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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 1월 모주,3월엔 오미자막걸리…1년내내 술 담그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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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8-02 10:20 조회3,1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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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더위와 싸우느라고 여념이 없다. 지금 도시 사람들의 관심은 에어컨을 오래 켜 전기료가 얼마나 나오느냐인데 시골 사람들은 타들어 가는 농작물이 더 걱정이다. 어르신들은 폭염에 더위를 먹고 난처한 상황에 처할까봐 걱정이다. 그래도 시골은 저녁이면 조금은 선선해져 도시보다 낫지만, 올해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더울 때는 역시 냉수가 최고이다. 그렇다고 찬물만 벌컥벌컥 마시면 몸이 허해지니 무언가로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야 한다. 그래서 복 음식이 있나 보다. 초복·중복·말복 기간 중 복달임이 꼭 필요하다. 
  
보통 개와 닭으로 해결하는데 우리 견공은 점점 복달임에서 해방이 돼 가는 반면 닭들이 무수히 탕으로 달여지고 있다. 닭의 뒤를 민어가 쫓고 있는데 올해는 민어 값이 많이 싸졌단다. 어떤 이는 삼복에 광복을 추가해 사복이라고 부른다. 8월 15일 광복절에 만세를 부르며 복달임을 한 번 더 한다. 핑계가 참 좋다. 
   

직접 담근 고추장은 매우면서 단맛

복날 먹는 음식은 매일 먹을 수 없다. 그러니 매일 올라오는 반찬이 중요하다. 오이 냉국이 올라오면 횡재다. 시원한 신맛은 사라진 입맛을 찾아 준다. 풋고추는 고추장이나 된장을 찍어 먹는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너무 좋다. 매운 고추를 더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느냐는 질문은 참으로 어리석다. 
  
외국인들이 문화 체험할 때 묻는 질문이다. 우리 고추는 달다. 고추장은 단맛과 매운맛을 같이 즐기는 것인데, 매운맛만 기억한다면 그는 필시 고추장을 사 먹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담근 고추장의 단맛을 모르고 있다. 
  
된장, 고추장, 간장은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콩의 식물성 단백질을 발효시킨 장류 음식은 긴 숙성 기간을 거치면서 감칠 맛이 극대화한다. 오래 묵힐수록 더 맛있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냄새는 너른 마당의 장독대에서는 구수하지만 사방이 막힌 벽돌집에서는 당혹스럽다. 
   

시골 사는 사람들에게 장독대는 된장, 고추장, 간장이 담겨 있는 보물단지이다. [중앙포토]

시골 사는 사람들에게 장독대는 된장, 고추장, 간장이 담겨 있는 보물단지이다. [중앙포토]

  
시골 사는 이에게 뒷 마당의 장독대는 된장과 고추장, 간장이 담겨 있는 보물단지로 퍼도 퍼도 나오는 화수분 같다. 오랫동안 함께 하는 친구 같은 존재다.경북 청송으로 귀농한 농부 김정호씨는 제1호 재산이 10년을 넘게 묵힌 된장이다. 
  
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중요한 시점에 송화가루를 넣는데 특별한 맛을 준단다. 어떤 중요한 시점은 나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그만의 비밀이다. 친구하기로 해 놓고 안 가르쳐주니 좀 야속하다. 된장에 꽂혀 버려 서울에서 회계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송화된장을 만들고 있다. 
   

10년 묶은 된장이 재산 1호라는 귀농 농부 

된장 담그는 친구 김정호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수제 맥주 만드는 것이다. 내게는 꼭 브루어리라고 한다. 그러면 더 우아해 보인다나.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장류와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재미가 있단다. 술 빚는 취미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원래 술을 잘 하지 못해 막걸리나 소주를 한두 잔 밖에 못 마시는데, 맥주는 그나마 좀 더 마실 수 있어 선택했단다. 수제 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리 양조장이 지역마다 조금씩 생기는 것이 반갑다. 막걸리가 한동안 유행을 하면서 와인과 겨루더니 다소 주춤해졌다. 그 공백을 수제 맥주가 채우는 것 같다. 
  
귀농·귀촌을 한 이들을 살펴보면 남자와 여자의 취향이 확연히 구분된다. 여자는 된장에서 시작해 효소, 장아찌, 식초까지 다양한 발효 음식을 정성을 기울여 만들고 만족감도 느끼고 있다. 반면 남자는 역시 술을 담그고 빚으면서 발효는 예술이라며 좋아라 한다. 
  
