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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겨울, 향기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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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2-02 08:09 조회7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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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16f97d59cdd00d99b9c9672de88001_1565912805_9747.jpg 박성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우리는 누웠다. 갈빗대 한 편 씩 방바닥에 깔아 놓고 눈을 맞췄다. 얼었던 그의 몸이 녹자, 강한 페로몬 향기가 났다.


그 향기는 빠르게 나를 매혹시켰다. 그것은 체외 분비성 물질로 온 몸의 땀구멍을 통해 나온다. 동물들도 서로 어떤 행위를 일으키거나 의사를 전달할 때 그 냄새를 이용한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그의 목덜미와 얼굴, 겉옷 위로 풍기는 달콤하면서도 야릇한,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그 내음을 탐닉하길 좋아했다.


거기엔 분명 그를 사랑하게 하는 묘력이 있다. 아름답고 편안한 휴식을 주는 라벤더, 사향, 바닐라나,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랭랭 제라니움, 패츌리, 백단, 로우즈 보다도 향기로웠다.


그는 틈만 나면 내 자취방으로 놀러 왔다. 4층 옥탑 방이었다. 그가 오는 날이면 나는 따뜻한 아랫목과 뜨끈한 국물이 있는 저녁상을 준비했다.


그는 2,3일에 한 번, 여느 땐 매일 드나들었다. 그때마다 꼭 카키색 바바리코트 아니면 검은 가죽 잠바 차림이었다.


그는 늘 뛰어왔다. 그 때는 그에게서 차가운 바람 냄새가 났다. 보고 싶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두 가슴 교감할 수 있는 주파수만 맞으면 된다.

가끔은 붕어빵과 국화빵, 군고구마를 사 들고 오기도 했다. 그런 날엔 그가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따뜻한 냄새가 방안 가득 배어 있었다.


그를 만날 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어도 배고프지 않았다. 사랑을 느낄 때 포만감을 주는 호르몬이 분비된 모양이다.


내 화장대 위에는 2개의 향수병이 있다. 오래전 PC통신에서 만난 미국 유학생으로부터 받은 선물인데,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까만색과 은색의 두 용기는 각기 금색 테두리가 둘러져서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1921년 불란서 샤넬이 개발해, 요염한 마릴린 먼로가 늘 입고 잤다는 샤넬 NO.5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 만든 NO.19다. 은은하면서도 우아한, 상쾌하면서도 생기발랄한 향이다. 나는 우울할 때나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그것을 뿌린다.


소설『향수』의 주인공은 오직 최상의 향수, 가장 좋은 체취를 얻기 위해 25명의 아름다운 소녀를 살해한다. 꽃과 과일, 나무, 그 어느 향기로운 식물의 천연 향보다도, 알콜 성분을 넣어 가공한 향보다도, 견줄 수 없는 향이 사람의 몸 냄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맑은, 아름다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향기이리라.


이 세상은 수만 가지의 헤아릴 수 없는 냄새를 가지고 있다. 존재하는 것은 나름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 당대의 기생 황진이는 사향을 지니고 다니며 자기 관리를 했다고 한다.

16살 때 미지의 사람으로부터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는 주황색 켄트지위에 펜촉으로 잉크를 찍어가며 그림을 그려 만든 것이었는데, 참 특이한 냄새가 났다. 나는 한동안 그 냄새에 홀려 오랫동안 그와 편지를 나누며 애틋한 그리움을 키웠다. 그 냄새, 그 첫 느낌은 아직도 내 코끝에 묻었다.


냄새는 기억을 이끌어내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가.


작가 마르셀프러스트도『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책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에 끌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시간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함께 자취를 한 동생에게선 늘 화장품 냄새가 났다. 나는 외출할 때만 몸단장을 하는 편이어서 잘 씻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서 노린내가 난다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목욕탕에서 산 적이 있다.


애인이 생겨도, 내가 먼저 바짝 다가서지를 못했다. 오히려 다가올까 움찔 물러섰다. 어쩌면 호소력 짙은 페로몬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이 겨울, 그 때의 향기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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