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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서쪽으로 난 창] 내 새끼 왔능가(열한번째 이야기)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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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7-22 07:35 조회2,1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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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783364_YW7Hrg8O_54198884d3f83da0174ed2f0e04d56ce3ad9d1d4.jpg박지향


한국이 뜨고 있다. 언제부터 인가 주변의 외국인들을 만나면 한국어 몇 마디 못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곳 리타이어먼트 홈에 계신 노인들도 많은 분들이 한국어 한 두마디는 하신다. 몇몇분은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어하시고 만날 때마다 궁금한걸 묻곤 하신다. COVID 19을 그 어떤 나라보다 슬기롭게 대처하고 극복해 나가고 있어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한국어를 배우시겠다며 질문을 하시는 분들께 한국어를 배우려면 제일 먼저 한국인의 밥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안녕하세요 대신 “식사하셨어요?” 라고 묻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하는 이에겐 “밥값도 못하는 놈” 이라 하고, 잘못을 저지를 사람에겐 “너 국물도 없는 줄 알아” 한다. 이뿐이겠는가. 재수없는 사람을 일컬을 땐 “다 된밥에 재 뿌리는 놈”이라 하고 성적이 떨어진 아이를 꾸짖을 때 “지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고 꾸짖는다고 했다. 얼마나들 재미있어 하는지 설명에 설명을 거듭해야 하는 싫지 않은 수고를 하고 꼬인 혀를 풀어가며 기꺼이 한 문장을 더 설명했다. 죄 지은 사람을 고발하겠다는 무섭고 딱딱한 표현 대신 “너 콩밥 먹을 줄 알아”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자 바로 옆에 앉아 계시던 토마스 할아버지가 반색하셨다. “한국인들은 죄수들에게도 대접을 아주 잘 하나 보네, 역시 멋진 나라야. 나도 한국가서 공짜 콩밥이나 좀 먹고 올까?” 라고 하시는 바람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그날 이후 웃자고 가르쳐 드린 한국어는 나와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 향기로운 윤활유가 되었다. 내일이면 잊어버릴 줄 알았던 어려운 단어를 기억하시곤 나를 만날 때면 “Hi”나“Hello” 대신 “콩밥”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분이 여러분 생겼다. 그러면 나는 “국물도 없는 줄 알아” 하고 대답하며 또 한번 웃는다. 


생각해 보면 한국인들의 밥 사랑과 후한 밥문화를 어떤 나라가 따라올 수 있을까 싶다. 정말이지 많이도 대접받고 많이들 대접하며 많이도 먹는다. 오죽하면 수없이 많은 먹방(먹는 것이 주제인 방송) 이 모두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겠는가. 


한번은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의 밥상을 말해 보자고 지인 들과의 단체 카톡 방에 질문을 올렸다. 이런 저런 사연들이 쏟아져 올라왔다. 삼십대서부터 오십 대 후반까지 모인 그룹이다 보니 상큼 발랄 재미있는 사연서부터 이민 와서 사업에 실패하고 눈물 섞어 먹은 밥까지 슬프고 아름답고 따뜻했던 추억의 밥상이 주르르 올라왔다.


사연들 중 J자매가 쓴 밥상은 우리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26살이던해에 호주로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가 3년만에 고향 남원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집 뒤엔 두 그루의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그녀의 고향집은 도로가 내려 다 보이는 언덕위에 있었다. 내려간다는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택시가 도착하자 언덕길을 한걸음에 달려 내려와 그녀를 맞이해 주셨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어머니가 “내 새끼 왔능가?” 하시면서…


내 새끼 왔냐 시며 부둥켜안아 주시는 고향의 어머니는 당신의 새끼 먹일 밥을 지으시며 열두번도 넘게 창밖을 내다보셨을 것이다. 평소에 좋아하던 갈치 조림이며 텃밭에 손수 키운 시금치 나물과 푸성귀들로 한가득 차려 주신 어머니의 밥상이 두고 두고 그리운 밥상이 되었다.


한국에 가면 공짜로 주는 콩밥을 드시겠다던 할아버지 토마스에게도 그런 어머니가 있었다. 시골에서 농장을 하시던 할아버지의 부모님은 아들 셋을 모두 도시로 내보내고 열심히 농사지어 그들을 뒷바라지해 주셨다. 토마스는 방학이 되면 출발하기전에 집으로 가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으신 어머니는 밤중에 도착할지도 모를 아들을 위해 밤새도록 창가에 불을 밝혀 두고 기다리셨다. 출입문은 잠그지도 않고 기다리셨는데 언제나 어머니가 먼저 보고 큰길까지 달려 나와 반겨 주셨다고 하셨다. “Oh, my baby” 하시면서… 십대를 거쳐 이십대가 되어도 서른이 넘고 예순이 넘어 할아버지가 된 토마스를 고향의 어머니는‘my baby’라 부르셨다.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구운 감자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요리가 나갈 때 따라 나가는데 할아버지는 주 요리보다 곁다리 감자를 더 좋아하신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이 요리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감자를 깨끗이 씻은 다음 반으로 자른 뒤 오븐에 구워 낸다. 구운 감자는 바삭하게 구워 잘게 다진 베이컨이랑, 송송 썬 쪽파를 올린 사워크림과 함께 먹는다. 간단한 요리법에 구수하고 담백한 맛 때문에 나도 은근히 중독되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감자사랑은 어머니의 식탁에서 시작되었다. 구운 감자는 어머니가 차려 주시던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왔었다. 직접 키운 감자를 벽난로속 장작위에 구워 주셨다. 군데군데 숯검정이 묻은 감자를 도마위에 올려 놓고 반으로 자르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푸근한 군 감자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식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집어먹다 입천장을 데이면서도 자꾸만 집어먹게 되던, 이제는 그리움이 되어버린 음식이다.


이 곳 입주민들도 메쉬 포테이토, 프렌치 프라이, 포테이토 웨지에 구운 감자까지 정말 여러가지 감자요리를 많이 들 드신다.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드시는 감자요리가 뭐 그리 맛있겠는가. 어떤 분은 감자는 손도 안 대신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에겐 특별할 수밖에 없다. 예순이 넘은 아들을 내 새끼라며 불러주고 사랑해 주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감자사랑으로 옮겨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 외에 그 누가 나를 위해 밤새 불을 밝혀 기다려줄 것이며 그 누가 언덕길을 한달음에 달려 내려와 “내 새끼 왔능가?” 하며 안아줄 것인가?

고향에는 없어도 J자매 가슴에 살아 계신 어머니, 고된 농사일로 지친 밤에도 객지에서 돌아올 아들을 뜬눈으로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아흔이 넘으신 토마스 할아버지에게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름이다. 가신 뒤 더욱 그리운 이름 어머니를 떠 올리며 어떤 이는 감자를 먹고, 어떤 이는 시금치 나물을 먹으며 생생하게 달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 새끼 왔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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