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탭댄스 추는 18세 북한군, 춤으로 총성을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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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2-11 22:00 조회1,3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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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개봉하는 영화 ‘스윙키즈’(감독 강형철)에서 탭댄스에서 빠져든 북한 병사 로기수를 연기한 도경수(25)의 얘기다. 영화의 배경은 한국전쟁 당시 거제포로수용소. 수용소장 지시로 미군 잭슨(자레드 그라임스 분)이 북한군·중공군 등 포로들로 댄스팀을 결성하게 되면서 로기수도 우여곡절 끝에 그 일원이 된다.
잭슨은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하던 댄서 출신. 로기수는 탭댄스 실력은 밀릴 지 몰라도 자부심은 그 이상이다. 형이 전쟁터에서 ‘인민영웅’으로 활약 중인 데다 그도 포로들 사이에 영웅 대접을 받는 존재다. 이런 로기수가 과연 수용소장의 계략대로 대외홍보용 무대에 서게 될까. 살벌한 이념대립을 넘어서는 춤과 음악의 매력, 이와 동시에 전쟁의 비극성을 뚜렷이 녹여내는 점이 돋보이는 영화다.
“감독님과 시대배경보다는 캐릭터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어요. 포로수용소 안에서 골목 대장 같은, 말썽도 부리고 밝고 호기롭고 그런 캐릭터 위주로요. 저도 멤버들이랑 있을 때는 장난도 많이 치고 얘기도 많이 하거든요.”
음악과 춤에 익숙한 아이돌인 만큼 탭댄스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았을까. “발로 바닥을 두드린 경험은 없어서 처음에는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몸치였어요. 극 중에서 춤에 재능이 있는 역할이니까 피나는 노력을 해야겠구나 싶었죠. 발이 바닥에 붙어있을 땐 항상 탭댄스를 연습했어요. 엑소 멤버들이 좀 그만하라고, 시끄럽다고 하기도 했죠.” 극 중 댄스팀 다른 배우들과 함께 촬영 전 5개월 동안 탭댄스를 배웠고, 북한 사투리는 북한 출신 선생님의 말투를 통해 따로 익혔다고 한다.
오합지졸로 꾸려진 수용소 댄스팀에서 로기수는 단숨에 에이스가 되지만, 엑소의 도경수는 춤솜씨로 첫손 꼽히는 멤버가 아니다.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그가 스스로 평가하는 춤 실력은 멤버 가운데 중하위권. 낯선 탭댄스를 익히느라 활동 초기의 기억도 오랜만에 떠올렸단다. “엑소로 처음 활동할 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춤을 머리로는 추고 있는데 몸은 안 되는 거죠. 탭댄스도 발은 되는데 거울을 보면 상체가 굳어 있고, 상체에 집중하면 발이 안 되고.”
‘스윙키즈’에서 상대역 잭슨을 연기한 자레드 그라임스 역시 실제 브로드웨이에서 이름난 댄서. 알고 보니 엑소의 노래 ‘중독’과 ‘늑대와 미녀’의 안무를 연출한 토니 테스타와 절친한 사이란다.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는 두 분이 가까운 줄 감독님도 몰랐어요. 자레드 그라임스씨도 손꼽을 정도로 유명한 안무가에요. 그런 분과 같이 춤을 추면서 작품을 만들다니.”
영화 속에서 춤 실력이 늘어가는 건 로기수만이 아니다. 도경수는 촬영하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장면으로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를 배경음악으로 혼자 춤추는 대목과 영화 마지막의 에필로그를 꼽았다. 이 두 장면에선 “내가 정말 로기수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에필로그에선 로기수와 잭슨이 단둘이 탭댄스를 춘다. 탭댄스가 충분히 몸에 익은 촬영 후반에 찍기도 했거니와 스스로의 만족감도 높았다. “그 장면은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탭댄스를 할 때 사실 (탭댄스 신발이 바닥에 닿으며 내는) 소리가 몇 개 빠지기도 하는데 거의 안 빠질 정도로 췄거든요. 그 쾌감이 엄청났죠. 브로드웨이에서 유명한 댄서가 아니라 진짜 잭슨이랑 그냥 너무 즐겁게 춤을 추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영화 중반의 ‘모던 러브’는 정해진 안무가 아니라 그 자신의 표현대로 춤을 춘 장면이다. “내가 일상에서 스트레스나 압박을 받은 경험, 그걸 해소했을 때의 기분을 많이 생각했어요. 그 장면을 찍을 때는 오로지 저 자신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렇게 표현한다면 보시는 분들도 공감해주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속에서 로기수는 불과 18세에 전쟁터에 나가 포로가 된 소년. 도경수는 그와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촬영과정을 통해 춤에서 희열을,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 여정은 닮은 데가 있다. “사실 공연을 하면서 춤을 출 때 스트레스를 막 풀거나 쌓인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이랬던 적은 없어요. 항상 구성이 있고 짜여진 안무를 하다 보니까 못 느꼈는데, 이번에는 감독님이 표현해봐라, 하신 것도 있고 내 마음대로 이 감정을 표현해 보고자 했는데, 저는 춤이 그렇게 신날 줄은 몰랐어요. 촬영을 하면서도 너무 신나고, 너무 행복하고. 그런 건 처음이었어요.”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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