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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서쪽으로 난 창] 등으로 우는 남자(네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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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4-15 08:43 조회1,4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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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d02f6ec5cb058eb69458c248edfa32_1586965429_3591.jpg박지향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보통 사람이죠. 남다른 인생도 아니었고요. 날 기리는 기념탑도 없고, 내이름은 곧 잊혀질 겁니다. 하지만 한가지 눈부신 성공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나는 평생토록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했으니, 그 거면 더 바랄 게 없죠.”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봤을 영화 “노트북” 도입부에서 할아버지가 된 노아가 하는 말이다.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아내 엘리에게 자신들의 살고 사랑했던 기록을 소설처럼 읽어준다. 

 

기억을 잃기 전 엘리가 자신을 노아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읽어 달라며 쓴 그들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러브 스토리 라는 것을 모르고 있던 엘리가 잠시 기억이 돌아와 자신과 노아를 알아본다. 두 사람은 찰나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짧은 재회의 기쁨을 맛본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날 밤, 우리들 사랑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냐고 엘리가 묻는다. 

 

노아는 “그럼 가끔 이렇게 당신이 돌아오는 것도 기적이야” 라며 노아는 엘리의 손을 잡고 엘리곁에 눕는다. 두 사람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운 체 잠자듯 고요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네가 새면 나도 새가 될게” 라고 말해주던 노아와, 다른 생에서 자신이 새였을 거라는 엘리가 누운 창밖으로 한무리의 새가 천천히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가 끝이 나고 자막까지 다 올라가고 화면이 정지되어도 여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영화 노트북은 너무나 영화 같은 영화다.  

네 번을 봐도 눈물을 펑펑 쏟게 하는 이 영화는 로맨스 소설의 거장 니콜라스 스팍스가 쓴 장인의 러브 스토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급 물살에 떠밀리듯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너무나 쉽게 만나고 빨리 헤어지는 세상, 황혼이혼이 급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조용히 둘러보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면 우리들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것이다. 세 잎 클로버로 뒤덮인 초록의 들판에서 귀하게 만나는 네 잎 클로버 같은 사람들의 지고 지순한 순애보를…  

 

 

지난 가을이었다. 해가 뉘엿 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던 시각, 서쪽으로 난 창가에 할아버지 한 분이 서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큰 키와 체격이 묵묵히 서 있는 마을 뒷산 같은 해리 할아버지였다. 인사나 하고 퇴근할 참으로 헛기침을 두 번 하고는 살그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멀리서 소리쳐 말할 수도 있었지만 정적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까이 가서 지팡이를 짚으신 팔에 팔짱을 끼려고 할 때 할아버지의 등이 들썩거렸다. 할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등으로 우는 남자를 본 적이 있는가?. 커다란 등이 들썩일 때 마다 굵은 눈물 방울이 뚝 뚝 떨어 지는 남자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할아버지 팔은 붙잡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눈길이 가 닿은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한 무리의 철새가 길다랗게 V자를 그리며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울음을 그친 할아버지가 무심한척 말을 꺼내셨다. ”저 새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야, 나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루이사가 있는 곳으로…” 하셨다. 

 

 

16세 해리는 같은 고등학교에서 한 살 연상의 17세이던 루이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 모두 첫사랑이었다. 영화 에서처럼 루이사는 부잣집 딸이었고 해리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결혼할 수 있는 미성년자들이었기에 그들은 기다렸다. 두사람은 일전짜리 페니 한 개까지 모으며 결혼을 준비했다. 

 

4년뒤 결혼을 하고 우사를 개조해 만든 작은 집을 얻어 꿈에 그리던 삶을 시작했다. 양배추 스프와 감자 한 알로 저녁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웃고 장난하며 늘 배가 불렀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도 여느 사람들의 인생사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 직장을 그만 두었다. 허약한 그녀의 체력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던 그 시절의 그녀가 가장 아름다웠다고 추억했다.

