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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18세 독립투사 유관순 연기한 고아성 "기도하듯 연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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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2-25 22:00 조회1,0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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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고아성. 만세운동에 나섰던 유관순의 과거 회상은 이처럼 컬러로, 감옥에 수감된 그의 현실은 흑백영상으로 표현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다 일제의 모진 고문에 감옥에서 숨진 유관순 열사는 최후 유언까지 이토록 결연했다. 이화학당 학생 신분으로 1919년 3·1운동에 가담했던 그는 같은 해 4월 1일 고향 충남 천안의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일제의 총검에 한날한시 부모를 잃었다. 이듬해 수감돼있던 서대문감옥(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또다시 목숨 걸고 1주년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열여덟이었다.
 

 

 
3·1운동 1년 뒤 여자 감옥 8호실서 들려온 '만세'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열악한 옥사와 혹독한 고문으로 수척해져가는 유관순의 모습.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성스럽고 존경스런 마음 외에 감히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없었어요. 영화를 만든다기보단 그분의 뜻을 ‘전하는’ 개념이었죠. 매일 기도하듯 연기했습니다.”
 
올해 삼일절 100주년에 맞춰 27일 개봉하는 ‘항거: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고아성(27)의 말이다. 영화는 유관순이 숨을 거두기까지 감옥에서 보낸 1년여를 담았다. 3·1운동 1주년에 다시 울려 퍼진 만세 외침이 그가 있던 서대문감옥 8호실에서 시작됐단 사료가 바탕이 됐다. 극 중 여름이면 뜨겁게 끓고 겨울이면 얼어붙는 3평 못 되는 비좁은 옥사에서 그를 비롯한 스물다섯 명의 여성들은 앉을 자리도 없이 빽빽이 서서 한목소리로 만세를 부른다.  
 

 

 
도금봉·엄앵란 등 연기파 잇는 고아성의 유관순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주연을 맡은 배우 고아성을 지난 1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실제 유관순을 항일운동의 상징으로 익히 알아온 대중에게도 이런 옥중투혼을 대형 스크린으로 낱낱이 마주하는 경험은 드문 일. 이제껏 유관순을 다룬 영화는 윤봉춘 감독이 48‧59‧66년 각각 배우 고춘희‧도금봉‧엄앵란을 주연으로 세 차례, 74년 김기덕 감독이 문지현을 주연으로 만든 바 있지만 감옥에서의 1년에 오롯이 초점 맞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봉 전 만난 고아성은 “예상했던 일대기가 아니라 더 끌렸다”면서 “쉽지 않은 역할이란 생각에 겁도 먹었지만, 고민도 하고 눈물 많고 후회도 하는 한 ‘인간’으로서 열사님을 그리려는 감독님의 진정성에 신뢰가 갔다”고 했다. 각본과 연출을 겸한 조민호 감독은 ‘강적’(2006) ‘10억’(2009) 등 장르물을 주로 찍다 10년 만에 충무로에 복귀했다. 감독은 “우연히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마주한 유관순 열사의 눈빛이 슬프고도 강렬했다”면서 “열사가 만세운동을 어떻게 주동했는지는 사료마다 달랐지만, 여자 옥사에서의 일들은 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8호실의 삶이 열사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지금의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순제작비 10억원이 안 되는 저예산 영화다 보니 시대상 구현엔 빈 구석도 보인다. 그러나 첫 단독주연을 맡은 고아성의 단단한 눈빛이 이를 담대하게 채운다. “애절한 삶의 눈빛, 타인을 가슴으로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배우.” 감독이 밝힌 캐스팅 이유다.  
 

 

 
참혹한 고문 장면 '흑백'으로 절제, 닷새간 금식도

 

투옥 당시 유관순 열사의 신상카드.사진=뉴스1(문화재청 제공)

만세운동을 펼치던 과거 장면은 컬러, 옥중의 현실은 흑백으로 표현했다. 혹독한 고문 등을 자극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흑백으로 절제한 덕에 이를 뛰어넘은 유관순의 내면에 한층 눈길이 간다. “촬영하고 개봉이 이렇게 빨랐던 영화도 없어 당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고아성은 “컬러영화에선 느낄 수 없던 ‘질감’을 표현하는 기분이 가장 새로웠다. 특히 유관순의 마지막 모습은 달랐으면 해서 촬영을 앞두고 닷새간 금식하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열사님의 음성을 모른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장면에선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왼쪽 가슴에 찬 무선마이크를 옮겨야 했다”며 종종 울컥하기도 했다.  
 
8호실 여성들과 ‘아리랑’을 부르며 버텨냈던 극 중 유관순처럼 그는 힘들 때면 동료 배우들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할 때 인왕산이 되게 가까이 있었는데 당시 체포 안 된 독립운동가들이 산에 올라 감옥을 향해 수감된 동지들 이름 석 자를 크게 불러줬대요. 외롭지 않게. 사료로 입증된 건 아니어서 영화에 안 들어갔지만, 배우들과 서로 그런 심정을 나누며 촬영했던 것 같아요.”
 

 

 
스크린 14년차 고아성의 가장 담백하고 묵직한 고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한 장면. 3평도 안 되는 좁은 감옥소엔 만세운동하다 잡혀온 25명의 여성이 들어차 있었다. 이들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며 한목소리를 낸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출연한 건 열네 살 때 봉준호 감독의 1000만 영화 ‘괴물’(2006)이 처음이다. 스크린 경력만 14년 차다. 이후 봉 감독의 SF 블록버스터 ‘설국열차’(2013), 칸영화제에 초청된 사무실 스릴러 ‘오피스’(2014), 부잣집 작은마님 역으로 연기 변신을 꾀한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2015)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최근 정치 스릴러 영화 ‘더 킹’(2016), SF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2018) 등에선 80년대 시대 배경을 완벽히 녹여낸 캐릭터 연기로 방점을 찍었다. “작품이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비슷해 보이는 걸 기피하려 이전과 다르게 하려는 습관이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배우로서 어느새 서른 가까워져 만난 이번 영화를 그는 “배우로서 이렇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가장 묵직한, 아니 가장 담백한 작품”이라 했다. 담백하게 말했지만, 묵직한 얘기였다.  
 
“요즘은 연기할 때 실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걸까 생각해보기도 해요. 전 힘들어도 대수롭잖게 넘기는 편이어서 어릴 적부터 나이에 비해 성숙하단 얘기를 듣곤 했거든요. 어찌 보면 삶을 다 감내하지 않고 슬쩍 피하기도 했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제가 당연히 겪었어야 할 과정이나 감정을 놓쳤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연기할 땐 한 번도 회피한 적이 없거든요.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80세, 90세가 됐을 때 어떤 게 실제 제가 겪은 일이고, 어떤 게 작품 속에서 연기하며 제가 만들어냈던 감정인지 헷갈렸으면 좋겠어요. ‘나 이상의 실재하는 어떤 것을 추구하기 위해 내 삶을 다 써도 좋다’는 빈센트 반 고흐의 말처럼 저란 사람보다 작품이, 그 속에 담았던 진심이 더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주연배우 고아성이 유관순 열사에게 쓴 자필 편지 전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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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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