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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내일을 마주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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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0-06 18:33 조회1,1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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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568643_PHyRZXEe_c40e1318271c7429f97e989947ec7f218ee1db64.png정숙인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과수원의 청포도가 농실하게 익어가고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햇사과의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연인인 듯 싶은 두 마리의 잠자리가 상공에서 아름답게 곡예하는 모습을 눈으로 아른하게 쫓다가 마루로 시원하게 들이치는 산들 바람에 설핏 잠이 들었나 보았다나무를 기어오르는 다람쥐 발소리에 화들짝 깨고 말았다고요함속에 불안이 섞여 오감을 자극했다이제는 바람이 불어도 예전의 그 평화로움을 느낄 수 없다공기중에 나쁜 것들이 섞여 있는 듯 자꾸만 안좋은 기운이 느껴진다어언 구 개월이 흘렀다그 시간은 길고 허무하고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 영영 잊지 못하고 기억될 수 밖에 없는 멈춘 시간으로 가슴에 남을 것 같다돌고 돌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바이러스로 인해 무수한 생명들이 자고나면 스러지는 현실앞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는 죽어가는 이들과 그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해 할 뿐이다누구든 장수의 축복은 누리지 못할망정 하루 아침에 허무하게 세상을 하직하고 싶지는 않으리사랑하는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병상에서 쓸쓸히 홀로 눈감으며 이 땅을 떠나야하는 억지스런 슬픈 현실이다.


갑작스레 하지 않던 것을 해야하는 새로운 현실에 길들여지기까지 연습이 필요했다길을 걸으며 했던 인사도 마켓의 정해진 입구로만 들어가는 일도 마스크를 챙기는 일도 실패를 거듭했다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그 말이 퍼지는 전염병보다 더 무섭게 가슴을 헤집었다해마다 봄이면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나도 가슴에 함박 꽃망울을 터뜨렸었다새초롬하니 꽃샘이가 시샘을 해도 마냥 즐거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책을 즐겼다춘곤증으로 감겨오는 무거운 눈꺼풀을 매달고서도 구들장처럼 등짝을 땃땃하게 지져주는 햇님이의 손길이 있어 사무치게 행복했었다다리가 아파 걸을 수 없을 때까지 돌아다녔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예전의 평범했던 일상이 그야말로 봄날처럼 가버렸다이제는 어디든 도둑놈처럼 마스크를 하고 동공을 치켜뜨고 다녀야 했다하루가 한 번 더 늘어난 듯한 피곤한 일상을 살고 있다예전에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 될수록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많은 것들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하루를 두 번 사는 듯한 느낌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매일 하던 수영을 하지 못하니 너무나 괴롭다이십 육 년 동안 매일 하던 것을 끊으니 당장에 병이 왔다사지가 저리고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듯 온 신경이 아프고 불면증이 왔다오카나간 호수에서 수영을 하려고 여름이 되기를 기다렸는데 어찌나 물이 차던지 운동은 고사하고 심장마비에 걸려 급사할 것 같아 포기했다폼나게 준비한 래쉬가드와 반바지도 도로 물렸다도대체 물이 탁해서 수경도 낄 수 없는 데다가 호수 물살도 너무나 느낌이 달랐다가뜩이나 깊은 호수에 빠진 적이 있어 호수를 무서워하는데 모터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물살이 매우 거칠었다모래밭에 앉아 있다 파도가 밀려오면 뒷걸음질을 치는데 아무래도 수영은 무리였다시퍼렇게 넘실거리는 거대한 호수는 잔잔한 접시물 같은 수영장과 감히 비할 바가 못되었다.


이러고 계속 있을 수만은 없었다. ‘위기를 기회로’ 온 인류가 지향하는 캠페인을 나 역시 동참하기로 했다걷기를 수영대신 하기로 하고 오카나간 유비씨 대학가는 길의 호수까지 매일 걸으려 노력 중이다왕복 육 킬로미터이니 거리도 알맞았다앞으로 어떤 미래가 닥칠지 알 수 없으므로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꾸준히 하며 내일을 마주할 힘을 갖추는 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청순하고 소박한 연인같은 봄은 언젠가 꼭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이리라누군가 읊었던 것처럼 저 푸른 들녘 청보리밭 사잇길로 난 길을 걸으며 오늘도 나는 종달새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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