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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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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8-09 15:53 조회1,2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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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

다카하시 도루 지음 구인모 번역 

동국대학교 출판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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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 1877-1967)라는 일본인이 1917년 일본사회학원연보에 같은 제목(조선인)으로 발표한 논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논문을 보완하여 1921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이라는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표지에 ‘조선총독부 비밀 조사자료’라고 특기했다.

 

이 책은 식민지시기 일본인 관료와 지식인들이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 들였고, 심지어 당시 조선인 지식인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식민통치에 적극 협조하고 참여한 일본의 어용 관학자였고, 그로 인해 조선인의 심성과 조선의 문화를 식민지 통치자의 시각으로 그릇되게 서술했다.

 

* 일본은 성공인, 조선은 실패인의 이분법으로 갈라 일본은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고, 조선은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식으로 편파적이었다.

이런 논리에 감염된 일부 조선 지식인들도 많았고, 지금까지 유전되어 오고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1895년 Chosen : the land of morning calm / 

Henry Savage Landor

 

이 <조선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선 조선의 지질이나 지리적 조건이 조선 사회, 역사, 정치는 물론 문학, 예술과 사상, 종교까지도 결정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다카하시 도루의 사고방식이다. 14

 

결론적으로 다카하시는 조선인의 대표적인 심성인 ‘사상의 고착성’이나 ‘사상의 종속성’이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조선인의 ‘관용과 위엄’, ‘순종’의 태도와 ‘낙천성’은 길이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15

 

이 <조선인>은 한결같이 조선을 전근대적이고 비문명의 나라로 철저하게 비하하면서, 그에 비해 일본은 조선과 달리 근대적이고 문명의 가치를 이룬 나라로 절대화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16

 

다카하시 도루에게 조선은 부정하고 망각하고 싶은 일본의 과거인 셈이고, 동양의 일본이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을 거쳤다고 자부하기 위해서라도 조선이라는 전근대적이고 미개한 나라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17

 

19세기 이후 민족성 연구는 근대 서양의 국민국가주의가 제국주의로 팽창하는 가운데 식민지 지배 과정에 따르는 폭력의 정당화는 물론, 식민지에 대한 근대적인 지식을 생산해 냈다. 20

 

그의 제자였던 국문학자 조윤제는 한국인의 민족성을 한국인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의 특수성에서 비롯한 ‘은근과 끈기’등으로 정의하고, 그 예술적 표현이 곧 한국문학이라고 했다. 23

 

이광수(1892-1950)는 ‘민족개조론’ (1922년)에서 조선인이 조선 시대에 형성한 허위, 나태, 이기심 등의 부정적인 민족성을 버리고, 고대로부터 유구한 관대함, 금욕, 예의와 같은 민족성을 지니도록 민족성을 개조하자고 했다.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1972년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인의 상징인 흰옷을 통해 색채감의 결여를 지적하거나, 말과 글의 주어로 나와 우리를 혼동하는 현상을 통해 자아관념의 부재, 한복의 평면성과 비기능성을 통해 허례허식을, 또 윷놀이를 통해 조선시대 당쟁을 읽어내고 비판했다. 26

 

남의 눈이 아닌 바로 자기의 눈으로, 또 손쉬운 자기부정이나 자기긍정에 빠지지 않고 한국인이 스스로를 바라보고 자기정체성을 발견해야 한다. 

 

지리적 고찰

조선 민족이 하나의 독립 국민으로서 평온할 경우는 북쪽 호인의 세력이 성하지 않아 압록강과 두만강의 경비가 잘 이루어지고, 중국의 힘이 만주에 미쳐 요동을 오랑캐로 위축시키고, 일본은 국내의 여러 가지 문제로 현해탄에 병선을 띄우지 않는 세 가지 요소가 구비될 때이다. 그러나 이 세 요소가 원만하게 갖추어질 경우란 기대하기 어려웠다. 39

 

오늘날 전하는 조선 고대 민족의 특성으로 예의와 염치를 좋아하고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것 정도는 분명하다. <산해경>의 동이에 대한 기록 가운데 조선이 “군자의 나라로서 북쪽에 있고, 의관을 갖추고 검을 찼으며 짐승의 고기를 먹는다. 사람들은 겸손과 양보를 즐기며 싸우지 않는다.”

 

조선의 역사는 독립 국가의 역사로서의 가치는 없다. 약 2천 년을 거쳐 내홍을 겪거나 예속을 겪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5

 

조선인의 열 가지 특성

 

1 사상의 고착 - 조선인이 한번 어떤 사상을 수용해서 이를 자신의 사상으로 삼으면 끝까지 그것을 붙들고 즐기며 그 권위 아래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모든 선비들의 최종목표는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에 나가는 것인데 과거 시험이 정주학을 기본으로 하는 한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지가 없다.

 

2 사상의 종속 - 이것은 사상이 중국에 종속되어 어떤 것도 조선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바꾸어 말하면 사대주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3 형식주의 - 조선인이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도덕과 윤리의 형식을 중요시하여 자주 실질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사리를 따지고 논의하는 일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4 당파심 - 가문, 계급, 신앙, 이익을 근간으로 손쉽게 튼튼한 당파를 만드는 사람들을 조선인 이외에는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5 문약文弱 - 일본이 건국한 이래 尙武의 나라였던 데에 비해, 조선은 尙文의 나라였다. 무의 폐해란 난폭함이고, 문의 폐해란 약함이라고 하겠다.

