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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서쪽으로 난 창] 왕년에(열네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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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9-02 08:19 조회1,7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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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783364_YW7Hrg8O_54198884d3f83da0174ed2f0e04d56ce3ad9d1d4.jpg박지향


내가 캐나다로 떠나 오던 해였다. 목련이 막 피던 시기였으니 2003년 봄이었나 보다. 같은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던 친구 S가 연락을 해 왔다. 잘 지내냐며 안부를 하더니 대뜸 “복국 먹을래?” 하며 점심을 먹자고 했다. 복어독이 무서워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소심한 내가 “그래 좋지”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결혼을 한 뒤 소식을 끊었던 친구였기에 복어가 아니라 악어를 먹자고 했 어도 좋다며 달려 나갔을 것이다. 


덕수궁에서 만나 전시회도 보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북창동에 위치한 복어전문 식당에 도착해 있었다. “혹시라도 먹고 죽음 어떻 해?” 하자 친구는 “죽는 게 무섭구나” 했다. 유치원생을 둔 엄마가 죽는 게 무섭지 않다면 어떤 상황일까?. 나는 묻고 싶은 맘을 꾹 참고 “그래 까짓 것 한번 죽지 두 번 죽어?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하며 복어탕을 주문했다. 복어지리탕 속에 미나리와 콩나물을 건져 양념장에 찍어서도 먹고 쫄깃하고 담백한 복어살은 국물과 함께 떠 먹었다. 맑고 개운한 국물은 후루룩 소리까지 내어가며 먹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국물까지 싹 다 먹어 치웠지만 우리는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불끈 힘이 솟은 내가 “너는 죽는 게 무섭지 않아?” 하고 물었고 친구는 “잃을 게 없는데 무서울 게 있겠어?” 했다.


학창시절 청바지에 흰 면티셔츠를 즐겨 입던 그녀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미모의 음대생이었다. 졸업 후 유학을 떠나겠다던 친구는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지자 첼리스트의 꿈을 접고 담장이 높은 집으로 시집을 갔다. 모두의 부러움을 사며 간 그 집은 담장만 높은 게 아니었다. 시부모님도 시누이도 모두가 넘어야할 높은 산이었다. 중매를 한 이모도 알지 못했던 냉랭한 집안 분위기에 질식해 가던 때에 남편의 외도까지 눈감으라는 시어머니의 명령은 인내심의 한계에 선을 그어 주었다.

 

딸의 양육권까지 빼앗기고 홀로 서야하는 그녀는 첼로 대신 칼을 들었다. 십년 넘게 칼 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는 요리사가 되었다. 인내는 미덕이지만 인내의 끝이 반드시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주지만은 않는다. 포기하는 용기를 택하며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잖아?” 하던 친구가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아무런 장식품도 값비싼 가구도 없는 깔끔한 원룸 아파트에 16년만에 찾아온 딸과 찍은 사진이었다. 딸은 온 집안을 향기로운 꽃밭으로 만들었다. 나란히 앉아 냉면을 먹는 모녀가 환하고 탐스러운 수국처럼 피어 있었다.


많이 가지지는 못했지만 소박한 밥상을 마주하고 웃는 내친구는 세상을 다 가진 행복한 얼굴이었다. 반면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지만 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도 있다. 아흔을 바라보는 매리 할머니가 그중 한 분이다. 비싼 휠체어에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했지만 언제나 배가 고픈 할머니는 빈 속을 공처럼 부풀린 복어 같다. 말로 쌓은 금자탑과 왕년으로 부풀린 배는 누가 봐도 가시복이다. 자신의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되면 돌봐 드리는 직원이든 같이 사는 입주민이든 그 누구도 상관없이 가시를 꺼내 보여주신다. 


커피가 뜨거우면 뜨거워서, 조금 식으면 식었다고 찌른다. 옆자리 할머니 옷이 화려하면 화려해서 거슬리고 검소하게 입으면 궁상스럽다며 핀잔을 주신다. 그러다 보니 뾰족한 가시에 찔리고 싶지 않은 꽃들은 가시가 없는 곳에서 웃음꽃을 피운다. 


