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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수필) 침 뱉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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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무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1-16 08:07 조회9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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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783364_rVaAFz1x_bba282194a4576969a6f9cb0b1d09989be4a0d70.jpg송무석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면서 동화책을 읽어 주고는 했다. 그중에 권정생 선생님이 쓴 <<강아지똥>>이라는 동화가 있다. 거리에 떨어져 있는 아무 데도 쓸데없어 보이는 강아지똥이 사실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한다는 내용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럽기만 할 뿐인 강아지똥도 세상에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가르친다.


사실 내가 이 동화를 비교적 잘 기억하는 이유는 나의 어릴 적 기이한 습관 때문이다. 사람들이 옛날 전차 종점 이름대로 돈암동이라고 부르던 곳에서 나는 살았다. 집에서 중학교까지 가려면 굴다리도 지나고 지저분한 동네 길을 요리조리 지나야 했다. 새마을 운동을 통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는 시기였다. 하지만, 당시 부잣집이 많이 있던 성신여자 사범대학 쪽 일부 구역을 제외하면 길거리가 더러운 곳이 많았다. 점집이 줄줄이 늘어선 미아리 고개 굴다리 부근은 물론 길가에 개똥이나 오물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런 비위생적인 것들을 볼 때마다 길거리에 침을 뱉었다. 침을 뱉으면 더러운 느낌이 덜해지기라도 하는 듯. 집과 학교 사이 편도로 1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오가며 적어도 열 번 이상은 침을 뱉었다. 내가 거리를 더럽힌다는 생각은 못 하고.


나중에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오물을 버리는 등의 행위를 경범죄로 처벌하는 법규가 생겨났다. 이 법이 나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한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 때문에 단번에 습관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더러운 것을 보면 차마 밖에서는 침을 못 뱉으니까 입안 가득 침을 모았다.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나 밤을 입안에 넣고 옮기듯이. 그다음 화장실로 얼른 가서 입을 비웠다. 그래서 입에 침이 한가득 있을 때 누가 말을 시키면 참 곤란했다. 침이 쏟아져 나올까 봐 말도 못 하고 언어장애인처럼 그저 손짓이나 고개로 끄떡일 뿐이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은 내가 정말 무례하거나 벙어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예전에는 공중화장실이 아주 더러워서 밖에서는 화장실을 안 가려고 일부러 용변을 참는 나였다. 어쨌든 나 자신이 나쁜 버릇을 고치려 열심히 노력해 2년여가 지나서 어느 정도는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나는 결벽증에 걸린 사람 같은 면모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나는 땅바닥이나 풀밭에 철퍼덕 주저앉은 적이 없다. 지금도 우리 집 밖에서는 맨바닥에 앉지 않고 상가나 버스 등의 좌석에도 가능한 한 앉지 않는다. 집 밖에서는 화장실 문이 아니어도 웬만하면 문손잡이를 잡지 않고 발로 밀거나 팔꿈치로 미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문 아랫부분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한 문이나 자동문이 많아지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손잡이를 잡지 않고 그냥 서서 차량의 쏠리는 대로 나도 같이 위태롭게 휘청거렸으니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하게 봤을까?


예전에 어른들께서 “흙바닥에 뒹굴며 자란 아이들이 깨끗하게 기른 부잣집 아이들보다 더 건강하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사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얻어지는 통찰이었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최근의 과학 연구들이 이런 말씀과 맥이 통하는 결과를 제시하니.


