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기행수필2020-9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여행 | 로키기행수필2020-9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2-22 17:13 조회1,135회 댓글0건

본문

407906943_nMC3yGOc_3f78ac4cc22959cc91d760314cb95f0d0ae9919c.png

Peyto Lake photo by tripsavvy


 9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심현섭

 대학시절 ‘서양미술사’ 강의를 들었다. 어느 날 염은현 교수님은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스스로 자문하듯이 말문을 열었다. 정확한 대답을 몰라도 이때부터 나는 이 질문을 좋아하게 되었다.

 꽃을 보아도 산을 보아도 강을 보고 폭포를 보아도 또는 석굴암 십일면관음상을 보아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아도 그 앞에 서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왜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를 나에게 질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움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왜 하고 싶고, 왜 좋아하는지를 모르면 본능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하는 일에는 ‘왜’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거꾸로 대답할 수 없으면 본능이 작동하고 있다고 여겨도 된다. 본능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이고 행동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높은 산을 오른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올라간다. 그들을 붙잡고 ‘산에 왜 올라가느냐’고 물으면 별말 없이 웃는 경우가 많다. 겨우 내놓는 대답은 그나 나나 온전히 동의하기 힘든 말뿐이다. 차라리 ‘산이 거기 있어 간다’고 말하는 것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밥이 있어 밥을 먹고 피아노가 있어 피아노를 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본능적이기 때문에 대답이 궁색한 것이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왜일까?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두말할 것 없이 본능 때문이다. 인간이 문명화되면서 사회가 복잡해지고 대인관계가 다양화하면서 특정인을 특별히 더 사랑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뿐이다. 지긋지긋하게 서로 싫어하던 남녀 두 사람을 절해고도에 갔다놓고 몇 년 뒤에 가보니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더라는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염은현 교수님은 어원학적으로 추론해 볼 때 ‘아름답다‘는 ’~답다‘는 말로 생각해 볼 수 있고 여기서 아름은 한 아름 – 양팔로 가득 품을 수 있는 최대 크기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아름답다‘는 원초적인 의미에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많은 크기와 량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크다는 것, 많다는 것은 선사시대인들에게는 무엇보다 의미 있는 가치였다. 그렇다면 원래 미적 의미는 풍요와 연관된다고 여겨진다. 물론 이런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하게 변화해 갔지만 아직도 크고 많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선 산은 높아야 하고, 계곡은 깊어야 하며, 바다는 넓어야 하고, 꽃은 아주 많아야 한다. 바위를 보고 찬탄하던 사람이 주먹 만한 자갈을 보고는 별다른 흥취를 못 느낀다. 바다는 넓어서 아름답다. 작은 수로의 물을 보고 이것이 바닷물이라고 해보아야 웃음이 나올 뿐이다. 호수를 보고 경탄하던 사람이 조그만 저수지를 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올려다 보이는 산이라야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조그만 흙무덤은 관심을 일으키지 못한다. 꽃 한 송이에도 아름다움이 없지 않지만 구릉지대에 수 천 수만으로 한꺼번에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보면 표현할 수 없는 충격적인 미를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너무 크거나 너무 많거나 해서도 안 된다. 오대호나 발칼 호수를 보면 거대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아름다운 호수라는 생각은 안 든다. 비행기나 인공위성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한꺼번에 내려다보면 올려다볼 때의 경외감이나 아름다움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깊은 산속은 어둠이 빨리 찾아든다. 해는 넘어가고 갈 길이 먼 나그네는 외롭다고 했다. 어둠이 산록을 휘감고 산불 연기가 더욱 더 짙어져 산봉우리가 거의 희미하게 자취만 남아있다. 만약 평생에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로키여행이라면 정말 불행한 여행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에서는 미련이 남는 것도 좋다. 그래야 또 오겠다는 마음속 기약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콜럼비아 아이스필드를 출발하자 자스퍼 국립공원이 끝나고 밴프 국립공원이 시작한다는 팻말이 커다랗게 서있다. 고갯마루를 지나 빅밴드를 돌고나서는 내리막 길이다. 오른쪽으로 사스케찬 강이 흐르고 왼쪽으로 거대한 화강암 절벽이 길게 늘어서 있다. 높이가 300미터나 되는 ’눈물의 벽’(Weeping Wall)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맨 위를 보려면 고개를 완전히 뒤로 꺾어도 잘 보기 힘들다. 절벽의 표면을 따라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무수히 많은 실폭포가 절벽을 뒤덮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 새가 소리를 내면 운다고 하고, 동물이나 다른 사물에 물기가 흐르면 우리는 모두 운다고 표현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대상을 판단하고 해석한다.

