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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기고] 캐나다에서 맞은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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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9-12 16:56 조회5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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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이다. 소박하나마 정성스레 차린 차례상 앞에 집사람과 단 둘이서 경건히 재배하고 앉는다. 제사상 위의 촛불이 아침 햇살과 융화되어 새삼 돋보인다. 향을 피우면서 연한 연기를 모락모락 올리는 향 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향로에 불을 피우고 향나무를 얇게 잘라 향로 불에 꽂아서 향을 피우던 유년 시절의 추억 속으로 나를 이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고향의 마을을 둘러 싼 나지막한 산들은 여름의 마지막 풍성함을 과시하듯이 푸르디푸르다. 

들판에는 누렇게 익어 가는 벼 이삭들이 바람 따라 황금물결치고 있다. 참새 들새들은 떼를 지어 이 벌판 저 벌판을 분주히 날아다닌다.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 잎새 사이로 주홍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사립문 밖의 늙은 감나무는 한 폭의 수채화다. 마루 위에 차려놓은 제사상위에는 햇곡식과 햇과일로 준비된 여러 가지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축담 밑 마당에 멍석을 펼치고 아직도 따스한 늦여름의 아침 햇살을 뒷머리로 받으면서 조상님들의 영전에 재배하기를 기다린다.

“자, 절하자” 하시는 아버님을 따라 경건히 큰절을 하면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님의 얼굴이 앞을 가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평시에는 뛰놀기에 바빠 어머님의 생각도 자주 못하고 지나지만 이렇게 제사상 앞에서 간절한 어머님의 사랑을 더듬어 보고 명복을 빌어 보는 순간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꿈에서라도 보고 싶지만 자주 보이지를 않는 어머님의 얼굴이 제사상 뒤에 펼쳐진 병풍 위로 보이고, 자상하신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 그 감격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가 보다.

아버님은 음복하시고, 제사상을 치우시라 하신다. 오래되어 꺼무스레한 쥐색 빛으로 변한 울퉁불퉁한 초가집 좁은 마루에 온 식구가 정답게 둘러앉는다. 그러나 돌아가신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운지 모두  별 말 없이 묵묵히 아침상을 받는다. 평소에 먹지를 못하던 쌀밥을 탕수국에 넣고 이것저것 푸른 나물 마른 나물들과 뺄 수 없는 고사리나물을 넣어서 탕수국 비빔밥을 만든다. 그 비빔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찐 생선 조각을 보태어 먹으니 그 좋은 맛에 조금 전에 보았던 어머님의 생각마저 사라져 버린다.

이여서 따스한 늦여름의 햇살을 받으면서 온 가족이 성묘 길에 나선다. 제상에 올랐던 문어 과일 등 마른 음식들을 바구니에 넣고, 추석에 쓰려고 쌀로 마련한 청주 한 병을 들고 뒷산으로 오른다. 길섶에는 들국화들이 아름답게 피어있고 밭 두렁에 가냘프게 흔들리는 코스모스 꽃잎이 애잔하다. 먼 산에서 구슬프게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이 즐거운 추석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런 대로 싫지 않게 들린다. 산을 올라오면서 이마에 맺은 땀방울이 산 위의 산들바람에 씻기면서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할아버지의 산소다 하시면서 그분 생전의 좋은 모습들을 이 손자에게 알리려 아버님께서 애를 쓰신다. 생전에 뵙지도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할아버지를 그려보고 상상하여 본다. 어머님의 묘소에 와서 아버님께서는 묵묵히 갖고 온 음식을 묘 앞에 차려놓고 청주 한 잔 부어 놓으시면서, 우리에게만 “절해라” 하신다. 재배하면서 나는 또 흐느껴 운다. 한참 묘 앞에 앉아 어머니의 묘를 보고 있으니 어머님의 반기시는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옆에서 묵묵히 서 계시는 아버님께서도 일찍 잃은 어머님의 애별에 필히 울고 계실 거라 생각이 되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각자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면서 별 말 없이 산을 내려온다. 이따금씩 저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의 짖음이 한결 구슬프게 들린다.