 

정원 가꾸는 일을 좋아하셨던 할아버지는 정원사로 목수로 평생을 살았다. 꽃과 나무를 심고 뭐든 만들고 고치는 것이 좋았다. 처음엔 자신의 차고에서 고장난 자동차와 낡은 가구를 고치고 만들며 생계를 유지했다. 솜씨를 인정받으면서 창고를 얻어 본격적인 가구 제작 사업을 시작했는데 목재를 사다 놓은 창고의 화재로 완재품과 목재를 다 잃어버리는 비운을 겪었다. 잠시 실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첫 사랑이며 영원한 사랑인 루이사와 두 딸을 보며 다시 일어 설수 있었다. 

 

루이사와 두 딸이 곁에 있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고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세상의 아버지가 그렇고 세상의 남편들이 모두 그러 하리라… 그렇게 서로에게 충성하고 헌신하면서 서로를 기다리며 함께한 4년을 합해 68년을 같이 살았다.

할머니 루이사는 자그마한 키에 체격이 왜소한 편이었지만 그리 마른 편은 아니었는데 몇 달 사이 부쩍 체중이 줄어들었다.  이 삼 년 전부터 치매가 시작된 할머니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방암까지 선고받았다. 여든을 넘긴 할머니가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는 투병의 시간은 길고 험난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단번에 먹어 치우는 괴물, 암과 치매를 노쇠하고 연약한 루이사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웠다. 자신의 온전한 정신과 판단력으로 잠시 돌아온 시각 루이사는 투병 생활을 그만 두고 할아버지 곁에 머물기를 희망하셨다.

 

그럴 수 없이 온화하고 사랑스럽던 할머니 모습은 온데 간데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살갗 밑으로 드러나는 푸르스름한 핏줄이 하이얀 피부를 더 하얗게 만들었다. 돌아오신 다음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점심 식사를 위해 두 분이 테이블로 오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에 가까이 앉을 수 있는 만큼 가까이 앉아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계셨다. 할머니는 앉은 체로 졸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눈동자 가득 고여 흔들렸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모든 분들의 눈동자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테이블로 다가갔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자 잠시 눈을 떠서 나를 바라보셨는데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내 말은 알아듣지도 못 하셨다. 껍질만 남아 텅 빈 소라 고동 같았다. 재빨리 간호사를 불러 방으로 모시게 했다

그 날 오후 할머니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가셨다. 기나긴 여행이 끝나가는 것이었다. 낳아 주신 부모님의 집을 떠나 남편과 아내가 되어 집을 마련하고 그 집에서 딸 둘을 낳아 그럴 수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그 집을 떠나 리타이어먼트 홈이라는 정거장을 거쳐 호스피스 병동에 정차중인 할머니… 열차는 멀지 않은 시각에 루이사를 종착역에 실어다 놓을 것이다. 

 

할머니는 최종 목적지를 앞에 두고 “해리! 집으로 가서 편히 자요 해리” 라고 할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가끔 할아버지 얼굴을 못 알아보는 날은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이름을 잊어버린 적은 없었다. 얼마나 사랑한 이름이었으면 치매를 앓으면서도 붙들고 있었을까. 할머니는 할아버지 이름 해리를 두 번이나 불러 주었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그 날 할머니를 남겨 놓고 혼자 돌아온 할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 하고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서 계셨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할머니는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집으로 가고 싶다고, 루이사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이제 아내가 떠나버린 이 지상에는 더 이상 할아버지의 집은 없다. 영화 “노트북” 에서도 집으로 돌아오라는 딸의 말에 할아버지 노아가 말한다. “너희 엄마를 여기 혼자 둘 수는 없어, 너희 엄마는 내 집이야”. 그렇다, 

 

벽돌을 쌓고 지붕을 올렸다고 해서 모두가 집(Home)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건물 (House)에 불과하다. 집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언제든 두 팔 벌려 나를 맞아주는 곳, 그 곳이 집이다.  그 곳이 어디든 어떤 곳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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