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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시간] 엄마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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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11-16 08:09 조회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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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온 후 엄마 몸이 많이 약해졌다. 엄마가 미각을 잃은 지는 이미 꽤 되었다. 간혹 호전될 때도 있지만 미각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는다. 심할 때는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없는 거부감이 들어 음식을 뱉기도 한다.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엄마 몸은 더 말라가고,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재미로 살던 엄마는 종종 우울해한다. 


그런데도 가족 먹을 김치를 담겠다며 배추랑 무를 상자채 사귈래 엄마 집에 쫓아갔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고춧가루와 직접 만든 젓갈, 그동안의 경험치로 빨갛고 맛깔난 양념을 준비한다. 배추 한 줄기를 뜯어 양념에 잘 싸서 아기새처럼 받아먹고 간을 음미한다. 딱 맞는 양념이다 싶으면 배추에 버무리기 시작한다. 소금에 적당히 절인 배추 속을 꽉 채워 야무지게 감싸서 통에 넣고 하나씩 쌓아 올리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한동안 우리가 먹을 양식이 차곡차곡 모아진다. 어느 부자 부럽지 않다. 김치 담는 일은 정말 번거롭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느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지만, 엄마랑 한 대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하하 호호하면서 김칫소 넣는 시간이 소중하다. 


늙어가는 엄마를 곁에서 보는 시간이 애달프다. 양가 할머니들이 안 계셔서 여자가 늙어가는 모습을 엄마를 통해 처음 목도한다. 사그라져가는 엄마 몸과 마음을 견디는 힘은 가족의 먹거리에 대한 책임감이다. 당신이 하지 않으면 가족이 제대로 먹지 못할 거란 염려, 누군가 대신해야 할 모양이 안타까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음식을 준비한다. 그것이 엄마가 몸과 마음을 버틸 수 있는 힘 일 것이다.


아빠랑 엄마랑 셋이 둘러앉아 겉절이를 곁들여 수육을 해 먹었다. 고기는 몇 점 못 먹는데 겉절이는 잘 들어간다며 오래간만에 맛있게 드신다. 디저트는 달콤한 믹스커피로 김치 담기의 고단함을 달랜다. 다시 오지 않을 어둑어둑한 토요일 오후가 하염없이 흘러간다. 함께 보내는 시간의 유한함을 알기에 귀한 이 시간을 박제해 두고 싶다. 


내가 엄마 김치를 꼭 배우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당신이 해 줄 수 있을 때까지 받아먹다가 사 먹으라 한다. 이 번거로운 수고를 감당할 딸의 모습이 상상만 해도 애처로운 엄마 마음이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해줄 수 있을 때까지 남김없이 해주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내가 우리 가족의 김치를 담가야 할 때가 가까워진 것 같다. 엄마가 내 곁에 있을 때 전수받고 검증받아야 한다. 더 이상 엄마가 음식을 할 수 없을 때가 오더라도 엄마 손맛을 따라 만든 음식을 먹으며 오래도록 엄마를 느끼고 싶다.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살찌웠던 음식은 엄마 사랑의 곡진한 언어이다. 그 맛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엄마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엄마의 김치 담그는 팁

-배추를 자르기 전에 소금물이 배게 한다. 배추를 반으로 자를 때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아 버려지는 것이 적다

-배추 겉은 잘 절어졌는데 배추 속이 살아있는 경우, 속을 다 넣은 후 소금을 살살 뿌려준다.

-무를 갈고 남은 것은 양념을 잘 묻혀 김치와 함께 통 사이사이 넣는다.

-속을 넣을 때 배추 뿌리 속 부분에 집중해서 넣으면 양념이 아래로 흐르니 적당하다.

(내가 속 너무 많이 넣어서 모자랐다가 엄마의 마법으로 다 가능해졌다.)

-계량은 모른다, 계량은 유튜브로 배워라.

-김치 담그기는 보조만 해도 힘들다. 아껴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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