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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단편소설> 바다에서 온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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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병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4-04 09:19 조회1,4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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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7bff8c3b68a9198e66b6f80b295485_1554394737_3.png박병호 

 

바다는 은빛 물결로 잔잔했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기우뚱거리며 뛰었다. 해 저물기 전의 바다는 짙푸른 물이 물결치며 여러 색상을 만들고 있었다. 하얀 바다 안개가 장막을 드리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배만 보고 달렸다. 부두가 꿈을 안고 뛰는 어머니를 기다렸다. 섬들과 섬을 이어주는 작은 여객선 한 척이 한 여인과 두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랑과 흰색의 배가 통통통 심장을 울리며 떠남을 알렸다. 표를 못 구한 사람들이 일시에 몰렸다. 여러 섬의 바다에서 육지에 장 보러 왔던 사람들은 이 배를 타야만 돌아갈 수 있었다. 머리에 한가득 봇짐을 인 어머니는 일곱 살 아들과 타인 의지로 공무원을 그만둔 남편과 함께 아수라장으로 변해가는 배에 올랐다. 

어머니는 줄무늬 스웨터를 입은 아낙들과는 사뭇 다른 차림새였다. 굵은 옷감의 검정 치마바지와 화려한 꽃 한 송이 박힌 흰 상의를 입었다. 머리에 제 몸피보다 더 큰 봇짐을 인 채 아들과 남편을 감싸듯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해군 장군 같았다. 바늘 하나 꽂을 데 없는 배는 정원을 초과한 게 확실했지만, 누구도 타박하지 않았다. 장날 마지막 배를 타는 데 성공했다는 안도감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배가 오리처럼 기우뚱거리며 항구를 떠나갔다. 출발부터 승객들이 전후좌우로 군무를 추었다.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 같았다. 배가 승객들의 쏠림 방향으로 기울었다가 평형 회복을 반복했다.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도 표현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상황에 감각을 닫았다. 잠시 후 배가 급격히 앞뒤로 흔들어 사람들이 앞으로 쏠렸다. 아들을 안아 두 손을 쓸 수 없던 남편이 아들을 안은 채 넘어졌다. 

선착장을 떠나려는 배에 몸을 날려 가까스로 탔던 덩치 큰 남자들이 남편을 덮쳤다. 남편은 본능적으로 깔린 아들을 팔과 무릎으로 지지했다. 순간적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승객들이 남편의 등을 포개고 엎어진 남자들 등에 엎어졌다. 같은 일이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연속되었다. 겹겹의 인간 탑이 순간적으로 만들어졌다. 마치 흑사병에 죽은 사람들을 집단으로 묻기 전에 수십 겹으로 널브러지게 쌓아 둔 활동사진 같았다. 

푸른 물결 일으키며 거센 바다로 나아가는 배 안은 수십 명의 사람과 짐 보따리들로 범벅이 되었다. 한참이 지난 후, “아이고, 깨져 죽겠네~!” 한 노파의 고성을 신호탄으로 여기저기서 신음이 흘러왔다. 동시에 “아빠~!” 지지대가 무너질까 봐 부르는 아들의 고음이 흘러나왔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남편의 턱관절 디스크가 빠져나오는 소리도 들렸다. 아들의 눈에 사람이 치이고 밟히고 밀리고, 물건이 짓눌리고 찌그러지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배는 평형을 잃어가며 옆으로 기울었지만, 유유히 큰 바다로 나아갔다. 태평하게 갈 길을 갔다. 어머니는 앞날에 흑암을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곧 닥칠 미래도 먼 미래나 마찬가지의 미래였고 미래는 용왕님의 영역이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만 가면 한산도가 나오고 그곳에서 승객들이 많이 내리니 곧 배의 균형이 회복될 것 같았다. 험한 폭풍우 속 바다에서도 무사했던 여러 경험이 어머니의 바다를 잔잔하게 만들었다. 

선장에게도 태평양 횡단하는 것도 아니고, 염려 없는 연근해 바닷길이었다. 이 정도의 기울기에 멈춰 돌아간다는 것은 항해사의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맹숭맹숭하게 항해하는 것보다 청룡 열차만큼의 전율을 느끼며 나아가는 것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가창오리 떼 군무를 추듯 승객들이 엎어지거나 벽에 기대어 늘어졌다 뭉쳐지기를 반복했다. 모두가 작은 배에 몸과 소유물과 보이지 않은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바닥에 팔과 무릎으로 인간 기둥을 박고 어금니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남편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들도, 수예품도, 남편도 모두 한배에 탔으니 아들만 다치지 않는다면 문제없었다. 

