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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비엔나 커피하우스는 소비 아닌 문화·사색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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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2-04 10:35 조회7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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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케이크가 유명한 비엔나 카페 자허(Cafe Sacher). [사진 박진배]초콜릿케이크가 유명한 비엔나 카페 자허(Cafe Sacher). [사진 박진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우리에게 세 곳의 카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책이나 신문을 읽으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카페, 친구나 지인을 만나는 카페, 그리고 연인과 가는 카페. 커피를 팔고 마시는 공간은 카페, 커피숍, 커피하우스 등으로 불린다. 17세기 말 런던을 시작으로 파리, 베니스, 비엔나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 커피하우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이 도시들마다 1000여 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초창기에는 커피를 주로 팔았고, 후에는 간단한 식사나 주류도 첨가됐다.


1980년대에 현대식 커피숍 등장


전통적으로 커피하우스의 내부에는 ‘커뮤니티 테이블(community table)’로 불리는 커다란 단체석이 놓여 있었다. 단골들은 이 테이블에 앉거나 주변에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을 즐겼다. 독서와 토론은 방문객들의 지적 성장을 도와주었다. 여기서의 대화를 기반으로 소식지가 만들어지고, 더 발전해 신문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이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 지금도 유럽이나 미국의 카페에는 입구 가까운 쪽에 단체 테이블을 배치하는 곳이 꽤 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초창기에 간이 우체국의 역할도 했다. 자루를 걸어 놓고 일정량의 편지가 모이면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런 통신의 기능은 꽤 오랫동안 커피하우스의 문화로 이어져 왔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1980년대 신촌 독수리 다방 입구의 메모판도 유사한 기능을 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약속 시간과 장소, 간단한 메모를 교환하는 원조 아날로그 메신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커피하우스 전통은 세계로 전파됐다. 미국은 뉴욕, 보스턴, 시애틀과 같은 보헤미안 도시를 중심으로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왔다. 특히 ‘옆 테이블의 대화에만 귀를 기울여도 배울 게 있고 유식해진다’는 미국 대학가의 커피하우스는 자유롭지만 특유의 지적 분위기를 창출했다. 

비엔나 카페 첸트랄(Cafe Central). [사진 박진배]비엔나 카페 첸트랄(Cafe Central). [사진 박진배] 

우리나라에는 커피가 비교적 늦게 들어왔다. 그래도 1950년대 이미 전국에 3000여 개의 다방이 있을 정도로 성행했다. 초창기에는 인스턴트커피에 설탕과 분말 크림을 첨가해서 마시는, 오늘날 ‘다방 커피’라고 불리는 스타일이 일반적이었다. 실내 한 편에 어항이 자리를 잡고, 의자는 흰색 커버로 덮여 있었으며, 동전을 넣고 운수를 점치던 기계 겸 재떨이와 팔각성냥이 테이블에 놓인 모습이 전형이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1980년대에는 신촌, 방배동, 압구정동 등지에 고급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카페에는 비엔나커피(크림을 얹은 나름의 고급 커피로, 원래의 명칭은 아인슈페너(Einspänner)다)라는 메뉴가 있었다. ‘비엔나(Vienna)’라는 도시와 커피가 연결되며 우리에게 각인된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1899년 오픈한 비엔나 카페 무제움(Cafe Museum)은 구스타브 클림트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애용되던 커피하우스다. [사진 박진배]1899년 오픈한 비엔나 카페 무제움(Cafe Museum)은 구스타브 클림트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애용되던 커피하우스다. [사진 박진배] 

비엔나의 커피하우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샹들리에 조명 아래 흰 대리석 테이블, 토네트(Michael Thonet)의 곡목(曲木)의자가 배치된다. 공간의 한편에는 여러 언어로 인쇄된 신문들이 놓여 있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웨이터는 정장이나 간혹 턱시도 차림이고, 커피는 물 한잔과 함께 제공된다. 커피 맛을 보기 전에 입 안을 헹구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저녁 시간이면 피아노 연주를 하는 곳도 있다. 분위기에서 이미 ‘우리는 커피를 어떻게 제공해야 하는지 안다’는 진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격(格)에 맞게 행동하기를 은근히, 하지만 친절하게 강요한다.


비엔나 시민은 모두 자신의 커피하우스가 있다. 부유층들은 집 안에 ‘팔러(parlor)’와 같이 접객용 공간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커피하우스가 연장된 거실이자 응접실, 서재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간단한 식사는 물론,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케이크도 즐길 수 있다. 종이컵은 없다. 이 도시의 커피 문화는 아침에 픽업해서 일터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이동하면서 마시는 것도 아니다. 오래 앉아 있어도 괜찮다. 커피 한잔에 몇 시간 동안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음료는 버무스나 와인으로 바뀌어 있다. 웨이터들은 눈치를 주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손님을 살피다가 필요할 때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골손님은 ‘스탐가스트(stammgast)’라고 불리는데, 보통 웨이터들은 이들의 메뉴와 선호하는 자리를 잘 알고 있다. 그 자리를 ‘예약석’으로 미리 맡아 두는 경우도 많다.암스테르담의 브라운 카페(Brown Cafe). [사진 박진배]암스테르담의 브라운 카페(Brown Cafe). [사진 박진배] 

커피하우스는 시민 사회활동의 일상이었다. 스스로 지식인이 될 권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방문해서 글을 읽고 생각을 교환하던 현장이었다. 여기에서 정치와 철학이 논의되고 문학이 창작되며, 예술적 아이디어와 영감이 발표됐다. 오늘날의 커피숍은 각자 고립된 개체가 들려서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쳐다보는 건조한 곳이다. 문화는 없다. 한쪽 구석에서 글을 쓰거나 종이에 스케치하는 고객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포용적이고 쿨한, 커피숍이 아닌 커피하우스를 방문해서 머물고 싶다. 커피는 물질이지만 그 문화는 무형의 유산이다. 커피하우스는 소비하는 곳이 아니고 생각하는 곳이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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