* 고주몽, 을지문덕, 양만춘, 연개소문, 김유신, 고선지, 왕건, 강감찬, 윤관, 최영, 이성계, 김종서, 이순신, 이들은 모두 무신이었다.

 

6 심미관념의 결핍 - 예술품이나 골동품이 양에서나 질에서나 볼만한 것이 없다. 조선 전체를 통틀어도 일본의 가장 큰 한 현이 소장한 것만도 못하다. 그나마 가장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들은 중국의 것이다.

나는 조선처럼 예술품을 보존하는 능력이 부족한 나라를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조선평민의 생활에 여유란 없어서, 마침내 산의 나무는 울창하고 계곡은 잔잔하게 흘러,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숲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사하는 유치한 수준의 심미관념조차 생겨날 수 없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우선 베고 꺾어 오늘밤 땔감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만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참으로 불쌍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나는 일본인들처럼 이웃 나라 문화재를 서슴없이 훔쳐간 예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고는 조선에는 쓸 만한 예술품이 없다고 도리어 조선을 나무라고 있다. 

다카하시 도루에게 나는 야나기 무네요시에게 한 번만이라도 물어봤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으리라고 본다.

 

7 공사의 혼동 - 목민의 직무란 나무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하나의 정책이 결과를 낳을 때까지는 5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조선의 군수는 예로부터 일찍 교체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무리 훌륭한 관리라고 해도 일 년 이상 임기를 예상할 수 없고, 한 번 자리에서 물러나면 언제 다시 기용된다는 기약도 없다면, 우선 짧은 임기 동안 온 힘을 다해 소득을 늘리려고 할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부의 원천을 배양할 생각은 없이 오로지 빼앗을 일만 생각할 것이다.

*조선이 지방분권정치인 봉건을 하지 않고 중앙집권정치를 하다 보니 지방 관리를 모두 중앙에서 임명하는데서 오는 폐해를 지적하면서 이것이 부정부패와 비리를 낳게 되고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고 공적인 돈을 마치 제 돈처럼 쓰게 된 원인이라고 보았다. 중국과 일본은 봉건을 했기 때문에 중앙집권정치는 일부 폐해가 있기는 하지만 조선의 특성으로 여겨야 한다.

 

8 관용과 위엄 - 조선인의 용모와 태도 가운데 일본인과 비교해서 관용과 위엄이 있는 것은 분명히 칭찬할 만한 한 특성이라고 하겠다. 행동거지에 여유가 있고 쫓기지 않으며 걸음걸이도 찬찬하고 위엄이 있어 존경할 만하다. 

조선인 얼굴의 길이와 담뱃대의 길이와 느긋함을 三長이라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칭찬을 하면서도 은근히 조롱 섞인 모멸감을 드러내고 있다.

 

9 순종 - 조선인만큼 모든 일에 순종하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국가는 중국의 통제에 순종하여 복종했고, 상류사대부들은 국왕의 권력에 복종했고, 중인과 상민은 계급제도에 순종하여 사대부의 압제에 복종했다.

*신분 계층의 이동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돌리고 순응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이 오직 조선인만의 특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0 낙천성 - 조선의 모든 계급이 일반적으로 술에 취했을 때 보이는 아무런 근심 없이 낙천적인 태도는 일본인에게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양반 가운데 대부분은 오늘날 가난하게 되었으나 그 이전이라고 해서 모든 양반이 부유했던 것도 아니다. 몇 대에 걸쳐 권세를 잃었던 양반은 종종 한 상자의 책과 한 벌의 옷 이외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처지에서도 충분히 편안하게 지냈다. 굴뚝에 연기가 끊긴 지 오래되어도 단정하게 앉아서 낭랑하게 독서를 했고 가난이 뼈에 사무치는 줄도 몰랐다.

*다카하시 도루가 보아도 조선인의 특성 중에서 관용과 위엄, 순종, 낙천적인 면은 지나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 민족에게만 해당되는 고유한 특성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면 많은 장점이 보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거의 단점만을 보게 된다.

 

나는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동화하여 일본인의 장점을 취하기 전에 우선 결점과 단점을 본받아 가장 낮은 등급의 일본인이 될까 매우 우려한다. 149

* 이 책을 읽다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구절이 많이 나오는데 위의 글을 읽으며 한참을 웃었다. 우월감에 젖어 조선인을 후진민족으로 얕보고 오직 가르치려고만 드는 것이 가소롭기 짝이 없다.

 

사대주의의 누습에 따라 강대국이라 할 미국이나 보다 강대하다고 여겨지는 국제연맹의 원조를 예상하여, 민족자결이라는 마치 꿈만 같고 환상 같은 우발적인 사상과 운동이 발발한 것은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167

 

신문을 발행하고, 잡지를 발간하고, 여러 가지 단체를 조직하고, 불꽃놀이 같은 정치운동에 뜻을 품고 분주하게 활동하는 청년의 수는 마치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데에 비해 여전히 조선인은 경제적 활동의 가치를 자각하는 일이란 요원하기만 하다. 170

 

* 이러한 식민지배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은 일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조선 지식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오늘날에도 태연히 일본인을 높이고 한국인을 저능한 민족으로 비하하는 경향이 남게 되었다.

 

다카하시는 조선을 침략하여 조선인들의 독립성을 파괴하고 자율적인 개혁을 중단시킨 죄과에 대하여는 조금도 반성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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