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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추억의 도시 오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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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의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2-23 19:09 조회1,2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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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783364_IobcH6JQ_d7336889b272ca6caa71d4b38b56d895b0bb3fb3.jpg김의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는 많은 추억이 담긴 도시이다. 1975년 5월 직장 면접을 하기 위해 오타와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곳에 살 때 결혼을 했고 아들을 얻었고 아들과 함께 St. Andrew Presbyterian Church에서 세례를 받았다.


1974년 5월부터 마니토바 주(Province) 전화회사인 MTS (Manitoba Telephone System)에 엔지니어로 취직되어 기획부의 무선통신 과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 당시 캐나다 통신법은 주마다 독립적으로 통신사업을 허가했다. 사업 규모로 보아 월등하게 컸던 Bell Canada는 온타리오 주 와 퀘벡 주에서 사업을 했고, 두 번째로 큰 B.C.Tel (현 Telus)은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에서 사업을 했다. 나머지 주들의 사업 규모는 인구가 많지 않아서 다 합쳐도 Bell Canada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Bell Canada는 미국 최대 전화 회사였던 AT&T 소유였고, B.C.Tel은 미국의 두 번째로 큰 전화회사인 GTE의 소유로 사 기업이었으나, 다른 주의 회사들은 반관반민 회사, 즉 Crown Corporation였다.


1960년 중반부터 새로운 반도체 제조 기술의 출현과 통신기술의 발전은 소위 말하는 “디지털”화 (Digitization)를 촉진했다. 종래의 통신 방법 (소위 말하는 Analog 방법)보다 적은 비용 (Cost)으로 월등하게 우수한 품질 (Quality) 과 보다 높은 신뢰성 (Reliability)을 가진 통신시스템 제작을 가능케 했다. 사실 통신사업에서 Cost, Quality, Reliability는 “삼위일체”라 해서 대단히 중요시하는 요소다.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캐나다의 전화회사들이 1975년에 TCTS (TransCanada Telephone System)라는 합자회사를 오타와에 설립했다. 목적은 새로 진화하는 캐나다의 범국가적인 통신시스템의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전개를 위해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통신연구소 BNR (Bell Northern Research)과 연구 계약을 체결하였다. 필요한 연구 요원들을 각 주 통신회사에서 선출하게 되어 응시했다.


면접을 위해 1975년 5월 낯선 오타와 공항에 내렸다. 차를 세 내서 지정된 다운타운 호텔로 가는 길에는 꽃이 만발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체크인을 하자 마자 내가 가야 할 면접 장소를 지도로 확인했다. 문제는 그 다음 날인 면접 날 아침이었다. 긴장되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주차장에 갔는데 어느 층 어디에 차를 세웠는지 알 길이 없지 않은가? 처음 출장 길이었고, 경험이 없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주차하고 방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층을 돌아보았지만 내 차가 보이지 않았다. 면접 시간은 다가오고 차는 안 보이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마지막 수단으로 주차장 밖으로 나가서 차를 몰고 들어온 길을 기억을 더듬으며 걸어 내려갔다. 드디어 차가 눈에 보였다. 한숨을 돌리고 시계를 보니 면접 30여 분 전이었다. 만일 일찍 서둘지 않았으면 면접 시간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오타와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의무기간 3년을 지냈다.


1996년 여름, CIFST (Canadian Institute of Food Science & Technology)가 8월 19 - 21일 동안 주최하는 심포지엄이 온타리오 주에 있는 겔프대학 (university of Guelf)에서 있었다. UBC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식품학과에서 연구하던 아내가 연구 논문을 발표하게 되어 모두 같이 가기로 계획했다. 아들은 UBC 전기과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하여 한 학기를 마친 때였다. 아내가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동안 우리는 수학과 컴퓨터공학으로 세계적 명성이 있는 워털루대학을 방문했는데 겔프대학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곳에 있었다. 가는 길은 시골길이고 캠퍼스는 UBC 캠퍼스에 비하면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골에 어떻게 이런 명성을 가진 대학을 키웠나 부러웠다.


심포지엄이 끝나고 우리는 추억의 도시 오타와로 향했다. 아들이 태어난 지 8개월 될 때 본사로 복귀하였으므로 아들에겐 오타와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 없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국회 의사당 옆에 위치하여 의사당이 내려 다 보인다. 그 뒤로 오타와강이 보이며 다운타운이 한눈에 들어왔다. 18년 만에 보는 오타와는 거의 변함이 없었고, 밴쿠버에 비하면 너무 단조해서 역시 밴쿠버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는 한국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우리는 아들이 태어나니 아주 난감하였던 기억이 났다. 태어난 병원은 Riverside Road Hospital이었다. 독방을 썼는데 원칙으로는 4일 이내에 퇴원하는데, 내 사정을 이야기하니 1주간 머물도록 허가를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들이 태어나 병원에 있는 동안 우리가 다니던 St. Andrew Presbyterian Church (국회 의사당 맞은편에 있는 역사적인 교회)의 Dr. Curie 목사님께서 방문 오셔서 기도해 주셨다. 그때 아들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는데 Andrew라고 하라며 뜻이 “남자 다운”이라고 하셨다.


한 달이 지난 아들과 같이 세례 받은 St. Andrew Presbyterian Church를 방문했다. 사실 그때까지 확신이 서지 않아 세례를 미뤄왔다. 도착하여 교회 지키는 사람에게 우리 부자가 18년 전에 세례 받은 곳이라고 말하니 반가워했다. 우리는 교회 내로 들어가 감사기도를 드리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국회 의사당을 방문하고자 했는데 시계 탑을 수리 중이어서 내부는 볼 수가 없었다. 이어서 시험 농장 (Experimental Farm)에 들렸다. 이곳은 신혼시절에 계절 따라 자주 다니며 여러 종류의 꽃밭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찍은 곳이다. 아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밴쿠버가 얼마나 좋은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UBC가 다른 대학보다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게 되어 밴쿠버를 떠나지 않겠다는 진정한 Vancouverite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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