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젖'으로 돌아가는 산후조리원, 치맥 즐기는 팩트폭격기 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1-22 02:00 조회1,25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별다를 것 없는 대사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곳이 산후조리원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이 뭔지, 내 나이가 몇 살인지, 내 직업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오직 아이의 태명과 성별, 출산경험 여부, 어느 병원 출신인지만을 묻는 세상. 쌍둥이 24개월 직수 완모(완전 모유 수유)로 모성이 입증된 ‘사랑이 엄마’(박하선) 같은 사람들은 일등칸에 탑승해 추앙받지만, 초산이거나 젖이 없거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정보가 없거나 워킹맘이면 꼬리칸에서 허덕이는 곳.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은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그 기묘한 세계를 낱낱이 풀어놓는다. 바깥세상과 전혀 다른 질서로 움직이는 세상은 산후조리원에 첫발을 디딘 산모들에게 당혹감을 안긴다.
[민경원의 심스틸러]
맞는 말만 던지는 미혼모 이루다 역 최리
엄지원·박하선 등 선배들 사이서 존재감
한국무용 전공, 데뷔작 ‘귀향’ 진한 여운
선과 악 공존하는 얼굴로 기대되는 신예
극 중 25살 미혼모로 등장하는 이루다(최리)는 유일하게 그 질서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요미 엄마’라는 호칭 대신 ‘이루다’라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요구하고, 속옷쇼핑몰 CEO라는 직업병을 발휘해 산모들의 잘못된 브래지어 사이즈를 바로 잡는다. 바깥세상에서 열린 여성경제인포럼에서 우러러봤던 대기업 최연소 상무 오현진(엄지원)도 ‘최고령 산모’ ‘딱풀이 엄마’ 등 자신을 둘러싼 수식어에 갇혀 하지 못한 일들을 태연하게 해낸다. 출산 후 모든 의사결정의 중심이 아이에게 옮겨가는 대신 자기 정체성을 단단히 지킨 결과다. 덕분에 이루다 역을 맡은 배우 최리(25)도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발휘한다.
하지만 최리는 이를 당차면서도 사랑스럽게 소화하며 “정상적이고 정상적이지 않은 기준”을 묻는 데 성공한다. “엄마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모성애 또한 차츰차츰 만들어지는 것임을, “여자만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사실을 일깨워준다. 아이가 생겼다고 자신의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 그에게 아이가 생겼다고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는 통념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선택지가 등장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듯 육아에도 수천, 수만 가지의 방법이 존재할 테니 말이다.
역할이나 분량에 대한 편견 없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강점이다. 주연으로 영화 데뷔 이후 드라마 ‘도깨비’(2016~2017)에서는 지은탁(김고은)을 괴롭히는 사촌언니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에서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진태(박정민)를 편견 없이 대하는 아이돌 가수 지망생으로 분했다. 당연히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벗어나니 운신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진 셈이다. 지금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가야금을 전공한 이하늬, 한국무용을 전공한 한예리처럼 연기와 본업을 병행하는 팔방미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과 “사연이 있어 보이는 눈빛” 때문에 캐스팅하게 됐다는 조정래 감독의 말은 두고두고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될 테니 말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