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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한힘단상] 신이 만든 정원 - 매닝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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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힘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8-21 15:48 조회2,0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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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만든 정원 – 매닝 파크의 야생화

 

 매닝 파크(Manning Park)의 야생화를 보러 길을 떠났다. 지난 8월18일 화요일, 아내(김윤숙 70), 막내딸(심사랑 32)과 함께 셋이서 팔월이 지나면 보지 못할 야생화를 보기 위해 다섯 번째로 매닝 파크의 Three Brothers Mountains를 향했다.



 버나비에서 1번 도로(Canada Trans Highway)를 달려 치리왁(Chilliwak)에서 잠시 멈추었다. 버거킹에서 점심으로 햄버거를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곧바로 다시 출발하여 호프를 지나 3번 하이웨이를 한 시간 남짓 달려 매닝 파크 레조트 앞에서 좌회전하여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중간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서 잠시 멈추었다.


 멀리멀리 아득한 산야가 아직 흰 눈을 머리에 이고 퍼져 나가 있다. 십 여분 올라왔는데 달려온 도로가 발아래 보인다. 그레이잭 한 마리가 벌써 우리를 반긴다. 까마귀 보다 조금 작은 이 새는 사람을 유난히 따른다. 강아지 같은 새라고 해야 할까. 깊은 산속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새이다. 그래서 럼버잭(Lumber Jack)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여기서부터는 비포장 도로로 먼지를 날리며 달린다. 마주 오는 차가 지나가면 잠시 앞이 안 보인다. 주차장이 있는 지점은 고도 2000미터이다. 찻길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온전히 하루가 다 걸릴 것이다. 


 배낭을 짊어지고 팔다리에 모기약을 고루 뿌려야 한다. 고산의 모기에 한번 물리면 지독하게 가렵다. 자동차가 산마루까지 올려다 주었지만 여기서 갈 길도 만만치 않다. 멀리 흘러간 산등성이가 모두 아래로 보인다. 건너다보이는 아득한 구릉지대까지 약 2시간 반에서 3시간이 걸린다. 구비 치는 능선을 따라서 산 위를 걷게 되는 데 길 양옆이 모두 꽃밭이다. 나무 그늘아래로 들어가면 꽃밭이 없다. 햇볕을 받을 수 있는 트인 공간이라야 꽃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지로 덮인 산비탈이 미끄럼틀처럼 쭉 아래로 뻗어있다. 거기에 모두 야생화가 피어있어야 하는 데 이번에는 신통치 않다. 가는 길옆에 고산지대에서 피는 헤더(Heather)와 에델바이스(Edelweiss)가 모두 시들어 말라 있다. 팔월 중순인데 벌써 늦은 방문이 되었다. 이곳에서 피는 야생화들은 주로 6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가 그들의 일생이다. 시월이 되면 서서히 눈이 내리고 다음 해 유월까지 눈 속에 묻혀서 싹을 준비해야 한다. 강한 바람과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것이 고산지대 야생화들의 숙명이다. 


여기서는 걷는 길을 벗어나면 모두가 꽃밭이기 때문에 반드시 트레일을 따라가야 한다. 눈보라 강한 바람을 다 견뎌내는 야생화도 등산객의 구두발에는 못 견딘다는 안내문이 서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간간이 그늘이 지면서 햇볕이 들기 때문에 습기가 유지되어 늦도록 꽃들이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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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처음 찾아왔을 때는 어마어마하게 무리 지어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가 평생에 보았던 꽃을 여기서 한 번에 다 보았다고 경탄했다. 그 뒤로는 정확하게 만개시점을 맞추지 못하고 조금은 뒤늦게 찾아오곤 하였다. 시애틀에 있는 레이니어산에도 약 1600미터 고지에서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는데 여러 번 갔지만 한 번만 만개한 꽃들을 보았을 뿐이다. 해마다 기온과 강우량에 따라서 변화 무쌍하기 때문에 정확한 시점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만 살짝 보여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산등성이에서 내려와 숲으로 난 길을 걸으면서 역시 반겨주는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많은 것은 역시 데이지이다. 가끔 빨간 색의 인디언 페인트브러쉬가 섞여있고, 그 밖에도 무수한 종류의 꽃들이 그들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었다. 


 꽃에는 원래 이름이 없었고, 이름이 필요하지도 않다. 사람들이 제 편의로 제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놓았다. 꽃에게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정해 놓은 꽃이름에 너무 구애될 필요도 없다. 아름다운 꽃이라면 아름다움 자체를 바라봐주면 된다. 야생화는 사실 하나하나는 화려하지 않다. 군생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꽃의 입장에서는 널리 많이 피어있어야 벌과 나비를 부르기도 쉬워지고 다음 세대로 번식하기도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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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신이 만든 정원’이라고 해야 한다. 사람이 만든 정원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꽃들만을 심고 가꾼다. 다른 것은 뽑아버리고 잡초를 용납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신이 만든 정원에서는 어떤 꽃이든지 받아들인다. 잡초까지도 함께 살아간다. 신이 보편적인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은 여기서도 실감할 수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골고루 생명을 키우듯이 이 산에서 뿌리내리고 꽃 피울 수 있는 모든 생명에게 존재를 허락한다. 


신이 만든 정원에서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들의 우렁찬 생명력에 감탄하고, 신이 허락한 존재의 고귀함을 감사하게 만든다.


여기 야생화들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며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온실에서 남들이 주는 물을 편하게 먹고 겉으로 화려하고 크게 피어나는 꽃들과는 전연 다르다. 의지함이 없이 오직 자연적인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해서 생존해 가는 꽃들이 야생화이다. 그들은 올해 마른 잎을 땅 위에 떨구지만 반드시 내년에 다시 피어날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해 왔듯이 내년에도 저만치 밝은 얼굴로 피어날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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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간 거리에 캠프 사이트가 있고 여기서 약 30분쯤 더 가파른 길을 오르면 광활한 초원지대를 만나게 된다. 여기는 나무가 없다. 나무가 없어야 야생화의 밭이 될 수 있다. 아득히 퍼져 있는 야생화의 밭 끝에 삼 형제 산의 첫 번째 산이 있다. 능선이 엄청 가파르다. 


여기까지가 보통 매닝 파크의 야생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목적지가 된다. 우리 가족 세 사람은 모두 터닝 포인트가 달랐다. 막내가 끝까지 다녀오고 아내는 숲길에서 일찍이 주저앉아 가쁜 숨을 가다듬고, 나는 힘들게 계속 올라가다가 내려오는 막내를 만나 반갑게 돌아왔다. 갈수록 오르는 길에서 근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모두 5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며 신나게 달려왔다. 내년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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