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한국문학과 디아스포라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캐나다에서의 한국문학과 디아스포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재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8-16 18:38 조회1,458회 댓글0건

본문

디아스포라와 캐나다 문학


디아스포라는 원래 뜻이 유대인들이 고국을 떠나 이나라 저나라 떠돌아 다니며 일하며 자신들의 문화와 문학을 간직한 것에서 유래가 되어 집단이민자들의 문화와 문학을 대표하는 말이다. 


주류를 떠나 변방에서 살면서 변방의 문화와 문학을 꽃피우는 실체이다. 캐나다에는 공식적인 언어로 영어와 불어를 쓴다.여러개의 언어를 쓰는 다양한 이민자들은 각자의 언어로 그들의 문화와 문학을 이민을 와서도 만들어 간다.


즉 캐나다로 이민을 왔지만 문화와 문학의 고국에 종속되어 이민현지인 캐나다에 동화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언어의 한계와 문화적 차이등에서 오는 문학의 차이이기도 하다.이미 한국에는 일제시대에 만주로 많은 유민들이 이주를 해서 만주에서 한국학교도 세우고 각종 신문과 출판도 하던 상황이어서 이 일제시대 만주의 문학을 디아스포라의 시작으로 봐도 된다. 


중국땅에서 살았지만 조선인으로 산 그들은 한반도에서 일제의 압제로 부터 언어도 잃어 버린 상황속에서 주류가 모호한 속에 디아스포라가 된 상황이었다. 


디아스포라-캐나다 문학의 발상은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은 종종 국가 범주의 불안정성을 보여주고, 디아스포라를 비판적인 렌즈로 사용하는 학자들은 종종 국가가 어떻게 집단 정체성에 대한 자기희생적이거나 불안정한 기반인지를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캐나다내에서 한국문학은 캐나다내에서 변방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도 이민자문학으로 변방취급을 받는다. 결국 어디에서도 주류가 될 수 없는 문학이다. 하지만 요즘엔 SNS의 발달과 인터넷의 발달로 한국에서 발표되는 새로운 시집이나 문학지를 바로바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한국에 사는 것과 캐나다에 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서 문학동인활동과 한국에서의 동인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제약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캐나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누가 혹은 우리, 개개인의 주제와 집단 공동체를 적절히 캐나다인이라고 가정한다. 크리스틴 킴과 소피 맥콜은 "상상된 공동체의 일부로 대표되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포함과 배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킷 돕슨은 마이클 온다트제, 프레드 와, 로이 미키, 디온 브랜드 등 저자들의 '인종적으로 표시된 문학'을 포함시킨 캐나다 문학이 '트랜스포셔널'이 되면서 지난 35년 동안 단 하나의 캐나다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크게 허물어졌다고 주장한다. 


돕슨은 이러한 변화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적한다. 이는 중요한 문화적, 경제적, 기술적 변화를 본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다. (캐나다 문화의 변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캔라이트 가이드의 "국가주의, 1960년대 이후" 장을 참조하고, 이러한 변화가 캐나다 출판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에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에 뒤따른 인종별 작가들에 의한 캐나다 문학의 급증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국경과 민족 문화가 더 이상 예전처럼 안정적이거나, 강력하거나, 위태롭지 않다는 증거로 해석되어 왔다. 우리는 미국과 영국 같은 국가들이 확고하고, 지속적이며, 종종 인종적으로 배타적인 국가 문화의 개념을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현재의 역사적 순간이 국가 및 문화 경계의 해체에 관한 이러한 비판적 서술과 모순되는지를 고려할 수 있다. 


국가들과 국가 문화들이 과거에 비해 더 강력하고 덜 강력한가 아닌가 말이다. 이는 과거 팝하면 영국 팝그룹이나 미국의 팝그룹을 연상하지만 최근 K-POP의 등장과 더불어 케이팝이 변방이 아닌 주류에 편입되는 등 문화적 변화가 일어 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문학또한 온라인을 통해 점차 세계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한글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번역앱등의 발달로 점차 언어의 다름이 장벽으로 막기보다는 특징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들과 민족주의에 내재된 위선자들에 의해 차별과 배타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나오는 글들은 종종 문학 연구에서 많은 관심을 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캐나다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이 어느 정도 다문화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지, 문학적 규범에 포함되고, 따라서 국가에 의해 정당화되는지를 보아왔다. 하지만 다양성이 주류문학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고민해봐야할 문제이다.


 디아스포라 커뮤니티는 동시에 국가의 서사를 긍정하고 국가 주류에 의해 거부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캐나다를 포함한 모든 국가들 내에는 국가 정체성을 주장하거나 국가의 자체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점유되는 회색 지역인 주변부가 있다. 


즉 핵심부의 핵과 주변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캐나다에 살면서 캐나다 시민권을 가졌다고 모든 캐나다인이 동등하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며, "캐나다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많은 공동체는 그렇게 식별하지 않는다. 토착문학의 배타성이 그런 경향이 있다.



"캐나다 문학/문화가 주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다 어떤 지정학적, 사회적, 철학적 변화가 이러한 변화와 관련이 있는가? 당신은 서점, 독서 시리즈, 문학 강좌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들 중 어떤 것이 보입니까?캐나다인이 한국에서 쓴 캐나다 문학과 한국인이 캐나다에서 쓴 한국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때때로 문학 학자들은 "전위적", "디아스포라식의" 그리고 "글로벌"과 같은 용어를 동의어 또는 상호 교환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개념이 혼재되고 혼선이 이루어 졌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전위적이든 디아스포라식이든 아직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글로벌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국가 문화가 50년전 또는 100년 전과 비교해 오늘날 더 강해졌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약해졌다고 보는가?아니면 같다고 생각하는가?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캐나다는 50년전만해도 이민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나라였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많은 수의 이민자들이 결혼, 취업등으로 이민을 오고 빈번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며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문화로 대한민국에서 살아 가고 있다.


 
인용된 서적
돕슨, 키트 초국가적 캐나다: 영캐나다 문학과 세계화워털루: Wilfrid Laurier UP, 2009. 인쇄.
캄부렐리, 스마로 스캔들 본체: 캐나다의 디아스포러 문학. 워털루: Wilfrid Laurier UP, 2009. 인쇄.
킴, 크리스틴, 소피 맥콜. "소개." 캐나다의 문화 그래머 오브 네이션, 디아스포라, 인디애나. 에드 크리스틴 킴, 소피 맥콜, 멜리나 바움 싱어. 워털루: Wilfrid Laurier UP, 2012: 1-18. 인쇄.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8건 33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