어머니가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아들에게 속삭였다. “아가, 네 몸에는 용왕님의 피가 흐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지켜주시는 그분을 믿고 마음을 꼿꼿이 세워야 한다.” 사람들의 땀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희망만을 떠올리며 어머니가 남편에게 말했다. “곧 사람들이 많이 내릴 거예요.” 그 순간 남편의 머리가 뚝 떨어지고 두 팔이 부들부들 떨었다. 어머니는 남편의 등을 덮친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몸을 일으켜 보세요, 아이가 깔려 죽겠어요.” 그때야 장날 막차 배 타지 말고 아침 배를 타자던 남편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후회가 몰려왔다. 그와 함께 천둥 치듯 쿵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남편 등에 엎어진 사람들이 벽체로 튕겨 날았다. 

많은 승객이 바다에 빠지고 벽에 부딪히며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도 튕겼으나 순간적으로 비어있던 남편의 등으로 엎어지는 행운을 안았다. 남편을 차지했고 자신은 돌덩이가 아니었다. 남편 팔이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들은 벽 쪽으로 밀렸으나 아빠의 팔과 무릎에 막혀 바다로 튕겨 나가지 않았다. 바다에 빠진 사람들의 빈 자리를 선실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채웠다. 그러나 곧 조금 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배가 몰리며 쿵 소리와 함께 선두에 있던 많은 사람이 바다로 날았다. 

공간이 넉넉해지니 남편은 턱뼈의 고통에서 다소 해방이 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천국이었다. 그러나 지옥이 따로 없는 혼란이 배 밖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과 허우적거리는 소리가 어머니의 바다를 채웠다. 배 안에 남은 사람이 겨우 다섯 명이었다.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배로 연결되는 동아줄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남편은 턱이 너덜거리고 어금니가 흔들거렸다. 아들은 뒤통수가 조금 부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배가 두 번 연거푸 급충돌하는 순간 상체와 하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뒤틀리며 틀어져 있던 골반이 바로잡혔다. 서서히 죽어가는 바다에는 폐허의 정적만이 떠돌았다. 무관심이라는 죽음의 정적도 이보다 허탈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바다는 구조선 대신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존재들만이 꿈틀거렸다. 햇빛에 노출되면 죽는 괴물이 빠른 속도로 태양을 집어삼키며 거짓을 고했다. “어선들에 의해 모두 구조되었다!”라는 소식이 희소식의 옷을 입고 빠르게 전해졌다. 듣고 싶은 소식을 접한 구조대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구조선이 올 리 없는 바다는 어머니마저 불길한 예감이 들게 했다. 

사그라지는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며 바다는 온 힘으로 불꽃을 밝혀 놓았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밝히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짙은 어둠이 만든 검푸른 풍랑이 어업 지도선이라도 보내올 것 같은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억지로라도 붙들지 않으면 행운마저 외면할 것 같았다. “용왕님, 검은 풍랑을 일으켜 주옵소서.” 어머니의 기도 후 거짓말처럼 바다 저편에서 하얀 바람이 불었다. 

한 고깃배가 검게 변한 바다에 흰 물거품을 일으키며 어머니의 외침을 듣지 못하고 지나쳐 갔다. 작은 희망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기도 소리에 깨어난 남편이 어머니에게 제안했다. “먹구름이 배를 덮칠지도 모르니 아들을 기둥에 묶어 둡시다.” 잠시 생각하던 여인이 말했다. “모든 먹구름이 큰 파도를 동반하지 않아요, 오히려 거대한 파도가 구조선을 보내줄지도 몰라요.” 남편은 어머니를 이기지 않았다. 바다가 험해도 겁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파도를 겁내서는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던 어머니였다. 

“그까짓 먹구름을 보고 겁을 먹으면 미래가 없다. 돌풍이든 강풍이든 올 테면 오라고 두 팔 들어 외치는 자에게 밝은 미래가 다가온다. 배에 물이 들어오면 구조대원도 함께 들어오게 되어 있단다.”라며 어머니가 아들에게 열성을 내어 말했다. 남편은 일상 속에서는 부드러운 성격으로 변하는 여인이 자신의 아내라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파도가 넘실거리며 배 갑판을 내리쳤다. 나머지 두 생존자 중 피를 흘리던 중년 남자는 속옷을 찢어 머리를 감쌌고 팔이 부러진 아낙은 천으로 팔을 감쌌다. 어머니도 자신의 살구색 긴 스타킹을 벗어 남편의 턱을 머리에 고정했다. 