캐나다에 와서 놀란 일 중의 하나가 음식 알레르기에 대한 경고이다. 무수한 포장 식품의 포장지에 땅콩이나 달걀 같은 다른 알레르기 유발 성분에 대한 경고가 새겨져 있다. 수년 전에는 커피 믹스나 과자 등의 일부 한국 수입 식품이 이런 성분이나 경고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아 리콜된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우리 둘째가 캐나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이 학교에서 땅콩이 들어간 식품을 학교에 가져오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낸 적이 있다! 하긴 음식 알레르기 때문에 생명이 위독해 응급실로 후송되는 경우도 있으니 당연한 조치일 수도 있다. 큰아이는 학교에서 수업 중 교사가 견과 과민증(food anaphylaxis) 때문에 응급차에 실려 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음식 과민 반응이 꼭 특정 민족이나 인종에 따라 선천적으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이 땅콩에 목숨이 위험할 만큼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콩이나 밤 같은 식품을 많이 섭취한 까닭이 아닐까? 과거에는 의사들이 어렸을 때 견과 같은 알레르기 유발 식품을 먹이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런 식품이 아토피 같은 피부 질환도 부르고 소화 불량도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유대계 주민 중 어려서부터 견과 같은 알레르기 유발 식품을 먹은 부류와 안 먹은 부류를 비교한 결과 어려서부터 먹은 쪽이 알레르기 반응을 훨씬 덜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후 캐나다 등 많은 나라가 견과 등 알레르기 유발 소인이 있는 식품을 어려서부터 먹이도록 의학 지침을 거꾸로 뒤집었다. 아마도 우리 몸이 면역체계를 완성하기 전에 알레르기 유발 식품에 접촉해야 면역체계가 이런 식품을 병원균과 같은 이물질로 인식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한다.


같은 논리가 위생문제에서도 적용된다. 현대인의 수명 연장과 건강의 최고의 공로자는 위생의 개선에 있다. 그런데, 이 위생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우리는 모든 균을 죽이려고 또는 동식물을 병충해 없이 키우려고 항생제와 살균제, 살충제를 남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청소에 99.99%의 균을 죽인다는 라이졸 같은 세제를 당연하게 쓴다. 그래서 깨끗한 환경에서 병균 걱정 없이 사니 얼마나 건강할까? 그렇지만, 이 또한 그릇된 판단이었다. 감기는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의해 생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감기 비슷한 증세만 보이면 무조건 항생제를 처방했다. 항생제가 든 감기약을 먹은 아이들은 종종 설사한다. 이유는 우리 소화기관에는 장기의 세포 수보다 월등히 많은 균이 살아서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소화와 흡수를 담당한다. 항생제를 먹으면 소화기관 속의 유익한 균까지 다 죽이니 무슨 일이 생길까? 당연히 소화가 잘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감기를 달고 산다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항생제를 불필요하게 먹인 것인지! 다행스럽게도 항생제 내성이 문제가 되면서 요즈음에는 항생제를 쓸데없이 처방하지 못하게 규제한다. 캐나다 이민 초기 우리 딸이 열이 38℃ 가 넘는데도 의사가 아무 약도 주지 않고 “열이 3일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게 합리적인 지시였다. 우리 딸은 3일 이내에 열이 떨어지고 저절로 나았다. 지나친 위생이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어렸을 때 강아지와 같이 털 달린 동물과 놀면 정서 발달뿐 아니라 알레르기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소화와 관련해 하나 덧붙이면 유럽계 사람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등 거의 전 세계 사람들이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이라고 우유만 먹으면 젖당이 소장에서 잘 분해되지 못해 배가 더부룩하거나 설사를 하게 된다. 이는 유제품을 수천 년 동안 거의 먹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장에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습관적으로 설사하는 사람은 장 속에 유익한 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모든 치료법과 약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장이 튼튼한 사람의 변을 이식해 장내 세균 균형을 되찾아 줌으로써 장 기능을 정상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줄도 모르고 한국에 살 때 공해가 심해 까만 먼지가 날린다고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그런 과도한 청결이 우리 아이들이나 나의 알레르기 성향에 일조했다고 본다. 또한, 감기 같은 증세를 툭하면 보이는 아이들에게 의사의 지시대로 수없이 항생제를 주어 아이들 장 기능이 약해지게 되어 후회스럽다. 무수한 항생제는 결국 아이들의 세균에 대한 저항력, 면역력을 저하해 자주 아프게 하는 요인이었다.

침 뱉는 아이는 미리 깨달았어야 했다: 우리는 멸균실에서 살지 않고 이 세상을 멸균실로 만들 수도 없음을, 무수한 세균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그것들과 공존하고 유익한 균으로 해로운 균을 억누르면서 살아가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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