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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로키기행수필2020-15 레이크 루이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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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2-01 15:51 조회1,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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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view Lounge of Chateau Lake Louise


로키기행수필2020

15 레이크 루이스의 민낯

                                                                                             심현섭

 레이크 루이스가 이런 미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름다운 호수의 유일한 경우는 아니다. 다른 아름다운 호수도 또 많다. 그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특이성을 가지고 찾는 이들을 감탄하게 한다. 아름다움의 다양성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에 미인이 한 사람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듯이 말이다. 

 나는 이것이 레이크 루이스가 가지고 있는 미적 요소의 전부라고 여기지 않는다. 달이 뜬 밤풍경의 레이크 루이스를 아직 보지 못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며 눈이 내리는 풍경은 또 새롭다.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고 황혼 빛이 물들어가며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호수는 또 다른 고즈넉함을 지니고 있다. 내 마음이 밝을 때와 어두울 때 호수는 또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유키 구라모토(Yuhki kuramoto)의 피아노 곡 ‘Lake Louise’를 듣고 있다. 레이크 루이스는 보지 않고 듣고만 있어도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로키는 저기 서 있고 나는 여기 서 있네

흰 구름은 흘러가는데 산은 말없이 서 있고

계곡의 물은 쉬지 않고 흐르는데 나는 말없이 서 있다.

산을 보는 마음은 산처럼 무겁고

심중의 영기는 새처럼 날아오른다.

먼 미래에도 이 자리에 서서 로키를 바라볼 사람이 있겠건만

어느 누가 내가 오늘 여기서 저 산을 보며 경탄한 줄이야 알겠는가

로키가 있어 가고 오는 사람을 모두 헤아릴 것이니

나의 자취를 알아주는 이는 저 산뿐이다.

 

 코로나 사태에도 레이크 루이스 주차장은 만원이다. 간신히 주차를 시키고 호수를 향했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바로 호수 풍경이 전개된다. 예상한 대로 뿌연 안개가 수면을 덮고 멀리 보이는 것은 마치 그림에서 스케치를 한 듯이 윤곽만 보인다. 윤곽, 테두리 속에도 호수가 지닌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차라리 잠자리에서 막 깨어난 화장하지 않은 민낯이라고 할까. 화려하지 않으면서 웅장하고, 세밀하지 않으면서 장려한 모습이다. 호텔 정원 앞을 지나서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오른 쪽 산비탈 길에는 아그네스 호수로 올라가는 이정표가 있는데 약 2시간 거리이다. 원래 일정에는 아그네스 호수로 올라가려고 한 것을 산불연기로 시야가 트이지 않아 포기하고 평편한 호숫가 산책길을 택했다. 호수가 끝나는 지점까지는 평탄하지만 그 후에는 험하지는 않으나 역시 산길이다. 이 길은 여러 관광책자에서 최고의 산책길로 유명하다. 적어도 레이크 루이스를 찾았다면 호수 끝 2.4km까지는 한번 걸어보는 것이 이 호수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호수 끝에는 빅토리아 빙하에서 녹아 흘러내려 호수로 유입되는 숱한 삼각주를 보게 된다. 탁한 우윳빛이 나는 물이다. 이 빙하물이 오묘한 호수의 청록색을 연출해 내는 주인공인 셈이다.


 호수를 지나자 고산지대로 들어가는 기분이 난다. 흐릿한 풍경이 몽환적인 산세를 보이고 여기가 바로 로키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길가에는 아직도 하얀 데이지가 드물게 피어있다. 더러 이름을 모르는 야생화가 구월 중순인데도 지나는 이에게 미소를 보낸다. 데이지는 우리말로 들국화인데 볼수록 정이 가는 꽃이다. 가는 길에 만나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로키에서 빨간 꽃을 대표하는 꽃은 인디언 페인트브라쉬(Indian Paintbrush)인데 길을 가며 멀리서도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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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n Paintbrush, Wild Flower of the Rockies