그러면서 술은 내가 마시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좋은 일 하려고 만든다는 이유를 댄다. 제사와 명절 때 쓰려고 제주(祭酒)를 만들고, 첫 과일을 수확한 기념으로 과실주를 담그고, 꽃이 피어 술 담그고, 우리 손주가 태어났다고 술 담그고, 결혼기념일에 쓴다고 1년 전부터 술을 담근다. 
   

귀농·귀촌한 남자들은 술을 담그고 빚으며 발효를 예술이라고 여긴다. [중앙포토]

귀농·귀촌한 남자들은 술을 담그고 빚으며 발효를 예술이라고 여긴다. [중앙포토]

  
술은 1년 내내 담근다. 1월에는 설날에 쓰려고 제주와 도소주를 담그고, 해장술인 모주를 만든다. 2월에는 돼지날에 빚는 삼해주를, 3월에는 벌꿀을 첨가한 미드(Mead)와인과 오미자를 넣은 오미자 막걸리를, 4월에는 이화주를 각각 만든다. 배꽃이 필 때 빚는다고 해 이화주라 하는데 요거트처럼 떠먹는 술이다. 
  
5월에는 단오가 있으니 창포주를, 6월에는 여린 솔순을 넣어 송순주를 담그면 행복하다. 7월과 8월은 더우니 여름을 잘 보내자고 과하주를 빚는다. 그리고 추석을 대비해 법주를 만들고 9월에는 자연산 배인 돌배를 가져다 돌배와인을 만든다. 10월에는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 그리고 천연 과일 식초를 만든다. 
  
11월은 가을에 제격인 국화주를 빚는다. 12월은 역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글루바인을 만든다. 글루바인(Glühwein)은 와인에 오렌지 껍질이나 시나몬을 넣어 끓이는 따뜻한 와인으로 독일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 프랑스는 뱅쇼라고도 부른다. 늘 막걸리만 먹을 수 없으니 색다르게 와인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술 빚는 꾼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이런 정성이면 무엇을 해도 다 성공할 텐데 말이다. 이상하게 술에 빠지니 사람이 정성스럽게 된다고 한다. 
  
발효라는 과정은 신기하다. 발효를 거치면 콩이 된장이 되고 고추장이 되고 간장이 된다. 많은 곡물과 채소가 효소가 되고 나물이 장아찌가 된다. 배추와 무, 그리고 많은 나물이 김치가 되어 우리 밥상에 오른다. 쌀이 막걸리가 되고 소주가 되고, 보리는 맥주가 되고 포도는 와인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술이 한 번 더 성숙해지면 마지막에 식초가 된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발효음식이 되지 않는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부패하고 시어 버린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음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김치 한 포기, 장아찌 한 그릇, 술 한 모금이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도시에서 사 먹고 시골에서는 직접 만들어 먹는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텃밭 가꾸는 재미
'슬로푸드(Slow Food)'를 대표하는 장독대. [중앙포토]

'슬로푸드(Slow Food)'를 대표하는 장독대. [중앙포토]

  
이런저런 신경쓰느라 번잡하니 결국 사 먹으면 될 것을 뭐하러 오랜 시간 만들어 먹느냐며 타박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돈 주고 사 먹을 분은 사 먹고 만들어 먹을 분은 만들어 먹으면 된다. 텃밭에서 상추를 아무리 요령 있게 키워도 마트에서 사는 것이 더 싼 것이 지금 세상이다. 
  
그러나 텃밭에서 상추를 기르면서 느끼는 재미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러니 밭에서 나오는 것, 과수원에서 따온 것, 산에서 가져온 것을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김치와 장류와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골살이의 최대 혜택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된장과 술을 빚을 생각에 웃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슬로푸드(Slow Food)’. 패스트푸드에 맞서 나온 슬로푸드는 음식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음식으로 이어진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지키며, 미각 교육을 통해 식재료와 음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프로그램이다. 
  
가만히 보면 우리네 음식과 장독대와 슬로푸드가 아닌가. 우리는 원래 슬로우하게 음식을 만들고 먹어 왔었다. 지금 잠시 잊었을 뿐이다. 덥다고 지치지 말고 오늘도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다음 끼니를 뭘 만들어 먹을까 궁리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보자.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출처: 중앙일보] 1월 모주,3월엔 오미자막걸리…1년내내 술 담그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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