선장 없는 배는 파도 따라 표류했다. 여인은 깜깜해진 바다에서 흰옷을 흔들었다. 희망을 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음을 알렸다. 호루라기를 절박함이 아닌 노랫가락처럼 늘어지게 불었다. 바람이 거세졌다. 암초에 선미가 파손되고 물이 갑판에 서 있던 사람들의 발목까지 차올랐다. 배는 통제력을 잃고 떠밀렸다. 바람 따라 떠밀려가던 배가 이름 없는 돌섬에 닿았다. 아들의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바닷물 때문에 어머니의 가슴은 침몰해갔다. 배 뒤편 두 타이어를 떼어내면 배가 가라앉겠지만 그것을 지지대 삼으면 다섯 명이 돌섬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타이어가 묶였고 사람들의 몸통도 함께 묶였다. 타이어가 빠진 배는 급격히 가라앉고 다섯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타이어를 안고 몸을 던졌다. 돌풍의 바다에 빠질 뻔한 위험을 벗어났다. 모두가 돌섬에 오르자 배는 최후의 요동을 치며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밤바다의 섬은 한겨울만큼 추웠다. 어머니는 “이곳을 탈출하지 못하면 얼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룻밤만 견디면 따뜻한 태양이 찾아오지요,”라고 소리쳤다. 어둠의 갯바위에 앉아 어머니를 생각하며 남편이 아들에게 동화 읽듯 속삭였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봇짐을 이고 아이를 업고 중년 사내를 데리고 다니는 장사꾼 여인을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지만 섬 처녀와 어머니들은 네 엄마를 기다린단다. ‘아무리 봐도 이런 장사를 할 사람은 아닌데,’ 하면서….” 

돌섬에는 바람에 막는 푹 꺼진 곳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 펭귄처럼 아이를 가운데 두고 네 명의 어른이 감싸 안았다. 승객이 꽉 차 있던 배 안에서처럼 다섯이 한 몸이 되었다. 아들을 향한 남편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른 봄에 혼숫감들을 가져와 외상으로 깔고, 가을에 다시 와 물건값을 받아가는 수완을 처음 선보인 사람이 네 엄마다.” 몇몇 단어가 어렵긴 해도 어린 아들은 아빠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어머니가 아빠의 말끝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부싯돌로 불을 만들어 피웁시다.” 나뭇가지와 통나무와 주먹만 한 부싯돌과 습기 없는 마른 돌을 어머니가 돌섬을 더듬어 찾아왔다. 젖은 통나무에 불을 붙이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남편은 틈을 찾아 아들에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수예도 해보지도 배워본 적도 없지만, 혼수품과 결혼 예복과 모기장도 직접 만든다. 심지어 죽어가는 꽃도 네 엄마의 복사꽃 원앙 베개로 되살아나지. 아들아, 난 최고의 아내, 넌 최고의 엄마를 두었다.”

불을 시급히 붙여야 할 상황에 부닥친 후에야 이야기를 그친 남편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 내가 불을 붙이겠소.” “턱 괜찮아요?” “골반보다는 턱이 더 견디기 쉽지 않겠소?” “내 골반은 이제 정상이에요.” “아! 그것 참말이요? 감사, 감사, 감사! 정형외과 의사가 되지 못한 나를 후회한 적이 많았소.” 남편이 누군가에게 연신 감사하며, 점점 빠르게 바다가 떠나가도록 외쳤다. 

그 순간 와! 함성과 함께 통나무에 불이 붙었다. 희망의 불씨가 불을 낳아 제법 큰불이 되었다. 이어 구조선이 왔다. 또 함성이 터질 찰나에 어머니가 역정을 냈다. “조용히들 해요, 많은 사람이 죽어간 바다예요.” 틀어진 골반이 바로잡힌 것도 기쁘지 않은듯했다. 구조선에 오르며 어머니가 남편에게 물었다. “아들이 극과 극의 바다에서 엄마와 함께 나온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겠지요?” 양쪽 어깨가 수평선처럼 반듯해진 여인이 구조선 갑판에 똑바로 서서 바다에 속삭였다. “세상에 풍랑이 인다고 희망을 버릴 엄마는 없지?” 밤바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시고 별빛, 달빛, 그리고 바다에서 오른 희고 노란 불빛의 융합으로 신비로운 색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joel.park@investorsgro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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