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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우리 고전문학에 대한 소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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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슬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8-13 08:31 조회1,3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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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bc39c96caaf3e75b331aa0d56c33e_1581702297_7847.jpg이슬샘(露井) / 시인(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회원)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예를 하나 들어 좀 심도를 높여보면 고려가요 중에서 <정읍사>란 작품이 있을 건데 '달하 노피곰 도다샤...'로 시작하면 대충 아,하고 짐작하고 있는 바와 같다. 즉 '어느 행상인의 아내가 부른 현존하는 백제 유일의 노래'라고 아마 음악 교과서를 통해 책상을 두드리며 <천안삼거리>를 신나게 부른 세대들은 수능 공부하느라 줄줄 외우고 있을 거다. 그런데 이것 역시 해석이 결코 자연스럽지는 않다. 물론 <고려사(악지)>에서 '정읍(井邑)은 전주의 속현...'이란 언급이 있으므로 망부석의 배경이 전주라는 정도는 이해하겠는데 그 이후에 '즌대를 드대욜셰라'와 '어느이다 노코시라' 등 에서는 도무지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듯하다. <정읍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을 꼽으라면 '(전) 져재'라고 생각되는데 이것을 '저자=시장' 심지어 '전주 시장'이라고 단정해버리고 보니 연상의 그림이 부족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화자(話者)는 쉽게 인터넷에서 '저가(邸家)'를 한 번 찾아보니 '조선시대 해산물 곡물 등의 매매를 중개하고 위탁 판매하면서 그 상인들을 상대로 숙박을 겸하는 업소'라고 설명이 나온다. 또 다른 사전에서는 저가(邸家)를 '(역사) 조선후기에 연안포구에서 상인들의 숙박, 화물의 보관, 위탁판매,  운송 따위를 맡아보는 상업시설.' 이라고 하고 '저제(邸第)'의 설명은 '1) 규모가 아주 큰 집. 2) 귀인(貴人)의 집.' 이라고 소개 한다. [국립어원 표준 국어대사전] 참조.


실제로 요즘 같으면 인터넷 사전 하나로도 지금 수준의 해설은 누구나 가능하리라고 보며 반면에 강단에서 배우는 현학적인 태도는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작품을 이해하기 더 어렵게 만들거나 진정한 감상으로부터 독자들을 바보로 떼어놓은 사례들이 부지기수 있을 것 같다. 행상을 보낸 아내의 처지에서 염려스런 것 가운데 하나도 이런 점일 것을 유의하면 남편이 놓거나 빠뜨릴 수 있는 비유를 예시하면 어떨까 싶다. 이른바 '저'자(字)를 사용한 다른 예에서 보면 고려가요 <상저가>에서는 (절구)공이 저를 쓰는가 하면 두 쌍이 꼭 만나야 하는 젓가락 저로 쓰이는 한자어도 있다. 물론 <상저가>의 내용은 '방아노래'에 속하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드러난 매우 소박한 가사로 이루어졌지만 대개의 경우는 무언가를 비유적으로 암시할 때 많이 등장하는 한자어 중에 하나이다. 앞서 '저가'를 '저재'로도 쓸 수 있다면 남편이 행상 일을 마치고 도착한 구체적인 숙박 장소이기 때문에 그 아내가 조심스레 당부하고 싶은 간곡한 사정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화자가 어릴 때 하도 뭘 자꾸 잃어버리고 다니니까 주변에서 '쟤는 공이도 안 붙여놨으면 떨구고 다니겠구나' 하는 말을 듣곤 했다. 아무튼 일반적인 '저자=시장'이기보다 더 구체성을 지닌 '저가(邸家)' 혹은 '저재(邸齊)'에다 무얼 '즌대 떨어뜨릴' 것인지, 뭘 '어느이다 놓고 다닐까' 두려운지 대상을 암시하는 숨은 체언 하나만 주어지면 뒤에 따르는 술어들도 술술 풀린다는 의미이다. 원문엔 '(全)'이란 말이 앞에 붙어 나오니 더 구체적인 장소인 전주에 소재한 당시 '매매 중개, 위탁과 숙박을 겸한 업소,'라고 봐도 좋겠다. 이쯤이면 <천안 삼거리>처럼 <정읍사>에서도 연상 작용이 미쳤으리라 본다. 예나 지금이나 공이가 말썽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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