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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로키기행수필2020-19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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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01 16:25 조회1,8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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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기행수필2020

19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교회

 

 6일차 마지막 날의 아침은 호텔에서 우아하게 먹어볼까 생각했는데 막내가 처음 오는 레벨스톡에서 벌써 아침 먹을 식당을 예약했다고 한다. 인터넷 시대의 위력이다. 예전 같으면 처음 온 도시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뒤지면 금방이다.

 가정집 하우스를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집인데 우리는 밖에서 조금은 추위를 느끼며 아침을 먹었다. 서양식 아침이래야 크게 다를 게 없는데 이 집은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다. 레벨스톡은 영국의 금융가였는데 횡단철도 공사가 자금난으로 중단되니까 기꺼이 투자를 해서 나머지 구간을 완성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레벨스톡을 나와 일번 고속도로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다리를 만나게 되고 여기를 지나는 강이 콜럼비아 강이다. 로키에서 발원하여 미국의 오레곤 포틀랜드를 지나면서 태평양으로 들어가는 긴 강이다. 이제 레벨스톡을 떠나면서 로키여행은 마무리하고 내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교회‘라고 명명한 조그만 교회를 찾아가려 한다. 두 번째라고 한 것은 기네스북에 첫 번째로 작은 교회가 등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 작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첫 번째로 작은 교회는 캐나다 동부 나이아가라 근방에 있다고 하는데 좌석이 여섯 개라고 한다. 1964년에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위해 기도처로 지었다고 한다. The Living water wayside chapel

 

 두 번째로 작은 교회는 1번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라스트 스파이크(Last Spike) 가기 직전에 오른 쪽 길가에 있다. 근래 도로 확장공사를 했는데도 다행이 이 교회는 있던 자리에 그대로 살아남았다. 좌석이 8석으로 두 사람씩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좌우로 두 개씩 놓여 있다. 입간판에는 이글우드라고 되어 있는데 구글 지도에도 동네가 나오질 않는다. 어림으로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것 같다.

 이 교회에 오면 ‘커다란 교회만 교회인가, 작으면 교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1960년대 초에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 결혼예배를 드리려고 손수 지었다고 한다. 목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 멀리 가야 하니까 동네에 아주 작은 교회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후로는 동네 아이들에게 성경공부도 시키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하며 오늘날까지 유지해 왔다. 

 종탑이 우뚝하게 서있는 L자형의 건물로 외양만으로는 어느 다른 교회에 뒤지지 않는다. 허리를 굽혀 문을 열면 정면에 십자가가 있는 설교대가 있고 양쪽으로 의자가 둘씩 놓여있다. 이 작은 교회에 들어와서 앉으면 왠지 무언가 충만함을 느낀다. 교회 안이 꽉 차있는 느낌이다. 언젠가 어느 부인은 여기 와 앉아서 조용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슴에 벅차오르는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작은 공간이 주는 특별한 감흥이 일어나는 곳이다. 설교대 위에는 방명록이 있어 여기 작은 소감을 적게 되어 있다. 한번은 서있는 나를 보고 마치 목사님 같다고 설교 한마디 하시라고 권하는 바람에 설교 흉내를 내보았다.

 

“커다란 교회만 다니시던 분들이 여기 작은 교회에 오셔서 은혜로운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으니 오늘 여기에도 분명히 와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와계신 예수님은 이 교회 안에 어디 계실까요? 저 귀퉁이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서 계실까요, 막 나가려는 사람처럼 문을 열고 서 계실까요.

 지금부터 여기 와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모두 눈을 감으시고 마음을 깨끗하게 한 곳으로 모으십시오. 이 좁은 교회에 예수님이 오셨다면 분명히 자리에 앉아 계실 것입니다. 눈을 뜨고 옆자리를 보십시오. 옆에 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림 속에서 알고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그 사람이 예수님의 현신인 것입니다. 그 분에게 공경을 표하십시오. 그 분의 모습이 누구이든 그 분 안에는 분명 하느님이 안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축원합니다.“

 

최초로 대륙을 횡단한 여인

Catherine O'Hare Schubert는 1835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9명의 자녀 중에 막내였다. 아일랜드는 1845년에서 1852년까지 감자 흉작으로 인한 대기근이 발생하여 이때 거의 백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신대륙을 찾아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게 된다. 캐네디 대통령의 선조들도 아일랜드 이주자들이었다. 캐서린 역시 1851년 아일랜드에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이주행렬에 끼어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 필드에서 부유한 가정의 가정부가 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 16세였다. 그녀는 여기서 틈나는 대로 꾸준히 책을 읽었다. 

