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문학가 산책] 눈 울타리 봄 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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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5-26 07:46 조회1,0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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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돈 /시인(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회원)
산수유꽃이 때 아니게 입을 뗀 건
지난 가을 너무 많은 꿀을 주인에게
도둑 맞았던 가난한 벌들이
겨우내 벌통 속에서 잉잉대며
부채질 농성으로 봄을 재촉한 탓일 게다
눈 속에 잠긴 산울림을 깨우듯
산수유꽃잎 싣고 간 개울물들
신등성이 타고 내려가 가재를 만나고
겨우내 기브스한 얼음 계곡물
속으로만 타고 흐르던 온기 속에
가재는 금모래 물어다 재방을 쌓고
하아얀 은모래밤을 한 뼘씩 내몰고 있다
빗물 발라낸 맑은 날 따라
관심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옥수수 눈 밭 기슭 오슬오슬
마음 경계태세 풀고 언 발 녹이던
주린 참새들도 인적에 놀라 달아났고
신뢰처럼 두터운 털을 단 짐승들은
네 발자국 지녀야 마음이 놓였다
도토리묵처럼 굳어가는 어둠들
눈 맞아 휘어진 등걸 밤새 얘기하던
장작불 열정마저 풀썩 주저앉은 후
새벽별로 하산하는 이른 아침
삽살개 한 마리 동무 삼아 나설 땐
나무들도 나긋 기지개 펴는지
산모롱이 하나씩 접힌 허리 펼 적마다
눈 터는 바람소리 키가 훌쩍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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