새 옷이라곤 일년에 추석빔과 설빔으로 한 벌씩 받는 것이 고작이었던 가난하던 시절이다. 며칠 전 시골 시장에서 사 온 푸른색 셔츠를 하나 받았다. 아직도 옷 공장에서 누른 주름들이 빳빳하다. 그 셔츠를 자랑스레 입고 돌담 옆 좁은 마을 골목길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동네 어른들께 “진지 드셨습니까” 하고 깊숙이 절하면서 추석인사를 한다. “응 그래, 좋은 옷 하나 얻어 입었구나” 하니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양 마음이 기쁘다.

새 옷 얻어 입고 제 멋대로 뽐내는 송아지 동무들이 약속도 없으면서도 이 집 저 집에서 나와 동네 앞 정자나무 밑에 모인다. 기쁘고 들뜬 마음을 달랠 수가 없어 밤을 따 먹어보자는 심산으로 앞산에 오른다. 몇 그루 되지 않는 큰 밤나무 중 올라가기 쉬운 것을 서로 골라서 막대기 하나씩을 만들어 들고 오른다. 아직도 벌어지지 않은 밤송이를 막대기로 때려 몇 송이를 떨어뜨리고 밤나무에서 내려온다. 신발로 가시가 돛인 밤송이 한쪽을 누르고 뾰족한 막대기 끝으로 밤송이를 열어서 밤알을 들어낸다. 아직도 여물지 않는 밤 껍질을 이빨로 벗기고, 떫고 얇은 안 껍질도 앞 이로 대강 긁어내고 먹는다. 아직 제대로 익지를 않아 밤의 구수한 맛은 없다만, 서로 보라는 듯이 입 벌리고 씹으면서 그 달콤한 맛을 자랑한다. 

이런 즐거웠던 추석의 추억에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을 가다듬어 제상 앞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얼굴을 붉힌다. 아들 없이 돌아가신 처부모님을 위하여 사위인 내가 추석이라 제사를 모시고 있는 중이다. 서양문화에 젖어서 사는 애들이 오지를 않으니 제사는 항시 둘이서 모신다. 처가 정성스레 마련한 가지가지의 음식들과 포도주 두 잔을 제상 위에 차려놓고, 제사의 격식이야 모르지만 제상 위에 놓여 있는 두 분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면서 두 분의 생전의 얼굴을 더듬어 본다. 그들의 고마우심을 생각하면서 “저승에서 두 분이 재미있게 사십시오” 하고 명복을 빈다. 마지막 재배를 하고 일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나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하면서 “어머님의 은혜”라는 노래를 얕게 불러본다.

옛 생각을 하면서 탕수국에 밥을 넣고 그 위에 이것저것 나물을 얹어 비빔밥을 만들어, “음복”이라 하면서 제사상에 올렸던 포도주를 마시면서 아침을 즐긴다. 그런대로 옛날 어릴 적 고향에서 먹었던 그 맛은 찾을 길이 없다. 매년 하는 대로 고향에 계시는 누님과 홀로 계시는 형수님께 전화를 올리고 즐거운 추석을 맞으시라고 대화를 나눈다. “늘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맺음을 지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같이 만나 추석을 지내지는 못하여도 이렇게 전화라도 하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다짐한다.

영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추석이나 제사는 우리 문화에 어울린다. 설, 추석, 제사라는 관례를 치르면서 선조들을 생각하여 보고 우리의 뿌리를 다시 살펴보고 다짐하게 한다. 또 부모.형제 들이 다 한 곳에 모이게 하는 제사의 풍습이 있기에 메말라 가는 세파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유지하게 하여 주는 것 같다. 그러기에 제사라는 문화가 대행으로 생각 된다. 

권오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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