 그 후 목수로 일하던 남편 아우구스투스 슈버트를 만나 결혼하고 캐나다 위니펙으로 이주하여 조그만 농장을 운영하였다. 어느 날 폭풍우로 살던 집과 농장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살아갈 길이 막연하게 되었다. 당시 브리티쉬 컬럼비아 캐리부 지역에서 사금이 발견되어 너도나도 새로운 삶을 위해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사금채취가 어려워지자 많은 사람들이 프레이저 강과 캐리부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캐서린은 당시 어린 아이 셋(5, 3, 1세)을 데리고 있었는데 남편이 떠나고 생계가 막막한 위니펙에 홀로 떨어져 있을 수가 없어서 죽으나 사나 함께 가기로 작정하였다. 그런데 당시 홀몸이 아닌 임신 4개월의 상태였다. 150명의 그룹과 함께 가기로 하였는데 어린아이가 딸린 여자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반대하는 것을 간신히 설득해서 합류하게 되었다. 1792년 영국의 조지 밴쿠버 선장이 캐나다 서부해안을 발견한 이래 육로를 통해서 대륙을 횡단한 사람은 없었다. 육로 횡단은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고 성공확률이 거의 없는 여행이었다. 원주민과의 조우, 야생동물로부터의 위험, 굶주림과 추위, 더구나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오버랜더(Overlanders)라고 하였다.

 유럽에서 건너 올 때도 무직자로 신대륙에 와서도 특별한 일거리를 발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서부 해안 쪽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훗날 골드러쉬(Gold Rush)라고 하였으며 브리티쉬 콜럼비아에 최초로 거주민이 생겨나고 마을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1862년 5월 26일 마침내 태평양 연안을 향해 출발하였다. 대평원을 지나 로키산맥을 넘어 오늘날 자스퍼와 벨마운트 사이에 있는 옐로헤드 패스를 통하여 캠룹스에 이르는 노정이었다. 얼마가 걸리는 길인지, 가는 길은 제대로 있는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끔찍한 모험의 길이었다. 식량은 얼마 못가 금방 동이 났고, 간간히 만나는 원주민들과도 긴장감이 앞섰다. 다른 여행자 그룹에서 보내온 편지에는 너무 배가 고파 개를 잡아먹고 또 얼마 못가 말까지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룹 중 일부는 프레이저 강을 카누를 타고 내려가고, 캐서린이 포함된 그룹은 안전한 노스 탐슨 강을 따라 캠룹스로 왔다. 5개월 동안의 모험을 거쳐 간신히 캠룹스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캐서린은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딸아이를 출산하였는데 이 아이가 비시주에서 태어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캐서린은 남편이 퀘넬(Quesnel)로 사금을 채취하러 떠난 동안 가족을 부양했고, 1881년에 아우구스투스는 사금 채취를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오카나간 밸리에 농장을 사서 정착했다. 남편이 죽은 뒤에 캐서린은 버넌 근방의 작은 마을 암스트롱으로 이사해서 1918년 죽을 때까지 자신의 농장에 학교를 지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정부에 교사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였다.

 그녀를 기념하는 기념관이 암스트롱에 세워졌고, 캠룹스 시청 앞에는 그녀와 남편이 동상으로 세워졌다. 캐서린은 유럽에서 동부를 거쳐 대륙을 횡단하여 캠룹스에 도착한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되었다. 새로운 삶을 향한 그녀의 강한 집념은 수많은 이민자로 구성된 캐나다에 하나의 표상이 되었다. 그녀가 대륙을 횡단하는 모험을 한 것은 횡단철도가 개통되기 23년 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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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룹스 시청 앞에 있는 슈버트 가족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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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스톡에서 아침식사를 했던 하우스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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