 호수 끝에서 빅토리아 빙하까지는 거의 3.5km정도 되는데 이 사이에 산사태로 새로운 호수가 또 만들어지고 있었다. 빙하에서 녹은 물이 흘러내리며 개울을 이루는데 이것이 주로 산사태나 지진 등으로 막히게 되면 그 너머로 호수가 생겨나게 된다. 평야지대에서는 물의 흐름이 바뀔 뿐이지만 협곡의 산간에서는 쉽게 댐이 형성되어 서서히 호수가 된다. 로키의 호수들을 자세히 보면 거의 이런 과정을 통해 호수가 생겨났기 때문에 주위의 풍광이 아름답다. 자연은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중에 한 순간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다.

 

 절벽 길을 지나서 삼거리를 만났다. 왼쪽은 말이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오른쪽은 산비탈을 구불구불 돌아 올라가는 것이 보이고 왼쪽 길은 평편하게 보인다. 딸들은 아마 티하우스에 도착했을 성 싶다. 나는 아내와 쉬운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아내가 더 이상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길가에 주저앉는다. 함께 앉을 수도 없고 나 혼자 티하우스에 갔다가 아이들과 같이 내려올 터이니 아내는 아까 삼거리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 홀로 떠난 말이 다니는 길이 점점 험해지고 가도 가도 끝이 안 난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은 불안감에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은데 길은 산 위로 올라가고 있다. 나는 옆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자갈로 덮인 언덕을 네 발로 기어 올라가며 ‘아이고, 이 두 발 가진 동물의 비애여!’하고 속으로 외쳤다. 언덕 위에 올라서니 놀랍게도 빅토리아 빙하와 절벽이 바로 눈앞에 병풍처럼 보였다.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로키의 속살은 힘들여 걸은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때 딸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가 터지는 것도 신기한데 지쳐 주저앉았던 아내가 티하우스에 도착해서 함께 출발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뒤돌아 내려와 삼거리에서 우리 일행 모두와 반갑게 만났다. 아내는 길가에 앉아 있자니 벌레가 달려들고 해서 슬슬 가다가 만나는 게 낫다고 여기고 가다보니 티하우스가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엉뚱한 길에서 헤매다 온 나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아내는 나보다 약한 듯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잰 걸음에 앞서 가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호텔 2층에 있는 레이크뷰 라운지에서 만나 와인 한 잔 하기로 했다. 라운지에는 길고 둥그런 커다란 창이 8개가 있다. 각 창에서 밖으로 사진을 찍으면 바깥 풍경만 나오고 까만 테두리를 두른 액자처럼 보인다. 풍경을 두 눈으로 그냥 보는 것과 절제된 공간으로 잘라서 보는 것은 새삼 느낌이 다르다. 그 창문 앞 테이블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며 와인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오늘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의 각방에는 창문 앞에 조그만 탁자를 놓고 양쪽으로 의자가 놓여 있다.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 호텔에 묵을 이유가 절감된다. 수평각도 보다는 조금 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시야도 넓어지고 호수 물빛도 훨씬 진하게 보인다.


 내 다리처럼 느껴지지 않는 지친 다리를 이끌고 5시간의 산행 끝에 호텔에 도착했다. 가든으로 들어가는 문에서 출입을 막는 직원이 있었다. 존스톤 계곡을 갔던 경험을 살려서 우리 일행이 라운지에서 지금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두 말 않고 들어가라고 한다. 레드 와인 한 병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고 와인 잔 네 개와 치즈들이 우리 내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다시 한 번 세계평화와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와인 잔을 높이 올려 축배를 들었다. 지친 몸에 흘러드는 와인 한 모금은 전율을 일으키며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달콤한 와인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면 이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세상은 욕심으로 가득하지만 이 순간만은 모두 다 날아가고 행복한 마음만 남아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 위에는 어둠이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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