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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팀 홀튼즈의 고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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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4-25 16:04 조회2,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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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de26ea7796cf5a60770d99b04898f5b_1556233437_9178.jpg정숙인 /수필가,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원

 

 

 

집에서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집중이 안될 때 나는 집 근처의 팀 홀튼즈를 찾는다. 일 년 내내 언제나 북적거리는 그 곳이 의외로 집중이 잘되고 글이 잘 써지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곳에서 퇴고한 원고만도 십 여 편을 넘어서고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에 외딴섬처럼 인가와 떨어진 거처가 조용하지만 깊은 물 속에 빠진 것 마냥 귀가 먹먹할 만큼의 고요함이 때로는 끓어오르는 창작을 방해할 때가 있다. 적막한 고요함이 오히려 독이 되어 아무것도 하질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차라리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또렷한 집중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지역 특성상 팀 홀튼즈의 고객은 대부분 연로한 분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비씨주 켈로나는 은퇴한 노인들이 도시 인구의 사분의 일을 차지한다. 특히 글렌모어 지역은 연세드신 분들의 미팅이 매일 이루어지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오후의 차를 마시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에 그 곳을 찾았다. 식사 시간과 대조적으로 테이블 한 두 군데를 빼고는 텅 비어 있었다. 주문한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구석진 곳에 앉아 원고를 검토하였다. 컴퓨터 화면에 코를 박고 한참을 빠져 있는데 누군가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나의 오감이 빳빳이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아무래도 쇠지팡이에 발등을 찍힐 것 같았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  불안한 예감은 늘 적중하는 법이다. 건장한 체구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발을 안쪽으로 집어 넣었다. ‘휴우!’ 안도의 숨을 고르는데 무뚝뚝한 얼굴로 노인은 내게 손을 들어올린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다말고 다시 일어나 내려진 커튼을 둘둘 말아 가져온 지팡이로 받쳐 두는 것이었다. 줄을 반대로 당기면 걷혀진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노인은 그저 자신의 지팡이에게 고집스럽게 일을 시키고 싶어했다. 어차피 그것은 한 쪽 구석에 기대어 할 일이 없을 터였다. 한때 미남이란 소리를 꽤나 많이 들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달게 마시고 자리에서 금방 일어났다. 받쳐둔 지팡이를 뽑아들자 말렸던 커튼이 또르르 굴러 내려왔다. 노인은 그런 커튼에게 수고했다는 듯 손을 든다. 개구쟁이같은 노인의 행동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그의 집에 친근함이 넘치는 덩치 큰 충견 두 어 마리가 있지 않을까 상상이 되었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오후의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그가 가진 평화와 자유로움이 무한정 부러워 그가 나간 문을 쳐다보며 잠시 멍해 있었다. 갑자기 그 문으로 여러 그룹의 노인들이 앞다투어 들이닥쳤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원고로 시선을 돌렸다. 조용했던 실내가 갑자기 도떼기 시장이 되었다. 순식간에 내부는 빈좌석 하나 없이 가득차버렸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하기 시합에라도 나온 경쟁자들마냥 열띤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깊은 우물에 가라앉은 것 마냥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먹먹한 고요함이 전신을 엄습했다. 그와 동시에 내 눈에 신기하게도 노인들의 얼굴이 젊은 날의 얼굴들로 비춰졌다. 깊게 늘어진 주름과 검버섯이 피어난 뒤안길에는 그들이 지내온 젊은 날들이 투영되는 햇살과 함께 내비춰졌다. 그들은 꽃다운 이십대 혹은 삼십대로 되돌아가 청년의 얼굴을 하고 마주한 친구들과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떠오른 태양이 사그라들기 전, 석양으로 최고의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듯 내 눈에 비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숭고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푸른 청춘으로 흘렸던 웃음과 눈물들이 함께 부대껴 온 장구한 인고의 세월과 범벅이 되어 저들의 가슴 밑바닥에 진주처럼 들어있을 크기도 모양도 성질도 저마다 각 각 다른 사리를 짐작케 하였다. 나는 내심 경건해졌다.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젊음이지만 그 이상으로 역시 얻을 수 없는 것이 연륜이었다. 젊음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상당수 존재하겠지만 나이듦을 부러워하는 이도 존재하리라. 나는 후자에 속했다. 나이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내 말에 언젠가 엄마는 내게 ‘미친 년’이라고 하였다. 거울을 보며 늙어가는 본인의 모습이 보기 싫다고 팔순의 노모가 한탄할 때였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나의 말은 순서대로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 보는 것, 깨닫는 것이 저마다 다르기에 그 다름이 좋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는데 어머니는 무조건 늙어보이는 것이 좋아보인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나 보았다.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아무리 젊고 예쁘고 건강하고 잘생긴 사람도 결국에는 늙기 마련이다. 이왕이면 늙는다는 것을 세상에 그 어떤 것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고귀한 것과 바꾼다고 생각하도록 하자.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로지 나이들어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음과 깨달음이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자. 팀 홀튼즈에 와서 글을 수정하며 퇴고의 작업을 거치면서 우리 인생이 주는 교훈을 얻는다. 잘못된 계획과 판단, 여러 오류를 거치면서 살아야하는 인생의 궤도안에서 이탈과 수정을 반복하며 끝을 잘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 살아가며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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