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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아름다운 미완성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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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봉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5-30 08:59 조회1,4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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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c79f3d817e20edf4fa9aaab56642ddc_1559231970_7629.jpg안봉자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회원

 

 

 

 

 

     밤이 깊어가고 있다. 밖에는 아침나절부터 내리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데ㅡ 

 

비 때문일까? 마음이 자꾸만 밑으로 가라앉는다. 좋은 책도, 국화차의 은은한 향기도 이 밤엔 마음의 울타리 밖에서만 서성거릴 뿐, 선뜻 가슴으로 들어와 주지 않는다. 아예 읽던 책을 덮어버리고 CD 플레이어에 <슈베르트>의 8번 교향곡을 틀어놓고서 창으로 다가간다. 창밖 저쪽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내가 마주 다가와 이마를 맞댄다.

 

     그래, 이 밤엔 너랑 나랑 둘이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나 듣자.

 

     방안 가득히 넘실대는,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의 미완성 교향곡. -- 여느 완성된 교향곡들보다 더 사랑받는 곡이다.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이처럼 온화하고 친근한 사랑의 언어로 다정히 속삭이는 매력을 지닌 교향곡을 나는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 그 아름다운 선율은 사람의 영혼을 끝없는 사랑으로 휘어잡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교향곡들이 대개 4악장으로 구성되는 데 비해 유달리 이 곡은 2악장으로 끝났다 하여 형식상으로는 미완성곡 이라고 불리지만, 내용상으로 볼 때 슈베르트는 이 두 개의 악장에서 이미 할 말은 다 했기 때문에 천재답게 거기서 끝냈을 것이라고 어느 음악 평론가가 말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는 곧 미완성이면서도 어느 완성품보다 아름답다는 말이다.

 

     그리고 보면, 미완성 예술품 중엔 완성품들보다 더 많은 찬사와 사랑을 받는 것들이 꽤 여럿 있는 것 같다. 슈베르트의 8번 미완성 교향곡 외에도, 모차르트의 장송곡 (Requiem) 또한 걸작 미완성 곡으로 유명하다. 이는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각품 중에서는 로댕의 ‘지옥의 문’과 미켈란젤로의 ‘네(4) 미완성 노예들’ (Four Unfinished Slaves)이 미완성 걸작품들로 손꼽히며, 그림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방박사의 경배’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꼽는다.

 

     나에게는 미완성 걸작품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4 미완성 노예들’ (Four Unfinished Slaves)이다.  내가 ‘4 미완성 노예들’을 처음으로 본 것은 10년 전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박물관 (Galleria dell 'Accademia)에서였다. 그 큰 박물관은 온통 미켈란젤로의 작품들로 가득히 메워져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품이라고 하면 당연히 제일 먼저 손꼽히는 ‘데이비드’(David) 상과, 방금 숨 거둔 예수님을 가슴에 안고 슬픔에 오열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조성한 ‘피에타’(Pieta)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완성 작품들을 제쳐놓고 유독 ‘4 미완성 노예들’에게 더 매료되었는지.

 

     그날, 군중 틈에 섞여 전시장을 천천히 돌고 있던 나는 ‘4 미완성 노예들’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거기엔 네 점의 대리석 조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도 특히 두 작품 앞에서 나는 거의 숨이 막힐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2m가 훨씬 넘는 높이였으며, 그중 하나는 남자 노예가 돌 속으로부터 바야흐로 몸을 비틀며 탈출하려고 안간힘쓰는 형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을 할 수 없는, 곱상한 얼굴의 주인공이 수치로 가득한 몸짓으로 얼굴을 한쪽 팔로 가린 채 돌 속으로부터 걸어 나오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미술에 짧은 나의 식견이지만, 그들을 보는 순간,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리 인간들이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원죄’로부터 탈출하려고 부단히 몸부림치는 모습과 원죄를 조장한 여인 <이브>의 수치를 묘사하는 작품을 조성하려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남자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비참했다. 

 

어깨와 등과 하반신이 아직도 무거운 돌 속에 박혀 있는 그는, 있는 대로 몸을 비틀며 필사적으로 돌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문자 그대로 “지옥”이 넘실거렸다. 보는 이에 따라서, 여기서 ‘돌은 인간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무거운 현실을 뜻할 수도 있다. 또는 헤어날 수 없는 가난과 싸움일 수도 있고, 타협할 수 없는 현실에 타협해야 하는 일상 속의 굴욕일 수도 있으며, 욕심. 화냄, 어리석음, 즉, 탐 진 치(貪瞋痴)를 동반한 인간의 세 가지 업보로부터 벗어나려는 부단한 발버둥일 수도 있겠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죽기 전에 그 작품들을 완성했더라면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돌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는지, 아니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전혀 다른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을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영원한 비밀이다.

 

     아무튼, 미켈란젤로는 그 작품들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었고, 작품의 주인공들은 그때부터 그렇게 고통의 순간에 정지된 채, 지난 5세기 동안 돌 속에 묶인 발들을 빼어내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그 두 점의 미완성 작품들이 그날 아카데미아 미술 박물관을 가득히 채웠던 다른 어느 완성품들보다 더 커다란 의미를 전하며, 아직도 내 가슴에 생생한 파문으로 남아있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창 저쪽 어둠 속의 또 다른 나는 여전히 개똥철학자의 표정으로 창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거실 시계가 새벽 두 시를 알린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의 다른 한쪽,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의 '4 미완성 노예들'이 고뇌의 몸짓으로 '돌'에서 해방되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치고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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