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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마당에 강을 하나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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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병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4-12 09:21 조회1,7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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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수/시인. 소설가

 

 

 

 

 

강가에 있다고 하자.

 

아이는 분홍 개나리를 보았다. 다리 난간에 매달려 꿈처럼 누워 있는 하얀 개나리를 보았다. 

 

파르스름하게 뻗은 줄기가 허공을 하늘거리는 것은 흡사 노래와도 같았다. 아이는 누웠다. 등 밑에 닿는 흙이 무척이나 무서웠다. 노래를 부를 수 없는 흙이 무척이나 싫었다. 아이는 강 위에 누우면서 개나리를 보았다. 개나리가 옆에 와서 같이 누웠다. 강물이 아이의 겨드랑이를, 허리를 간지럽혔다. 개나리가 웃는다. 

 

아이의 눈 앞에 구름이 있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구름은 눈 안에 있었다. 구름이 빗소리를 들려준다. 구름은 아이의 귓속에 있었다. 아이는 물속에 잠겼다. 잠기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물고기가 되었다. 물고기는 노래를 불렀다. 개나리는 물고기하고 똑같이 생겼다. 아이는 물고기를 만진다. 만질 수가 없었다. 물고기가 개나리에게 들려주었다. 난 하늘에서 살아. 물고기는 무엇을 잃어버렸다. 아이도 무엇을 잃은 것 같았다. 개나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개나리도 무엇을 잃어버렸다. 적막했다. 구름이 웃었다. 강물은 웃지 않았다. 아이는 잃은 것이 없었다. 구름이 아이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지도를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지도가 아니었다. 강은 아이에게 줄게 없다. 아이는 갖고 싶지 않았다. 구름은 물고기의 집이었다. 구름은 아이의 집이 아니었다. 흰 구름이었다. 구름 속은 검정이었다. 아이를 잃은 것은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도 엄마가 있다. 아이를 잃은 것은 엄마였다.

 

아이는 땅 위에 누워있다. 노래는 지겨웠다. 땅이 아이를 물어 뜯었다. 이빨이 부러졌다. 아이는 땅에게 소리를 질렀다. 땅은 아이를 물었다. 아이는 아팠다.

 

아이는 강 위에 누웠다. 구름이 눈 앞에 있었다. 구름이 아이를 간지럽혔다. 아이는 재미있게 웃었다. 강이 아이의 엉덩이를 간지럽혔다. 아이는 강에서 나왔다. 

 

바로 옆에 개나리가 있었다. 개나리가 다리로 간다. 난간에 목을 매달았다.  노란 개나리가 거기 있었다. 밤이었다. 달빛 때문에 강이 번뜩였다. 아이가 웃었다. 구름이 웃었다. 아이는 피곤했다. 아이는 잠을 잔다. 개나리가 잠을 잔다. 물고기가 잠을 잔다. 강이 잠을 잔다.

 

강가에 서 있을 수는 없다. 

 

집 마당에 강을 하나 심어야겠다. 수억년 이래 인간이 갈구해 온 구름을 축축하게 이어가는 환상의 흐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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