉽게 ‘마이너의 요리’로 평가절하됐겠죠.” 

그렇다면 그가 하려고 했던 요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요리에 있어서의 미니멀한 요소를 ▶맛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의 적은 가짓수의 재료로 ▶단순한 방식으로 조리해 ▶소박하고 덜 장식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경영면에서 볼 때는 단순하고 소박한 인테리어에 혼자 조리부터 서빙까지 하는 단출한 인력 운용 방식을 뜻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풍요와 과잉의 시대임에도 무언가 헛헛한 공간이 있음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 소박하지만 푸근한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정리된 컨셉트를 갖고 레스토랑을 차린 건 아니었다. 처음에 그는 바질 페스토(소스)나 항아초(항아리에서 발효시킨 식초) 같은 제품을 파는 식료품 가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레스토랑인 줄 알고 찾아오는 손님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다가 먹고 갈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고객 요청에 테이블 하나를 놓은 게 레스토랑의 출발이 됐다. 지금은 점심엔 샌드위치를 팔고, 저녁엔 최대 8명까지 예약을 받아 코스 요리를 내놓는다. 식료품 가게가 목표였던 만큼 요리에 들어간 드레싱 같은 것을 즉석에서 만들어 팔기도 한다.

제철 식재료와 항아초의 만남 

위쪽부터 자두 수프, 바지락 테린, 말린 토마토로 만든 샌드위치. 자두 수프는 다시마 우린 물과 자두·앤초비·마늘·소금·후추를 믹서에 간 후 올리브 오일을 뿌려 만든다. 바지락 테린은 봉골레 스파게티를 건강식으로 재해석한 것. 바지락 육수를 젤라틴에 굳혀 테린(묵)으로 만든 후 밥알 모양의 리소 파스타 위에 올렸다. 드위치는 천연 발효한 포카치아 빵에 바질 페스토를 양면에 른 후 말린 토마토와 닭고기·치즈·양파를 넣어 만들었다. 토마토는 소금·후추·마늘 슬라이스·바질 등을 넣고 올리브 오일을 살짝 두른 후 90도 정도의 오븐에서 5시간 동안 굽는다. 간식이나 술 안주로 먹어도 좋고, 파스타·샌드위치·까나페를 만들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식재료에 공을 들이는 여느 셰프들과 달리, 그는 “어떤 식재료든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를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고,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베이스(기본이 되는 양념)에 신경을 많이 쓴다. 식재료들 간의 궁합을 잘 어우러지게 하고, 음식의 끝 맛을 잡아주는 염(소금), 당(단맛), 초(식초), 기름(오일) 같은 기본 재료를 제대로 만들고 활용하는 게 그의 주된 화두다. 

예를 들어 소금은 쌀을 누룩에 발효시켜 만든 ‘소금 누룩’과 죽염을 쓴다. “소금 누룩을 요리에 사용하면 별도의 다른 양념이 필요 없어요. 소금 누룩 안에 짠 맛도 있고, 쌀에서 발효된 당도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재료와 만나 응축된 맛을 냅니다.” 초는 항아초와 프랑스산 망고로 만든 초, 레몬 식초를 쓴다. 당은 양파즙 등 천연 재료에서 얻는다. 기름은 주로 이태리산 엑스트라버진·퓨어올리브 오일을 즐겨 쓰지만 가열하지 않고 압착한 국내산 참기름과 들기름, 호두씨 오일도 사용한다. 하지만 이 역시 과도기라 한다. 그는 “미니멀한 요리를 위해선 기름에 볶고 가열하는 요리를 최소화하고, 발효를 이용한 초나 소금을 이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요리는 간단하다. 예약을 받아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 손님에게 ‘오늘은 이 재료가 좋은데 드셔 보실래요?’라고 물어보고 손님이 좋다고 하면 그제야 이것저것 꺼내 조리를 시작한다. 제철 재료에 항아초 드레싱을 버무려 샐러드를 만들고, 늘 준비해 두고 있는 바질 페스토와 말린 토마토로 뚝딱 샌드위치를 만든다. 시장에 자두가 많이 나면 자두를 갈아 수프를 만들고, 가지가 제철이면 가지를 송송 썰어 파스타를 만든다. 

그렇다면 그에게 궁극의 미니멀은 무엇일까. 요리에 있어서 빼고 빼고 또 빼면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답했다. “남의 생명을 죽여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요리입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어렵게 구했으니 이걸 먹고 나랑 같이 잘 살자’라고 하는 마음이 남겠죠.” 그리고 덧붙였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동시대인들에게 연약하지만 좋은 것이 오래 기억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글=김경진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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