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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로키기행수필 - 16 감동은 자연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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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2-07 14:46 조회1,6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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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aine Lake & Ten Peaks, Photo by hanhim


16 감동은 자연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다

                                                                                       심현섭

 5일차 낮이 밝았다. 로키에 와서 처음으로 날이 맑고 공기는 청정하다. 3일 동안 캐슬마운튼 샬레에서 묵었던 살림살이를 서둘러 정리하고 모레인 호수를 향해서 길을 떠났다. 모레인 호수는 레이크 루이스 올라가는 언덕길에서 좌회전해서 약 반시간 거리에 있다. 오전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입구에서 차량통행을 막고 있었다. 지나쳐서 유턴해 다시 내려오니 역시 오픈이 안 되었다. 그렇다고 모레인을 안 보고 로키를 보았다고 하겠는가. 우리는 언덕 아래에서 다시 유턴해서 올라갔다. 출입이 되고 있는데 좌회전이 안 된다. 또 다시 유턴해서 서둘러 돌아와서 막히기 전에 들어갔다. 모레인 호수는 가는 길도 마음 같지 않다. 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오픈하고 겨울에는 아예 출입이 안 되고 도로를 크로스 칸추리 스키장으로 이용한다. 좁은 협곡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주차장이 아주 비좁다. 여름 한철에는 새벽에 가도 차를 댈 자리가 없다. 글쎄 넓히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넓힐 수 있겠지만 차라리 핑계 삼아 출입자를 통제하기 위해 모른 척 그냥 두는 것 같다. 많이만 온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로키를 수출 못하니까, 관광객을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관리를 잘못해 환경이 망가지면 큰일이다. 로키는 아무리 보아도 닳지를 않는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풍화작용으로 산이 조금은 깎일지는 몰라도 관광객이 보아서 변하지는 않는다. 천혜의 자연자원으로 언제까지고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 그러나 나도 캐나다 시민이니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들어가는 길은 산중턱에 난 좁은 2차선 도로인데 구불구불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이 없다. 침엽수림으로 원경을 볼 수 없지만 가끔 터진 곳이 있다. 눈치껏 차를 세우고 계곡 너머 로키의 고산들이 줄줄이 서있는 먼 풍경을 보아야 한다.

 모레인 호수는 1969 년부터 1979 년까지 캐나다 20 달러짜리 지폐의 뒷면에 그려져 있었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호수로 인정한 셈이다. 이 호수는 커다란 산사태로 돌무더기들이 쏟아져서 물길을 가로 막아 생긴 전형적인 빙하호수다. 이 돌무더기 산을 뒤로 돌아 올라가면 맨 위에서 호수를 볼 수 있는데 모레인 호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뷰 포인트(View Point)가 되어 있다. 모레인(Moraine)은 빙하에 의해 운반 퇴적되는 물질의 집합체를 총칭하는 말인데 이런 말을 호수 이름으로 한 것은 이 아름다운 호수에 너무 걸맞지 않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에 비하면 옆에 있는 레이크 루이스는 행운이다. 처음에 에메랄드라고 했다지만 루이스가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당시 영국 최고의 여왕 빅토리아의 귀여운 넷째 딸, 루이스 공주의 이름이니 말이다. 유명세를 타는 데는 이름도 큰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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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레이크 루이스와 모레인 호수 중에 어느 호수가 더 아름다우냐고 묻는다. 차라리 어느 호수가 더 맘에 드느냐고 묻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 질문은 오드리 헵번하고 그레이스 켈리 중에 누가 더 미인이냐고 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둘이 모두 각기 나름대로의 특색을 가지고 아름답기 때문에 꼭 집어서 한 쪽의 손을 들어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어서이다. 내가 보기에는 레이크 루이스는 여성적이라면 모레인 호수는 남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모레인은 날카로운 암석이 칼날처럼 들어난 10개의 봉우리(Ten Peaks)가 왼쪽에서 정면까지 둘러싸고 있다. 모두 3천미터가 넘는 고봉인데 이중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는 델타폼 산(Mount Deltaform)으로 3,424m 이다. 한편 레이크 루이스는 정면에서 볼 때 부드러운 산세로 양쪽자리를 지키고 있고 멀리 빅토리아 산의 빅토리아 빙하는 모두 여왕의 이름이다. 빙하에서 흘러내린 젖 물 같은 물이 고여서 여왕의 딸 루이스라는 호수를 낳았으니 여성적이라 할만하다. 또한 오른 편 빅 비하이브 산에 있는 아그네스 호수 역시 초대 캐나다 수상의 부인으로 역시 여성이다. 레이크 루이스에서 보이는 산들은 모두 날카롭지 않다. 멀리 정면에 보이는 산과 빙하도 수평적이다.

 

 모레인 호수를 보기 위해서 돌무더기 산을 뒤쪽에서 올라갔다. 길지 않은 길이지만 가파른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 올라서면 바로 호수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서 탄성이 안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풍경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순간에는 여기가 최고의 절경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탠픽의 우람한 산들이 도열해 있고 그 아래 진한 청록색 호수가 잔잔하다. 레이크 루이스는 호수 바로 옆에서 보았는데 여기서는 언덕 위로 올라왔기 때문에 호수를 내려다보게 되어 더욱 진한 색깔을 느끼게 된다. 이 광경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들이 대강 이런 것들이다.

아름답다 / 멋있다 / 예쁘다 / 곱다 / 장대하다 / 장쾌하다 / 장엄하다 / 웅장하다 / 위대하다 / 웅혼하다 / 최상의 미 / 우아하다 / 요염하다 / 풍만하다 / 화려하다 / 대단하다

 나도 이중에서 한 둘을 골라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모레인 호수를 제대로 표현한 것이 될까? 내가 사용한 언어를 이 호수를 보지 못한 사람이 듣거나 읽어도 호수의 실제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게 뻔하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금강산을 보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금강산은 보고 느끼거나 할 것이요, 결코 형언하거나 본떠낼 수 없는 것이며 금강산 구경은 눈으로 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할 것이다.”

 눈에 본 것을 언어문자로 표현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실상하고는 멀어진다. 언어는 제한적이고 획일적이다. 공연히 자꾸 말하고 싶어져도 참아야 한다. 그래서 “금강산은 말과 글이 멈춘 곳에서 솟아났다.”는 말까지 생겼다. 금강산 대신 레이크 루이스나 모레인 호수를 대입시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이미지이다. 단어를 사용해서 개념을 기억하기 보다는 포괄적인 형상을 이미지화해서 마음에 담게 된다. ‘여기는 최고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기억하는 것이 어떤 표현보다 사실적이고 감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이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 나오는 말이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곳들의 리스트를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고 하는 연유가 이 말에 있다. 결론적으로 모레인 호수는 버킷 리스트에 오를 만하다.

 

<모레인 호수의 탠픽을 바라보며>

 1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여기 오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산은 내게 묻겠지

‘나는 너를 울리지 않았는데

너는 왜 우느냐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기 오면

왠지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산은 내게 말하겠지

‘너는 여기서 나를 보면서

너를 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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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는 말이 없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단어로도

이 광경을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시선을 보냈는데

그것은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 감동으로 전해온다. 

감동은 자연이 내게 주는 메시지이다. 

 

우레 같은 감동이 마음에 들어와 앉는다.

말로 표현되면 호수는 언어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감동이야말로 자연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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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sisters of Shim's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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