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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서쪽으로 난 창] 그녀가 사는 법(여덟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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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6-10 08:44 조회1,3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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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783364_o6GBSXfc_1e70da0053920135488e8536f0b31b4df35f69cc.jpg박지향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등반을 위해 베이스캠프에 나타나는 분이 있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에베레스트가 목표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는 이분은 77세의 할머니 리나다. 모서리와 손잡이가 낡고 색이 바랜 검정 배낭을 등에 메고, 손에는 지팡이 대신 작은 이불 하나를 들고 나타나신다. 할머니의 베이스 캠프는 2층 다이닝룸에 있는 벽난로 옆이다.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등받이가 널찍한 1인용 윙체어에 앉아 들고 온 이불은 무릎위에 펴서 덮는다. 노랑색과 회색 뜨개실을 섞어서 만든 작은 이불은 할머니의 시린 무릎을 위해 본인이 직접 짠 것이다. 배낭을 열고 빨강, 파랑, 검정색 볼펜 3개와 두 권의 노트를 앞에 놓인 탁자위에 꺼내 놓는다. 마지막으로 돋보기를 쓰고 제임스 조이스가 쓴 두꺼운 책 한권을 꺼내 무릎위에 올리면 등반준비는 끝이 난다.


할머니 나이만큼이나 세월이 쌓인 이 책은 그 이름도 유명한 ‘율리시스’다. 할머니는 ‘율리시스’라는 산으로 등반을 떠나시는 것이다. 방대한 량은 제쳐 두고라도 난해한 단어와 문장구조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서술 방법 앞에 영문학 전공자들조차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혹자는 율리시스를 에베레스트에 비유했나 보다. 나도 대단한 결심을 하고 도전해 봤지만 반도 못 가고 좌절이라는 쓴 잔을 맛 보아야했다. 이런 미로 같고 엉뚱한 소설에 시간을 바치고 싶지 않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달고 나니 맘 편히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재미도 없고 험난하기만 했던 산 율리시스를 할머니는 벌써 세번째 오르고 있다.


분명한 건 율리시스로 오르는 길은 마을 뒷산 오르듯 유유자적 올라가는 등산이 아니었다. 상당한 체력과 인내심, 사전조사와 기술을 필요로 하는 등반이었다. 히말라야 고산 베이스캠프에서 자신만만했던 젊은 근육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설 때, 할머니는 자신만의 보폭으로 뚜벅 뚜벅 쉬지 않고 올랐다. 철저한 준비와 77년 쌓인 인생 내공이 할머니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었기 때문이다. 


읽고 있는 책을 슬쩍 넘겨다보았다. 인쇄된 활자보다 할머니가 달아 놓은 해석과 주석이 더 많은 페이지도 있었다. 두 권의 노트에는 소설 속 등장 인물에 대한 분석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화 뼈대가 되는 오디세이아의 배경과 등장인물에 대한 기술이 바둑판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저것만 있으면 나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스멀 스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리나는 37년이란 긴 세월을 호텔리어로 일했다. 그녀 나이 25세에 홈리스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자원봉사를 하던 중에 만난 남자와 결혼을 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남편은 잘 생기고 로맨틱 했으며 경제력도 있었다. 무엇보다 독서가 취미인 두 사람은 대화가 통했다. 만난지 5개월만에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 노라 맹세하고 결혼했다. 부부의 사연은 부부밖에 모른다는 말은 그들을 두고 한 말인지 좋은 날도 많았지만 싸웠던 기억이 더 많았다. 그런 그녀의 결혼 생활은 십년을 못 넘기고 종지부를 찍었다. 


아홉 살이던 딸과 일곱 살이던 아들을 데리고 이혼을 했다. 다행히 남편이 양보한 집이 있었고 매달 보내주는 양육비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친정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홀로 계시던 아버지를 모셔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모셔오던 해에 발생한 암으로 8년이란 긴 세월을 고생하셨는데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간호하는 동안 힘든 날도 많았지만 충분히 이별의 준비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수월하게 커준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워털루 대학교에 합격하면서 자연스레 독립을 해 나갔다. 큰딸과 달리 아들은 부모들의 이혼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소식도 없이 집을 나갔다. 그때 나이가 19세였는데 일년에 한번 정도 전화를 걸어올 뿐 아직 단 한번도 찾아와 준 적이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어차피 인생은 혼자 걷는 길” 이라 한다. 가벼운 듯 던지는 그녀의 말이 유달리 빨라지는 건 그리움의 증거다.


예순을 바라보던 어느 날, 용감한 여자 리나는 또 한번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일에 얽매여 하고싶은 일들을 오지도 않을 내일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첫째는 일하는 보람을 느끼지 못했고 열정도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여유로운 커피 한잔이 그리웠고 지치고 상처받은 자신에게 쉼과 치유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여행도 하고 싶었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생의 의미를 되찾고 싶었다. 58세가 되던 해에 사직서를 던졌다. 


구석구석 추억이 묻어 있었지만 관리하느라 힘도 들고 돈도 드는 큰 집을 팔아 원룸 아파트로 옮겼다. 이불과 배게만 꺼내 놓고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유럽을 다녀왔다. 2개월에 걸친 긴 여행이었다. 여독도 풀리기 전에 자신이 사랑한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 또다시 쿠바로 날아갔다.  헤밍웨이가 담궜던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그가 마셨던 칵테일 ‘모히또’를 마셨다. 존재하지도 않는 내일로 미뤄왔던 것들을 하나씩 맛보며 주어진 하루를 뜨겁게 살았다. 

그녀는 “나는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았어.” 했다. 많은 사람들이 꿈에나 하는 말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원하는 여행, 원하는 삶은 늘 ‘언젠가’로 미루며 산다. 다 쓰지도 못할 노후자금을 걱정하며 일을 하고 돈을 모은다. 리나는 달랐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포기하지 않았다. 타인의 눈에 비칠 내 모습을 의식하며 살았던 멋져 보이는 삶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선고받은 뒤 할 수 있는 일들을 ‘바로 지금’ 하면서 살았다.


쿠바에서 돌아온 리나는 낮에는 예전에 하던 자원 봉사를 했고 밤이면 읽고 싶었던 책과 보고싶었던 영화를 보며 미뤄왔던 삶을 살았다. 그토록 원하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69세가 되던 해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던 중 음주 운전자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이후 할머니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몇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오랜 시간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오른쪽 다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심하게 절뚝거리며 걸어야 하는 상처를 남겼다. 혼자 생활이 불편하게 된 할머니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셨다.


낮에는 책을 읽고 기나긴 밤에는 뜨개질을 했다. 소일삼아 하신다는 그 솜씨가 정말이지 대단하다. 뜨개실로 이불은 물론 애기들 옷 가지며 가방에 인형까지 짜서 모으신다. 이 곳에서는 일년에 두 세번 바자회가 열리는데 그때 팔아 모은 수입금 전액을 불우 이웃돕기에 기부하신다. 다리가 못하면 손이 하면 된다. 그것이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봄이 되자 지난해 가을 집안으로 들여 놓으면서 가지치기를 해준 벤자민이 새 가지를 내밀었다. 잘린 가지 옆으로 싱싱하고 건강한 나뭇가지가 두개나 나왔다. 할머니는 새로 나온 나뭇가지가 태양을 향해 뻗어 나가듯 새 길을 만들어 가신다. 커피 한잔에 한 조각 빵이 전부인 아침도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나고 감사하게 드신다. 성한 두 팔이 있어서 뜨개질 또한 감사하고 즐거운 그녀는,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아니다. 날마다 등반을 떠나는 빛나는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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