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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가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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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별 줄리아 헤븐 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4-17 14:07 조회1,5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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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00159c7dacc3eb486dad547fb5c0c_1555535235_8102.jpg 섬별 줄리아 헤븐 김

 

 

 

 

 

아들과 함께 한국 예능방송을 보던 중이었다.

 

상식과 시사를 개그와 토크를 곁들여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퀴즈프로인데, 칸느 영화제에서 ‘아가씨’라는 영화작품으로 수상했다는 박찬욱감독의 문제가 제시되고 있었다.

 

박감독은 초등학생 딸의 숙제로 가훈을 제출해야 했는데 무엇으로 정했을까?

 

의외의 문제에 정답은 ‘아니면 말고’였다. 이 것 저 것 해보다 안되면 미련 갖지 말고 다른 것을 하면 된다는 부연설명이 있었다.

 

여짓것 그가 보여주던 작품세계와 잘 어울리는 재치 있는 가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도 잊고 있던 우리 집 가훈이 떠올랐다. 나의 두 아들녀석에게만 적용되던 독특한 우리 집만의 가훈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학창시절에도 우리 집 역시 가훈은 있었다.

 

고풍스러운 액자에 넣어진 장엄하고 무게 감 느껴지는 붓 글씨체가 현관 위에 늘 걸려있었다.

 

뜻 모를 한자문구가 우리 집 가훈이었다기보다는 집 안을 장식하는 소품 정도로 여겼다.

 

그나마 내가 한자를 읽고 뜻을 알게 된 것은 한자공부를 시작하던 중학교에 입학하고 서였다.

 

집 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가화만사성’의 의미를 어린 내가 몸에 담기엔 고루하고 어려웠던 가훈이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니, 아이의 훈육을 위해서라도 가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아이가 제법 자기 의사를 곧잘 표현할 만큼 자라니 세간에는 ‘미친 네 살’이라는 수식어가 떠돌 만큼 울 큰 놈도 네 살로 접어들어가는 시기였다. 아들에게 이해가 되고 행할 수 있는 글귀를 고심 끝에 하나를 정했다.

 

‘장난이 지나치면 버릇이 없어진다.’ 아들의 가훈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스런 행동에도 이 것을 적용해서, “장난이 지나치면 버릇이 없어진다.”를 세 번 말하라고 하면, 아들은 복창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세 번의 복창을 들어본 적이 없다. 처음 시작의 한 번은 장난기 가득 담고 큰소리로 외쳐대나 이미 엄마의 얼굴표정을 읽은 아이는 눈물 섞인 음성으로 “잘못했어요.”라고 시인을 하기 때문이다.

 

정색을 하고 있는 엄마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과 짧고 간결해진 엄마의 말투는 매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큰 애가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아들의 가훈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가훈이 바뀌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아들녀석의 학교생활 때문이었다

 

 

 

어느 날부터 학교에 갔다 오면 아들은 입만 열면 친구들의 이야기다. 듣고 보면 모두 친구들의 잘못이고, 자신만 잘했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들의 가훈을 ‘아낌없이 칭찬하자’로 정했다. 남을 칭찬하는데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소위 돈 들어 가는 일도 아니니 열심히 칭찬해주라고 했다. 비록, 시작은 아들의 심성을 위해서였지만, 그것은 내게도 적용되는 좋은 가훈이었다.

 

그 때 아들과 함께 훈련이 된 탓에 내가 친구들에게 칭찬을 하면, “넌, 누구에게나 칭찬을 하니, 진짜인지 알 수 없어.”라는 기분 좋은 오해도 종종 받았다.

 

드디어, 일 생에 단 한번 언제고 꼭 거쳐 간다는 사춘기가 아들녀석에게도 찾아왔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뭔지 모를 거리감을 내게 두던 아들아이였다. 곱 쌀 맞던 아들녀석의 말수도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신경이 쓰이던 어느 날 아들아이의 방에 들어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내동댕이친 듯이 펼쳐진 노트 옆에는 구겨진 종이뭉치들이 있었다.

 

그것은 아들의 일기장이었다.

 

자신만 먼지 같은 존재에 하찮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보석 같은 존재라고 쓰여 있었다. 심지어, ‘나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라는 글귀도 있었다.

 

아들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두근거림 보다 아들이 써놓은 글에 내 심장은 타 들어 갈듯이 죄여왔으며 눈물은 쏟아져 나왔다. 무엇이 아들아이를 이토록 참담하게 만들었는지 그게 궁금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아이에게 엄마의 불안감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엄마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들아이는 얼마 전에 아파트 상가지하에 자그마한 교회가 생겨서 친구를 따라 갔다는 것이다.

 

그 날 목사님의 설교는 나는 먼지 보다 못하고, 하찮은 인간일 뿐 다른 사람들을 귀한 보석처럼 여기라는 말씀을 하셨다는데 아들아이가 잘못 받아들였던 것 같다. 사실, 집안 대대로 불교 집 안에서 자라온 나 역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는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목사님이 야속했다. 비유를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물론, 하나님의 사랑으로 기쁨 속에 살고 있는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오히려, 먼지 보다 더 못한 나를 사랑해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심에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날마다 기쁨의 감사가 쏟아지는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훈을 바꾸는 일이었다.

 

 

 

“오늘부터 우리 집 가훈은 ‘자신을 사랑하자’로 정한다. 그 건 자기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야.”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가훈이 새로 바뀌게 되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들아이도 기분 좋게 순응하며 받아 들였다.

 

새로운 가훈 탓인지는 몰라도 점차 밝아지고 자신을 찾아가는 아들의 모습에 안심을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 때 그때마다 아들의 상황에 맞게 가훈을 정했던 게 정말 잘했던 것 같다.

 

가훈은 어긋나갈 수 있었던 아들의 사춘기조차 무사히 넘길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부작용을 낳은 단점도 있다. 지나치게 자기자신을 사랑한 나머지 아주 가끔은 자신을 먼저 챙기는 야속한 모습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형에게 적용되던 일종의 가훈은 어김없이 늦둥이 작은아들에게도 통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장성하니 그나마 있던 가훈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가훈은 가끔 우리들의 추억을 회상할 때 꺼내 드는 에피소드 같은 기억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이 참에 누구에게나 국한되지 않는 우리가족 모두의 가훈을 새로이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화만사성’,’수신제가치국평천하’같은 좋은 뜻임에도 와 닿지 않는 진부한 가훈은 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왕이면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과 현실에서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는 가훈을 정해 보기로 했다. 나와 두 아들에게 어려움이 닥쳐오고, 힘든 상황이 생긴다 하더라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버팀목이 되어줄 그런 가훈이 필요했다.

 

마침내, 우리 집에도 가훈이 생겼다. 나와 두 아들이 충분히 가훈대로 살아갈 수 있는 가훈이 만들어졌다. 어려움 속에서도 낙천적일 수가 있고, 포기와 좌절의 순간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진취적인 힘을 보태주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부여하는 무엇보다 우리가족에게 꼭 필요한 안성맞춤 가훈이다.

 

 

 

우리 집 가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부족하고 모자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뭐든 해나갈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가훈이다.게다가 상황이나 여건이 나쁜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감사가 따르게 되는 정말 탁월한 선택의 가훈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가훈 속에는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도 깃들여 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감사가 절로 나오는 기쁨의 성경구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 중에도 들어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을 달리 말 하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라는 뜻이 된다.

 

가훈 하나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니 나뿐만 아니라 두 아들의 미래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찰 것을 확신한다.

 

 

 

                 -2019년 4월 9일 가훈 만들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행복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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