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건너 글동네] <동화> 틀니를 찾아라!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동화> 틀니를 찾아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정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1-21 09:34 조회1,410회 댓글0건

본문

    5a9756c8f9ac110d25918d797a21563d_1574357536_2692.jpg 이정순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아이고 이를 어쩐다냐. 우리영감 틀니 좀 찾아 주이소!”

새벽 4시! 재활용 쓰레기 하치장 경비실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여, 여보세요. 여기는 물건 찾아 주는 곳이 아닙니다.”

하치장 김 주임은 한마디 하고 전화를 끊으며 구시렁 거렸습니다.

‘새벽부터 바빠 죽겠는데 무슨 장난전화야!’

김 주임은 냄새나는 쓰레기장에서 밤 새워 일했더니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때르릉! 때르릉!’

“네, 쓰레기 하치장 김 주임입니다.”

“아이고, 왜 전화를 끊고 그라요? 내 말 좀 들어보소.”

김 주임은 호루라기를 입에 문채 전화를 받았습니다.

‘호르륵, 호르륵!'

“다음 차 저 쪽이요.”

일일이 수신호를 하자니 여간 바쁜 게 아니었습니다. 쓰레기 차는 길게 뱀꼬리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지는 예. 영도구 청학동에 사는 영식이 할맨기라 예.”

할머니는 반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젯밤에 손주 놈이 와서 지 할애비 틀니를 갖고 놀더니 고걸 쓰레기통에 버렸다 안 해요. 청학동 사랑아파트 쓰레기차가 도착 했나 싶어 전화한기라 예. 우리아파트 쓰레기차 좀 찾아 주이소 예. 제발!”

할머니의 목소리는 애절했습니다.

“있는 사람이야 그깟 틀니 새로 하면 그만이지만, 없는 사람은 안 그래 예.”

“잠깐 기다려 보이소. 내 함 찾아볼게요.”

김 주임은 할머니 손주 녀석을 생각하니 옛날 생각이 나서 찾아본다고 했습니다.

“아이고, 고맙심더. 그 틀니 예사 틀니가 아닌 기라 예. 영감이 평생 이도 없이 살다가 며느리가 적금 타서 해 준 기라예. 며느리가 효부라 예. 영감은 그 틀니를 닿을 가베 아껴 썼는데…… 그 컨테이너 돌려만 보내주시면 몇 날 며칠이라도 뒤져서 찾을 깁니더. 암 찾고말고 예.”

 

김 주임이 아마 예닐곱 살쯤으로 기억합니다. 김 주임은 할아버지 틀니를 하수구에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틀니를 빼서 맨날 밥그릇에 숭늉을 부어 담가서 그 물을 마시곤 했으니까요.

“할배, 더럽다 안 카나. 왜 그물을 먹어?”

어린나이에도 그게 얼마나 역겹던지 할아버지가 틀니 씻은 물을 마실 때마다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뭐가 어때서. 다 내입에 들어 있던 건데.”

“그래도 더럽다 아이가.”

그날 저녁 할아버지 틀니를 하수구에 몰래 갖다 버렸습니다.

‘이제 할아버지가 그 물을 못 마시겠지.’

“재일아! 할배 이 못 봤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분명히 어젯밤에 이 베개 맡에 두고 잤는데 없어진 기라.”

다음 날 새벽에 할아버지가 김 주임을 깨웠습니다.

“할배, 어젯밤에 쥐가 천장에 다니던데 그 쥐가 물고 갔나베.”

“아이고 이일을 어쩐다냐.”

할아버지는 아빠가 고생해서 번 돈으로 겨우 해 준 건 데 잊어버렸단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밥도 못 먹었습니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죽을 쑤어드렸지만, 드시지 않았습니다.

“할배요. 죽은 이가 없어도 먹을 수 있는데 왜 안 드세요?”

“이가 없으니 이것도 맛이 없다. 니 묵어라.”

김 주임은 할배가 남긴 죽을 홀라당 먹어 치웠습니다. 할아버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김 주임은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틀니를 도로 찾아다 놓을까하고 몇 번을 망설였습니다.

‘아니야. 또 밥그릇 물에 담글 긴데…….’

할아버지가 밤에 끙끙 앓았습니다. 김 주임은 할아버지 이마를 짚어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이마가 불덩이 같았습니다. 김 주임은 덜컹 겁이 났습니다.

“아빠, 할배가 열이 많이 나요.”

김 주임은 안방으로 달려 가 말했습니다. 밤중에 아빠는 할아버지를 업고 보건소로 달려갔습니다. 김 주임은 할아버지 틀니를 버린 게 후회 되어 한잠도 못 잤습니다. 사실을 말한다면 아빠한테 회초리로 종아리에 멍이 들 정도로 맞을 게 뻔합니다.

“엉엉! 할배예 제가 잘 못 했심더. 아푸지 마이소.”

김 주임은 아침에서야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할아버지가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살그머니 하수구에 가 보았습니다.

‘휴! 여기 그대로 있었네.’

하수구에서 할아버지 틀니를 가지고 와서 깨끗이 씻어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그때 사랑아파트쓰레기 차가 저만치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방 기사, 이 차 문제가 생겼으니 도로 사랑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되돌아가야겠소.”

“아니 왜요?”

“나도 곧 갈 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게나.”

