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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로키기행수필 18 로키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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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2-20 14:02 조회1,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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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rald Lake Photo by hanhim


로키기행수필2020


18 로키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

                                                                                    심현섭

   사람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조바심을 낸다. 있던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 가려고 하는 충동은 거의 본능적이라 할만하다. 이것은 인류의 초기 역사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선사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 동부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사람이 살지 않는 대륙이 없게 되었다. 시간도 수월치 않게 많이 걸렸다. 지금부터 250만 년 전이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 중에는 거주이동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랜 기간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참기 힘든 고통이 되기 때문에 감옥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로키기행은 움직이는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 동안 자스퍼 국립공원과 밴프 국립공원을 거쳐서 요호 국립공원(Yoho National Park)으로 들어왔다. 요호는 이 지역 원주민 크리족의 말로 경이로움과 경탄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말로 산 위에 올라가면 외치는 ‘야호’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트랜스 캐나다 1번 고속도로에서 약 9km 정도 들어가면 유명한 에메랄드 호수가 나온다. 물빛이 청옥색으로 곱고 주위에 프레지던트 레인지의 산(President Range) 과 버제스 셰일 해양생물의 화석으로 유명한 버제스 산(Mount Burgess 2599m)과 왑타(Wapta Mountain)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호수 주위 경관이 무척 소박하면서 아름답다. 주차장에서 나무다리를 건너 서있는 집은 컨퍼런스 센터인데 이 호수를 친화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읽히게 한다. 가끔 결혼식을 하기도 하는 홀인데 여름에는 레스토랑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홀의 삼면 벽 너머 유리창문을 통해서 호수 풍경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약 30여명 정도 인원으로 간소하고 조용한 웨딩을 올리는 것을 보면 은근히 부러운 마음으로 ‘나도‘ 하면서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계속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면 에메랄드 호수의 랏지가 단독 캐빈으로 줄줄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밥을 해먹고 밤에는 별을 보며 술 한 잔 할 수 있다는 욕심에 가끔은 숙박비를 알아보았다. 대개 일박에 250불선이다. 큰 맘 먹으면 못 잘 것도 없는데 문제는 예약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그윽하다. 물빛은 약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때 더욱 진하게 에메랄드빛을 띠게 된다. 이 호수는 한 눈에 다 보이는 호수가 아니기 때문에 주위를 돌면서 다른 방향에서 볼 때마다 다른 풍광을 만나게 된다. 카누를 빌려주는 곳이 입구에 있는데 몇 년 전 큰 딸과 함께 카누를 타고 호수 한 가운데로 나간 적이 있었다. 물 가운데서 주위 산들을 보며 마치 청옥색 맑은 물 위를 부유하는 꽃잎 같은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겨울에 호수가 얼면 하얀 백설이 깔린 호수 위로 크로스 컨트리 스키를 타는 젊은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호수를 일주할 수 있는 트레일이 5.2km인데 원래는 일주하려는 계획이었는데 오후 시간이 촉박해서 포기하고 30분 정도 호숫가를 산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에메랄드 호수를 처음으로 본 사람은 캐나다인 가이드 톰 윌슨 (Tom Wilson )이었는데, 1882 년 도망 간 말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물론 물빛에 반하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호수의 풍경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레이크 루이스를 처음 발견하고 에메랄드 호수라고 했던 이름이 변경된 이후 이곳에 다시 그 이름을 붙였다. 에메랄드 보석의 빛과 닮은 호수에서 에메랄드라는 이름 이외에는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연전에 어떤 사람이 ‘나 여기에 살고 싶다’고 집이나 땅 좀 살 수 있냐고 했다. 경치 좋은 명승지를 보면 잠시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꾸어보게 된다. 명승지는 잠시 보고 떠나는 곳이지 머무는 곳은 아니다. 나의 아버지가 일행들과 함께 일제시대에 금강산을 찾았다. 산더미 같은 짐을 지고 몇 날 며칠을 타고 걷고 해서 금강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지나가는데 마을사람들이 ‘아니 산 구경 한번 하겠다고 이런 고생을 하면서 오다니..’하면서 혀를 차더라는 것이다. 매일 보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뜻이다. 

   에메랄드 호수 옆에는 몇 년 전 눈사태가 나서 쓸려 내려간 거대한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부드러운 눈도 많이 쌓이면 어마어마한 무게로 힘을 갖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눈사태가 나고 며칠 뒤 왔는데 호수가 온통 쓸려 내려온 나무와 돌과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무는 뿌리 채 뽑혀나갔다. 눈이 그렇게 센 건가 지금도 의아하다.


   우리말에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는 말이 있다. 맑은 바람 밝은 달이라는 뜻인데 얼마나 서정적이고 문학적인가. 에메랄드 호수에도 맑은 바람은 불고, 밤에는 밝은 보름달이 뜰 것이다. 풍경의 외양만이 아닌 이런 정취와 풍류가 흐르는 것이 한국인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겉으로는 같은 산천인 것 같아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똑같은 로키를 두 번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간 간격을 넓히면 천 년 전과 천 년 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보는 로키는 먼 후세에는 다시 보지 못한다. 로키는 완성되고 종결된 작품이 아니다. 세월과 함께 부단히 끊임없이 변해가는 자연이다. 내가 보았다고 말하는 로키는 허사에 불과하다. 로키는 계속 나에게 ’너는 나를 아느냐?‘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로키를 보는 이는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의 나도 있으며 먼 후일에도 여전하리라.

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인듯 하지만

역시 잦아들며 늙어가기는 보는 이들과 마찬가지니

먼 시간 뒤에는 산도, 보았던 이도 

모두 사라지고 찾을 길 없으리라.


   에메랄드 호수를 돌아 나오면 오른쪽으로 ‘자연의 다리‘를 만나게 된다. 사람이 만든 다리가 아니고 자연이 만든 다리라는 의미이다. 댐처럼 흐르는 강물을 가로막고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다. 틈새를 뚫고 강물이 계속 흐르다 보니 점점 구멍이 커지고 다리모양으로 되어갔다. 지금도 원주민들이 건너다니던 자취가 바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강이 킥킹호스 리버(Kicking Horse River)인데 물살이 만만치 않다. 근처에 살던 원주민들에게는 요긴한 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으리라 여겨진다. 바위 구경시켜주겠다고 그 앞에 철제 다리를 놓았다. 오늘도 여전히 강물은 바위 구멍을 넓혀가고 있다. 여기를 떠나면 로키를 떠나는 셈이다. 로키 여행을 끝내면서 레벨스톡까지 험난한 고갯길을 두 개 지나가야 한다. 로저스 패스는 철도공사 시에 길을 못 찾아 헤매다가 간신히 철길을 놓은 험한 곳이다. 눈사태가 많이 나는 곳이라 소위 스노 쉐드(Snow Shed)-눈사태로부터 도로를 보호하기 위해 터널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 자주 나타난다. 겨울에는 가끔 눈사태를 미리 일으키기 위해 대포를 쏘기도 한다. 이럴 때는 도로 양쪽을 차단해서 약 1시간 정도 대기해야 한다.

어둠이 짙어가는 산간도로를 질주해서 밤이 되어 레벨스톡의 코스트 힐크레스트 호텔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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