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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도미오와 콩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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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4-22 08:50 조회2,0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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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c664e83c3c6d516600be5e4c2e54d79_1587570641_0946.jpg정숙인 / 캐나다한국문협 회원 

 

 

춘삼월 바람 끝이 매섭기 짝이 없다. 서슬 퍼런 꽃샘바람의 포옹에 화들짝 몸서리가 쳤다. 그런 나를 보고 봄햇살은 따스하고 고운 미소를 보내온다. 하늘엔 조그만 아기양들이 무리 지어 파란 연못에 발을 담그고 아직 꽃도 피지 않은 튤립 주변을 흰나비가 맴돌고 있다.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호랑이 선생님 같던 겨울이 물러가고 연인같은 봄이 오고 있다. 데크 한쪽에 마련했던 그릇들과 박스로 만든 집을 말끔히 치웠다. 마침내 떠돌이 도미오가 우리와 가족이 되었다. 세탁실에서 잠을 잔 도미오에게 마지막 외출을 허락했다. 이제 동물병원에 다녀오면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밖으로 나가려다 현관문에 몸을 걸치고 녀석이 눈치를 살핀다. 나갈까 말까 그러면서도 내민 손에 얼굴을 마구 비비며 좋아한다. 굶주린 배를 채워주어 고맙다는 표현일까 아니면 정이 그리워서일까. 배를 살살 만져주니 동그랗게 몸을 구부리다 옆으로 털썩 드러눕는다. 갸르릉 소리를 내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비듬제거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빗질을 해주어 회색 빛 털의 감촉이 여간 부드럽지 않았다. 작년 가을 무렵 차 아래서 튀어나올 때만 해도 잠시 가출한 고양이려니 생각했었다. 잊고 있었는데 다시 나타났다. 양지바른 창문 옆 캣타워에서 땅콩이와 네로는 거의 종일 지내는데 집 둘레의 나무와 숲에 살고 있는 다람쥐와 새들이 놀러오면 너무나 좋아했다. 도미오는 스윽 나타나 창문을 앞발로 툭 치곤했다. 땅콩이는 놀라 하악질을 하고 네로는 숨었다. 영락없는 도둑놈의 얼굴을 하고 우리 예쁜 줄리엣같은 콩이를 넘보는 로미오같아 녀석을 도미오라 불렀다. 알고 보니 어미도 없이 혼자 사는 꼬마였다. 기온이 올라가 거실문을 열어 유리문을 통해 안으로 해를 들어오게 하니 콩이와 네로는 맘껏 일광욕을 즐겼다. 나도 같이 누워 따스한 햇빛을 쬔다. 찬란했던 붉은 해가 그 존재감을 강하게 마무리하며 서산으로 물러가려던 찰나에 도미오가 불쑥 나타났다. 며칠 보이지 않더니 수척한 몰골로 유리문에 코를 대고 우릴 보았다. 나는 얼른 먹이를 챙겨 들고 데크로 나갔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을까. “키티, 키티! 키티, 키티! 키티, 키티!!” 고즈넉한 과수원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녀석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소리를 계속 냈다. 그릇에 참치 캔을 놓고 물그릇에 물도 가득 채웠다. 녀석은 며칠을 굶었는지 곧장 내 옆으로 와 그릇에 머리를 박고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릇은 금세 비워졌다. 나는 어둠속에서 박스를 찾아 두툼한 타올을 깔아주고 비닐로 덮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나무판자로 덮었다. 이제부터 라도 녀석을 보살펴주고 싶었다. 다음날 도미오는 다시 나타났다. 아무래도 내가 만든 잠자리가 불안했는지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개의치 않고 밥을 놓아주고 물을 갈아주고 일을 나갔다.

도미오는 매일 나타나 밥을 먹고 쭈그려 앉아 아이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 서로를 향해 으르렁댔다. 까만 어둠이 몰려오자 도미오는 이윽고 움직였다. 녀석의 은신처가 궁금해 불을 끄고 지켜보았다. 도미오는 천천히 제 갈 곳을 향해 터벅터벅 발길을 옮기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대로 서서 꿈 쩍도 않고 이 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몇 걸음 걷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데크의 센서 등에 녀석의 뒷덜미가 앙상하게 비춰졌다. 이 쪽을 바라보는 녀석의 얼굴에 외로움이 짙게 베어 있다. 도미오는 천상 갈 곳 없는 길냥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측은하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둠이 내려 새들도 사람도 모두 제 집으로 찾아 든 시각에 어린 녀석이 제 몸 하나 추스를 곳을 향해 가다 말고 뒤돌아보며 안녕을 고한다. 내게 먹을 것을 주어 고마워요, 또 봐요. 멀어지는 녀석을 보며 참으로 슬펐다. 녀석에게도 부모형제가 있었을 텐데 어찌된 연유로 혼자가 되었는지 측은지심으로 쉽사리 잠을 못 이루었다.  집 앞의 헛간이 녀석의 쉼터였다. 새벽에 나는 도미오를 품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도미오를 데려오기까지 과정이 필요했다. SPCA(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의 실종묘에 대한 검증을 거쳐 동물병원에서 권장하는 건강검진과 치료 및 예방접종을 거쳐야했다. 태어난 지 일 년이 안된 이미 중성화수술이 된 암컷이라 했다. 처음으로 우리집에 들어와 잔 날을 기준으로 미오는 십일개월짜리 막내가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도자를 빼고 미오라 부르기로 했다. 암컷을 이제껏 수컷인 줄 알고 도미오라 불렀는데 미오의 매력적인 얼굴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앞으로 미오는 집냥이로서 여러가지 것들을 잘 익혀나갈 것이다. 곁에서 늘 보살펴줄 나와 함께 말이다. 이 봄에 나는 새로운 밭을 일군다. 마음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보살피리라. 마음 밭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려 쬐고 영양분으로 가득한 흙을 먹고 힘있고 건강한 초록 것들이 움트리라. 이제 조금 있으면 꽃이 피고 아름답고 귀한 열매를 맺으리라. 그리고 울창히 자란 아름드리 나무위에서 땅콩이와 네로, 미오가 꼬리를 늘어뜨리고 낮잠을 자거나 서로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놀리라. 가물거리며 피어나는 나른한 아지랭이속에 아이들과의 미래가 보인다. 분홍빛 꿈을 닮은 봄이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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