 이것은 일종의 캐스케이드(Cascade)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에는 없는 일이다. 산이나 절벽 위에 겨울에 내린 눈이 쌓여서 봄 여름, 가을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녹아 흘러내리면서 바위 절벽을 만나면 상황에 따라 가느다란 실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또는 표면을 적시면서 흐르기도 한다. 캐스케이드는 눈이나 빙하가 녹은 물이기에 수량은 많지 않다. 겨울에는 빙벽을 이루기도 하고 위에 쌓인 눈이 많지 않으면 가을쯤에 흐르는 물이 멈추기도 한다. 그래서 캐스케이드의 물이 멈추면 로키에 가을이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페이토 레이크(Peyto Lake)는 콜럼비아 아이스필드에서 약 1시간을 달리면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로키의 호수 중에서 가장 물빛이 아름다운 호수로 알려져 있다. 주로 주차장에서 전망대로 올라가 멀리 내려다보게 되는데 처음 보는 순간 청록색의 진한 빛깔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이 호수는 직접 물가로 내려갈 수는 없다. 왼쪽으로 빙하에서 녹은 물이 천천히 호수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길게 여우모양으로 알려진 호수를 조망할 뿐이다.

 전설적인 밴프지역 산악 가이드였던 빌 페이토(Bill Peyto 1869-1943)가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를 그냥 지나가는 것은 불운한 일이다. 주차장 공사로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것을 알고 왔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 도로 입구에서부터 차단되어 들어가지 못하였다.

 

 입구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오다 보면 멀리 우람찬 바위산 아래 호수가 보인다. 내려오면서 보는 보우 레이크(Bow Lake)가 수려하게 아름답다. 보우 레이크는 고도 1950m로 한라산 높이와 똑같다. 로키의 유명 호수 중에서는 봄에 가장 늦게 녹는다. 거의 6월 말쯤 되어야 한다. 파크웨이 도로 바로 옆에 전망대(View Point)가 있어서 호수를 관망하기가 매우 편리하다. 거대한 돌산 앞에 청록색 호수가 잔잔한 거울처럼 좌우로 길게 퍼져있다. 시야를 막는 장애물이 없어 보우 호수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감추고 도사리는 게 없다. 나에게 로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세 개를 꼽으라고 한다면 레이크 루이스와 모레인 호수와 함께 보우 호수를 꼽고 싶다. 겨울에도 여기까지는 눈길을 헤치고 찾아올 수 있는데 눈으로 덮인 산과 호수의 모습이 진정 황홀할 지경이다.

 이번에 왔을 때는 산과 호수가 희미하게 윤곽만 남아있고 보우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연기라는 치마폭에 감싸여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인터넷 시대가 좋다고 했던가, 숙소에 들어가서 화창한 날 잘 찍은 보우 호수의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 보았다. 호수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로키여행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공중화장실이 여러 개 있고, 남티자 랏지(Num-ti-jah Lodge)를 지나 약 4.6km를 가면 보우 폭포를 만나고 그 위에 보우 빙하를 볼 수 있다. 빙하-폭포-호수-강이 같은 이름으로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이번에는 이 길을 트래킹하지 못했는데 다음 기회의 숙제로 남겨두기로 하였다. 빨간 지붕의 남티자 랏지는 1923년 지미 심프슨(Jimmy Simpson 1877–1972)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그는 초기 로키 등반 안내자로 캐나다 최고의 산악인 중의 한 명이었다. 랏지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은 그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지미 심프슨(2966m)이라고 명명되었다.

 

 보우 레이크를 지나서 바로 오른쪽으로 까마귀발 빙하(Crowfoot Glacier)가 나온다. 절벽에서 내려오던 빙하가 옆으로 세 가닥으로 펴지며 형성된 것인데 온난화로 지금은 두 가닥만 남았다. 절벽에 턱이 있어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옆으로 기어가는 형상인데 로키에서 유일하게 특이한 빙하이다. 우리 같으면 삼지창이 먼저 떠올랐을 텐데 이것을 까마귀의 세 발로 본 것이다.

 이제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까만 길을 헤드라이트에 의존해서 달려간다. 지나가는 차는 거의 없다. 로키의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에서는 어디든지 길가에서 노숙할 수 없다. 오늘의 목적지인 캐슬마운튼 살레(Castle Mountain Chalets)까지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93번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달려 1번 고속도로를 만나서 좌회전한 후 밴프 쪽을 향하다가 래디움 핫스프링으로 빠지는 네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레조트이다. 밴프와 레이크 루이스 중간쯤 되는 곳이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살레에 도착했다. 밸마운트에서 아침 7시 30분에 출발했으니 무려 12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통나무 캐빈이 20개 있고 각각 독립되어 있어 시골집에 온 기분이 든다. 들어가자마자 스토브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어제 밸마운트에서 맛있게 먹었던 삼겹살 생각이 났다. 오늘 저녁도 삼겹살을 굽고 레드 와인으로 가족 모두가 축배를 들고 긴 길을 무사히 온 것을 함께 기뻐하였다. 어둠 속에 검고 묵직한 캐슬 마운튼(Catsle Mountain 2862m)이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행복하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아름다움을 찾고 아름다움과 함께 하는 한 

우리는 행복하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7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