왕년에 나는 손끝에 물한방울 안 묻혀도 밥을 먹었고, 왕년에 나는 드레스만 입었고, 왕년에 나는 나만 아는 잘 나가는 남편이 있었다는 할머니에게 현재는 없다. 보내지 못한 왕년은 찾아오는 친구도 가족도 없는 쓸쓸한 현재를 만들었다. 언제나 혼자인 할머니는 식사 시간만 빼고는 건물 입구에 위치한 소파에 앉아 창밖만 내다보신다. 부잣집 장녀였고 잘 나가던 남편에 성공한 딸까지 있다고 노래하던 할머니의 왕년은 모두가 들어 알고 있다. 


노랫말 대로라면 나 밖에 모르던 남편이라도 찾아와야 하건만 살아 계신다던 할머니의 남편은커녕 개미 한 마리 오지 않는다. 하루 종일 오지도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방으로 들어가는 저녁엔 날 세운 가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번쩍이던 휠체어도 빛을 잃는다. 그런 할머니 모습이 천천히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코로나가 퍼지기 전엔 퇴근할 때 “이제 날이 저물었으니 그만 방으로 가세요. 내일 또 만나요” 하며 손을 잡아주고 나왔었다.

   

한동안 신체접촉은 물론이요 개인적인 대화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코로나는 더 심각하게 퍼져가고 있건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계속해서 방과 제한된 공간에서만 머물라 할 수는 없다. 감옥 아닌 감옥 같은 생활은 노인들의 정신과 육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몇 달 사이 기억력, 판단력, 체력이 얼마나 떨어 지셨는지 모른다. 약간의 완화 조치가 필요 했다. 산책도 허용되고 각자의 방으로 배달되던 식사도 다이닝 룸을 다시 오픈 해서 함께 대화하며 식사를 하실 수 있게 했다. 한 테이블에 3명만이 앉을 수 있고 테이블 간의 간격도 넓혔다. 다시 활기와 웃음을 되찾은 노인들은 예전의 건강을 되 찾아가고 계신다. 


몇일 전이었다. 퇴근하던 길이었는데 매리 할머니가 또다시 입구 옆 소파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 앞에 멀찌감치 서서 말을 건넸다. “혹시 누구 기다리세요?” 했다. 너무 조용해서 낯선 목소리가 “나도 너 같은 딸이 있어” 하셨다. 한없이 부드럽고 애처로운 엄마가 매리 할머니 속에도 들어있었다. 그렇게도 자존심 강하고 뾰족한 매리는 어디로 가고, 늙고 나약한 어미만 남아 오지 않는 딸을 몇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복어가 가슴을 부풀리는 건 위협적인 존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위한 보호본능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한다. 할머니의 행동 또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고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는 필사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이혼을 하고 하나뿐인 딸 과도 멀어져버린 매리는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배를 부풀리고 가시를 세운 건 아닐까.


그날은 할머니를 방까지 모셔 다 드렸다. 출입문을 열고 보니 입구서부터 잡다한 물건들이 빼곡히 들어찬 할머니 집은 빈 공간이라 곤 없었다. 값비싼 가구며 화려한 장식품은 물론이요 찾아올 손님도 없는 집에 장식장 가득 쌓인 찻잔, 접시, 와인 잔들로 숨이 막혔다. 유명지에서 찍은 사진과 화려했던 과거는 거실벽에도 벽난로위에도 자랑스럽게 걸려있었다. 그 중앙엔 큼지막하게 뽑은 할머니의 독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잘 차려 입은 매리는 차가운 눈매에 콧대 높은 부잣집 마나님이었다. 그렇게 쌓아 둔 물건과 사진 속의 젊은 마님은 버리지 못한 매리의 왕년이었다.


본의 아니게 작은 집으로 옮기게 되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내다 버렸다. 일년에 한 두 번 앉을까 싶은 손님 용 소파, 식기, 침구, 장식품까지 나누고 팔고 버리며 종이 한 장 더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결심대로 살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늘어난 물건들이, 자랑할 무엇도 없는 왕년이 나를 째려본다. 그럴 때면 ‘시’처럼 살고 있는 내 친구 S와 ‘왕년’을 지고 사는 매리가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너 잘 버리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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