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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봄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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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21 15:19 조회1,5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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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e6001d4c87e5bcae56574ec71a332b_1553206772_4072.jpg정재욱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봄날 눈이 내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줄 알았는데, 솜방망이처럼 커다란 눈송이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입춘, 우수, 경칩의 절기가 다 지난 삼월에 내린 눈이다.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나른함이 밀려올 계절인데 말이다. 여느 봄 날 같으면 봄꽃이 피어나고, 봄볕이 따스하게 내리쬐었을 텐데. 이게 여기 밴쿠버 날씨가 맞나 싶다. 밴쿠버 하면 겨울에도 비가 많이 내리는 게 대명사였다. 어느 해엔 눈이 한 번도 오지 않아서 처음으로 샀던 스키장 시즌 티켓을 한 번도 쓰지 못하고 버려야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왔다 하면 엄청나게 쌓일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고,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하지 않은 차들을 도로 주행을 할 엄두도 못 낼 지경이 되었다. 지난 해에는 예상 밖으로 따뜻한 겨울이 되나 싶더니 겨울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눈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캐나다에 와서 가장 늦게까지 눈 구경을 했던 게 사월이었다. 아마 십 여년 전, 밴쿠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는데, 그 때도 눈이 많이 내려서 차로 운전하는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눈이 내리면, 낭만에 젖어 창 밖의 눈 내린 풍경에 도취되어 감상적이 되곤 한다. 언제부터 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이 되어버린 내 모습을 발견한다.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 도로가 빨리 안 녹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버스나 스카이트레인이 사람들로 붐비고 연착이 될 텐데 하는 등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눈같이 하얀 순수함에서 한 발짝 멀어져 가진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애써 동심으로 돌아가기엔 힘들지 모르지만, 문학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달라진다. 시인이나 문학가들에게 ‘봄눈’은 글 감의 좋은 소재가 되나 보다. ‘봄눈’을 제목으로 한 시들이 많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옛날에도 봄에 눈이 많이 내렸고, 봄눈이 내리는 걸 보며 많은 시상들을 떠올리게 한 것 같다. 정지용 시인의 ‘춘설(春雪)’이란 시를 읽으면, 봄에 내린 눈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다. 정호승 시인의 ‘봄눈’에서는 옛날 추억이 생각나고, 누군가 그리워지는 느낌이 들게 한다. 어쩌면, 누구나 ‘봄눈’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봄눈’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춘설’보다 좀 더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난다. 글자에서 색감이 느껴진다. 봄의 초록 이랑 하얀 눈의 이미지가 너무 뚜렷해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봄의 따사로움과 눈의 차가움이 전혀다른데도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봄눈은 금방 녹아 내린다는데, 아직까지 우리 동네엔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봄눈은 아직 겨울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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