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기행수필2020-7 로키에서는 산 이름을 묻지 마라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여행 | 로키기행수필2020-7 로키에서는 산 이름을 묻지 마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2-14 16:20 조회1,257회 댓글0건

본문

407906943_IbaUunfY_51027c3aa69ccb7feb60c1fa17f148527f8b4b60.png

아사바스카 폭포


로키기행수필2020

로키에서는 산 이름을 묻지 마라

심현섭

로키에서 산들의 이름을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긴 긴 세월을 버텨온 바위산에 어느 날 서양인들이 와서 사람의 이름을 산 이름으로 만들었다사연들은 구구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영구히 남기고 싶은 욕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호수나 산의 경우 사람 이름이 붙으면 Lake가 이름 앞으로 나온다. (: Lake Louise, Lake Agnes, Emerald Lake, Minewanka Lake) 산의 경우는 대개 Mount가 이름 앞으로 나오고 인명이 아닌 경우는 Mountain을 뒤에 붙이고 있는 데 정확한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 Mount Robson, Mount Edith Cavell, Mount Rundle, Cascade Mountain, Whistler Mountain) 한국에서는 인명을 산이나 호수에 붙이는 경우는 없다어른의 함자를 함부로 부르지도 못할 만큼 존엄하게 여겼기 때문이다아들의 이름을 아버지나 할아버지 이름과 같게 할 수도 없다아들을 부를 때마다 어른을 부르는 꼴이 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이름이란 이 산과 저 산을 구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그래서 지금도 번호로 된 산들이 많다워낙 봉우리가 많다 보니 일일이 다 외운다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관광 가이드들이 가끔 앞에 있는 산은 앞산이고뒤에 있는 산은 뒷산이고옆에 있는 산은 지나가는 산이라고 우스개 말을 하기도 한다.

 

곤도라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안개가 이리저리 쏠리는 바람에 멀리 자스퍼가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곤도라에서 내리고 나서 왕복 3km의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산정으로 갈 수 있다올려다보니 산정은 보이지 않고 매운 바람이 불어 추웠다갑자기 우리 내외는 칠십이 넘은 노인이라는 허약한 생각이 들어 젊은 두 딸들만 올라갔다 오라고 등을 밀어 보내고 터미널 빌딩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따뜻한 크림차우더 수프와 터키 샌드위치커피를 마셨다창문 밖에서는 강하게 부는 바람에 안개가 이리저리 쏠리면서 파도처럼 춤추고 있다올라간 딸들에게는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산꼭대기에는 안개가 가셔 먼 산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었다얼마 뒤 두 뺨이 빨갛게 상기되어 웃는 낯으로 두 딸들이 나타났다멋진 광경이었다고 하면서 엄지를 올린다산정에는 안개가 사라져 운무가 잔잔히 끼어 있는 연봉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하며 아직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로키를 올려다만 보다가 위슬러 산정에서 비로소 내려다 본 것이다조물주가 산들을 만들었다면 올려다보면서 만든 것이 아니고 내려다보면서 만들었을 것이다그러니 신의 눈높이에서 산을 본 것이다사람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신의 눈높이에 맞추어 보려고..

 

시각장애인들도 여행을 즐긴다북한산에도 올라가고히말라야에도 가고나이야가라 폭포에도 갔다는 말을 들었다눈 뜬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눈을 감고 보이지도 않는데 무엇을 보러 간다는 것일까그런데 눈을 뜨고 보았는데도 단 5분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을 눈을 감은 헬렌 켈러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눈을 뜨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눈을 감고 보는 사람은 볼 수 있다고 했다눈앞에 있는 것들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으면 다 본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마음이 지향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지향점도 달라진다그래서 공자는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헬렌 켈러(Helen Keller)는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것들은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세상에 없는 절경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보아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백 사람천 사람이 로키를 보았다 하더라도 백 가지 천 가지로 느낌이 다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다시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달렸다가끔 엘크사슴을 볼 수 있는 지역인데 오늘은 자취가 없다날씨는 흐리고 연기가 점점 짙어지는 듯 멀리 있는 산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가을이라고 로키에서 단풍을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수목한계선 위로는 바위뿐이고 아래로는 침엽수림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니 단풍이 드는 나무가 없다그나마 침엽수림 사이로 자작나무가 간간히 끼어 있어 가을을 느끼게 해준다침엽수는 잎이 바늘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빙하기를 거치면서 추운 지방에서 살아남은 수종이다그런데 활엽수인 자작나무가 유일하게 이 침엽수들 사이에서 잔존하고 있다불에 탈 때 바짝 마른 하얀 껍질이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자작나무라고 했다는데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종이 대신에 사용되기도 하였다경주 천마총에 있는 천마도가 바로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삼국시대 의 유일한 회화작품이다타원형으로 생긴 자작나무 잎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발광하듯이 단풍이 드는 데 멀리서 보면 마치 불을 켜놓은 것처럼 환하게 보인다녹색의 침엽수 사이에 자작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면서 바위산 여기저기 단품이 들면 로키에 가을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스퍼에서 약 30km 지점에서 93A로 빠져나가는 길을 만난다아사바스카 폭포(Athabasca Falls)로 가는 길이다나가자마자 왼쪽에 주차장 길이 나온다맨 처음 우유 빛 아사바스카 강을 만나고 오른 쪽으로 물이 떨어지는 굉음이 들리면서 물안개가 넓게 피어올라 폭포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그런데 소리는 들려도 폭포는 보이지 않는다높은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아니고 강물이 흐르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내려다보는 폭포이다.

아사바스카는 이곳 원주민 말로 여기저기 갈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아사바스카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사바스카 강을 이루고 여기에 와서 석회암 바위를 만나 오랜 세월 깎아내린 결과 지금의 폭포를 만들어 내었다강은 1231km를 북쪽으로 흘러 북극해로 들어간다폭포의 높이는 대략 23미터 정도 되는데 단일하게 떨어지는 폭포가 아니고 협곡을 이루면서 이리저리 휘돌아가며 물이 용솟음치고 바위를 깎아내어 만들어낸 무늬가 일종의 자연적 작품을 이루고 있다햇빛이 나는 날에는 물안개 위에 영롱한 무지개가 떠서 보는 사람을 감탄하게 만든다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물로 인해 단단한 바위가 깎여나가 지금도 미래로 강은 흐르고 있다자연과 장구한 시간의 흐름그 속에서 변화하는 산천의 모습을 바라볼 때 짧은 생을 사는 인간의 삶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얼음보다 단단한 빙하가 녹아 강물이 되고

강물이 흘러 흘러 바위를 만나

아득한 시간 속에 협곡을 만들었다.

 

부드러운 깃털로 태산을 쓸어내려

평지를 만든다더니

더 부드러운 물로 바위를 깎아

떨어지는 폭포를 만들었다.

 

백만 년쯤 지난 뒤에

이곳을 지나는 한 나그네가

예전에 여기 폭포가 있었다고 하면

머리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8건 28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