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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엄앵란 "이제는 말할 수 있어, 유명인과 결혼은 말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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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4-05 01:00 조회1,7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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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엄앵란이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한국영화박물관 신규 기획전시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를 참석해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뉴스1]

 "어머 내가 이렇게 잘생긴 사람하고 살았어."
 영화 '맨발의 청춘' 스틸 속 젊은 신성일의 모습에 배우 엄앵란(83)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4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화박물관에서 개막한 기획전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를 둘러보면서다.  
 이 전시는 한국영화계의 대스타이자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신성일(1937~2018)을 1960년대 청춘영화와 함께 조명하는 자리. 아내이자 동료 엄앵란은 "내가 6·25 때 기차 지붕꼭대기에 이불 뒤집어쓰고 피난 간 사람"이라며 "우리 시절에 어디 영화박물관이 있었나, 영화인으로서 너무 반갑다. 영화하는 젊은 학생들한테 너희도 하면 이렇게 된다, 희망을 가져라, 그런 힘을 주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슬픈 모습 보이기 싫어 집에만 있었죠

 
 신성일이 세상을 떠난 것은 지난해 11월. 엄앵란은 "사람들한테 내 슬픈 모양을 보여주기 싫어서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강아지하고, 그러다 오늘 나온 거죠. 미장원도 가고. 내 팬들한테 실망을 주진 말아야지." 그는 "저녁노을만 지면, 나는 언젠가 가겠지, 이 양반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그런 마음에 소리 없는 눈물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나온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4일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 기획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 하는 엄앵란. [연합뉴스]

 이번 전시는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이 연기한 '두수'의 방을 재현한 공간 등을 통해 60년대의 청춘 문화를 느껴볼 수 있게 했다. 영화에서 신성일이 입었던 가죽자켓과 청바지, 엄앵란이 입었던 코트 등의 의상도 복원 제작해 공개한다. 
 엄앵란은 "그때는 배우들 전부 가난해서 구제품 시장에서 주워입고 나오고 그랬는데, 나는 자존심을 가졌다"며 "내가 버는 돈은 다 옷에 썼다. 그래서 남들은 빌딩 짓고 그러는데 집을 제일 늦게 샀다"고 했다. 특히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를 두고 "내게 옷을 가르쳐 주고, 입혀준 사람"이라며 "시나리오가 나오면 노라노 선생님한테 갖다 맡겼다"고 말했다. 

 

 
 화투치던 신성일.. "저 남자 참 머리 좋다" 

 
 남편이자 동료로서 신성일에 대한 다양한 기억도 돌이켰다. "어제인가 그제인가 이미자씨 노래 '동백아가씨'를 들었어요. 영화 '동백아가씨' 촬영 때 생각이 나요. 여럿이 밤에 스태프하고 화투를 치는데, 나는 화투를 몰라 옆에서 응원하면서 신성일씨를 보니까, 참 눈치도 빨라. 요거 냈다, 저거 냈다 하는데 돈을 그렇게 따더라고요. 저 남자 참 머리 좋다, 저런 남자 결혼하면 잘 살겠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 

신성일이 청춘스타로 급부상한 '맨발의 청춘'(1964).당시 청춘들 사이 유행한 사진 속 흰 점퍼와 함께 출연한 엄앵란의 코트 등이 원본에 가깝게 복원돼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김수용 감독의 '청춘 교실'(1963)에서 신성일과 엄앵란.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스타콤비의 결혼앨범도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한다. 신성일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영화 '로맨스 빠빠'를 찍으면서. 엄앵란은 이미 유명 배우, 신성일은 신인 시절이다. 엄앵란은 "어디서 깍두기, 익지 않은 무를 숭숭 썰어 놓은 것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고 그때를 표현했다. 함께 전쟁영화를 찍다가 파이프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리던 자신을 병원에 데려간 일도 들려줬다. 촬영현장을 못 떠나게 막는 제작진에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 갔다"며 "의리 있는 남자"라고 했다. 

 

 
 "유명한 사람하고 결혼하지 말라"는 이유는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그가 꺼낸 말은 "유명한 사람들하고 결혼하지 말라"는 것. "남편 얼굴을 볼 수가 있어야지. 이 영화가 끝나면 저 영화 제작진이 와서 데려가고.,.그 인기로 흥행이 잘됐던 것 같아. 그렇게 편지를 보내고 난리치고 왜들 그러셨는지 모르겠어...그 사람의 일생이 너무 불쌍해...일만 하다가...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도 큰 병이야..." 
 신성일은 전성기였던 1964~74년에는 11년 동안 한국영화 전체 제작 편수의 4분의 1에 달하는 39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1967년과 70년은 출연작이 한 해 무려 49편이나 됐다. 일주일에 한 편꼴이다. 

"'맨발의 청춘'이 잘되니까 '맨발' 들어간 영화가 또 나왔지." 신성일 출연 영화 포스터를 살펴보던 엄앵란이 추억에 잠겼다. [뉴스1]

 이번 전시에는 청춘영화를 중심으로 그의 출연작 가운데 35편의 포스터, 문희·윤정희·남정임 등 당시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트로이카 여배우와 함께한 작품의 사진과 영상 등도 전시된다.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1층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6월 30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기존 팬들에겐 추억의 기회"라며 "젊은 세대에게는 신성일 선생님이 한국영화사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왜 청춘 아이콘인지 쉽고 흥미롭게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전시가 되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빠르게 간 청춘...간다는 것 무서워 말고 

 
 개막 축하 행사에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정진우 감독, 이장호 감독, 배우 이해룡 등이 함께했다. 엄앵란은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하이고, 젊은 세월이 정말 너무 빠르게 기차 타고 지나온 것 같은 마음이었어요. 근데 가만히 보니까 만물이 다 이렇게 가요. 간다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아야겠고, 아름답게 생각해야겠다 하니까 편안해요. 그리구 보고 싶고요. 가슴에 아직까지 신성일이란 존재가 박혀 있구나 생각해요. 다 같이 반갑게 있다가 헤어져야 한다는 거 슬픈 일이에요. 안 울었어요. 너무 울면 여자가 숭하더라고요. 마음으로 삭일라니까 좀 어렵네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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