야간 근무를 한 김 주임은 할머니 틀니 이야기를 방 기사한테 말해주었습니다.

“우리 김 주임 사람 좋아 큰일이야.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지 원!”

방 기사는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마음은 흐뭇했습니다.

방기사가 사랑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자 할머니와 며느리 영식이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식이는 자다 깼는지 머리에 새가 집을 지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고 고맙심더. 복 받을 기라예.”

할머니는 쓰레기차를 보자 방 기사한테 다가가서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 많은 쓰레기 더미에서 어떻게 그 작은 것을 찾는단 말입니까?”

“부어만 주시면 찾는 건 우리 셋이서 할기라 예.”

“넌 그런 장난을 쳐 할머니를 힘들게 하냐? 네 머리에 새가 살아도 될 것 같다야.”

방 기사는 할머니 뒤에 숨어 눈만 내밀고 있는 영식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습니다. 김 주임이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아이고 김 주임님, 고맙심더.”

“아직 찾은 것도 아닌데 예. 자, 방 기사 어서 여기다 부어요. 근데 어떻게 이 많은 쓰레기 중에서 그 봉투를 찾는단 말 입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이소. 내 강아지가 다 쓴 스케치북도 들어 있고, 봉투 아낀다고 많이 넣어 묶이지 않아 노란 노끈으로 봉투를 단단히 맨 기라 예. 노란 노끈이 묶인 봉투만 찾으면 되는 기라 예.“

“아이고 다행입니다. 나는 이 많은 쓰레기를 다 풀어 헤쳐야하는 줄 알고 죽는구나! 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해 볼 만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방 기사는 팔을 걷어 붙였습니다.

“삼촌, 찾아주면 내가 로봇 그려줄 게.”

“히야. 너 그림 잘 그리나 보네”

방기사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습니다.

“그럼 이 아저씨는 안 그려 줄기가?”

“영식아, 어서 그려 드린다고 말해라.”

할머니가 영식이를 다그쳤습니다.

“네 할배 것도 그려 드릴게요.”

“하하! 할배? 내가 할배로 보이나? 방 기사는 삼촌이고?”

재활용 분리 소각장이 하하 호호!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웃음소리에 지나가던 주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007작전! 틀니를 찾아라!”

영식이는 막대를 치켜들고 소리쳤습니다. 영식이는 부지런히 쓰레기를 뒤졌습니다. 

“으악! 냄새!”

영식이는 코를 막았습니다. 재활용봉투 속에 음식물 찌꺼기가 들어 썩어 있었습니다. 또 공책이며, 크레파스와 같은 반도 쓰지 않고 버린 것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쯧쯧! 이 아까운 걸 다 버렸네. 아낄 줄을 모른당 께.”

할머니가 영식이 줄 거라며 따로 봉투에 담으며 말했습니다.

“에고, 쓰레기를 줄여야지. 우리 반은 앞으로 쓰레기 반으로 줄이기 운동 합시다.”

반상회 반장 아줌마도 혀를 끌끌 차며 말했습니다. 모두 찬성했습니다.

해가 하늘 위로 솟아오르자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날씨가 더우니 쓰레기에서 올라오는 고약한 냄새에 질식 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직 조금밖에 못했는데 영식이는 이미 울상이 되었습니다.

“에이, 난 못 하겠다.”

영식이가 먼저 못하겠다고 나무꼬챙이를 집어 던지고 두 손을 들었습니다.

“영식아, 니가 다 해야 하는데 못한다면 어짜노? 그라몬 할배 모시고 온 나.”

할머니가 잔소리를 늘어놓는데 저만치서 할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아, 할배다!”

할아버지는 양손에 음료수를 잔뜩 들고 걸어왔습니다.

“자, 고생 많네, 이거 시원한 거 들고 하게나. 미안타 아이가.”

“아닙니더 어르신.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 뿐입니더.”

김 주임이 손 사례를 쳤습니다. 할아버지는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주었습니다.

“영식이 넌 먹지마라. 니가 말썽피워 많은 분이 이렇게 고생하시니 네 몫을 나눠 드려야겠다.”

말없이 쓰레기를 뒤적이던 영식이 엄마가 모처럼 한 마디 했습니다. 영식이 엄마는 틀니를 못 찾을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답니다.

“으앙! 안돼요. 로봇 그림 그려준다고 했단 말이에요.”

“하하! 맞다. 우린 로봇그림을 일당으로 받기로 했으니. 이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은 뇌물죄로 걸리니 우리 영식이 다 먹어라. 하하하!”

김 주임이 말하자 분리수거장은 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할머니! 찾았어요. 007 작전 성공!”

방기사가 쓰레기 더미에서 노란 끈이 묶인 봉투를 높이 치켜들고 외쳤습니다.

“와! 짝짝짝!”

사람들이 몰려와서 손뼉을 쳤습니다. 마음을 합치면 못 할게 없었습니다. 작은 배려가 얼굴도 모르던 이웃 간에도 사랑의 꽃을 피우게 했습니다.

년말에 김 주임 아저씨가 텔레비전에 크게 나왔습니다. 의로운 시민상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영식아, 우리 김주임이 티비에 나왔다. 어서 와보거라."

"저 사람덕에 이걸 내가 안묵나."

할아버지가 포크로 사과를 찍으며 말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8건 3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