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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로키기행수필2020-20 캐나다 역사의 출발점 라스트 스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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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07 16:06 조회1,2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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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기행수필2020 

 

20 캐나다 역사의 출발점 라스트 스파이크(Last Spike)

 

                                                                                 심현섭

 1867년 7월 1일, 영국 하원에서 대영 북아메리카 조약이 통과되자 온타리오, 퀘벡, 뉴브런즈윅, 그리고 노바스코샤 등 4 개의 주로 구성된 캐나다 연방이 성립되었다. 1871년 초대 수상인 맥도날드 수상이 브리티시 컬러비아를 연방에 가입시키기 위해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약속했다. 당시 동부와 서부는 광대한 북미대륙을 사이에 두고 사실상 양분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해로로는 남미를 돌아서 태평양 연안에 도달할 수 있었고 육로로는 거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캐서린 슈버트 가족이 1862년 위니펙에서 캠룹스까지 5개월이 걸려 대평원과 로키산맥을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한 이야기를 적어 보았다.

 미국은 영국의 왓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지 꼬박 100년만인 1869년 미대륙횡단철도를 완성하였고 캐나다는 그로부터 16년 후에 같은 대역사를 이루어냈다. 대륙횡단철도는 미국과 캐나다의 역사를 크게 도약시킨 일대 큰 사건이었다.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지 않았다면 캐나다 연방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캐나다 역사유적으로 지정된 라스트 스파이크(Last Spike)는 레벨스톡과 시카무스 중간 지점 고속도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널찍한 주차장과 공용화장실이 있고 개울을 건너면 기념동판과 열차 한 칸이 유물처럼 서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기념품점도 있다. 철조망 너머 철로길이 동부에서 시작해서 건설해온 철로와 서부에서 건설해온 철로가 마주 만난 지점이다. 대형 그림판이 천연색으로 서있는데 당시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마지막 철못을 박는 모습을 공사인원들이 둘러서서 보는 장면이다. 횡단철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 와서 완성되었는가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은 역사적이고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철도공사는 여기서 끝났지만 캐나다의 역사는 여기서 출발하게 되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는 철도완성을 약속받고 1871년 연방에 가입했으며, 이때부터 1877년까지 곧바로 측량과 설계에 돌입하였다. 당시 캐나다의 총 인구는 5백만 명에 불과했다.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소요되는 대공사를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동부에서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철도공사에는 유럽 각국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이 투입되었고, 서부에서 시작되는 공사에는 주로 중국 광동성에서 모집한 중국인 노동자들이 투입되었다. 1881년부터 1885년에 걸쳐 온갖 장애와 위험을 무릅쓰고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철도를 건설하였다.

 

 라스트 스파이크 안내판에는 감동적인 문구로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막연한 꿈은 현실이 되었다. 철제 리본이 캐나다를 건너며, 바다에서부터 바다로 향했다. 종종 초기 탐험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거의 3000 마일의 강철 철도가 광활한 초원을 가로질러, 높이 치솟은 산길을 통과하며, 계곡을 지나 수천 개의 하천에 다리를 놓아, 1885년 11월 7일 여기에 밋밋한 철제 스파이크가 동부에서 서부까지를 용접하였다.」 

 

 가장 극한의 노동 조건은 수천 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수고 하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산맥이었다 . 노동자들은 낙석 , 산사태 , 눈사태 , 그리고 무엇보다 대포처럼 터널에서 바위를 치는 끊임없는 폭발에 의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다른 집단보다 사망률이 훨씬 높았으며 역사가들은 최소 600 여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하루 1불의 일당을 받고 일했으며 공사가 끝난 뒤에는 약 2000여명이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에 남았다. 귀국선을 탈 여비도 없고 돌아가 보아야 별다른 희망이 없어 이들이 오늘날 중국인 이민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공사기간 중에 사망한 노동자들은 거의 1200여명으로 건설 장비와 폭약, 기술이 지금에 비해 턱없이 낙후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철도가 개통되고 8개월이 지난 1886년 7월 4일 마침내 첫 번째 열차가 몬트리얼을 출발, 150명의 승객을 태우고 포트 무디 역에 도착하였다. 4700키로를 5일 19시간 걸려서 도착한 것이다. 그 뒤 밴쿠버까지 연장하여 철도는 밴쿠버가 대도시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3키로(8마일)마다 정거장을 만들어 새로운 타운이 급속하게 생겨났으며 대평원에 정착민들이 들어차기를 기대하여 이주민들이 속속 철도를 이용하여 정착하게 이르렀으며 초기 철도회사에서는 수입을 창출하기 위해 주로 관광에 치중하여 관광지에 관광호텔을 건설하고 유럽 상류층들을 유인하였다. 로키관광은 대륙횡단철도의 개통과 동시에 시작하였으며 처음에는 주로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였다. 밴프 스프링스 호텔이나 샤또 레이크 루이스 호텔 등 오늘날까지도 최고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박시설을 철도회사에서 건설하였다.

 

 라스트 스파이크를 끝으로 이번 5박6일 로키기행도 끝났다. 캠룹스 - 자스퍼 - 밴프 - 캠룹스로 돌아오는 트라이앵글 코스를 택했는데 초기에는 산불연기와 흐린 날씨로 선명한 산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번에 가지 못한 코스를 헤아려 보니 7군데나 되었다. 다음 기회가 허락되면 못 가본 곳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2차 로키여행을 해보려고 한다.

 산은 마주 서면 눈으로 보게 되고, 돌아서면 가슴으로 보게 된다. 가슴 속에 담아온 산을 두고두고 꺼내보며 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아빠 멋진 여행 함께해서 너무 행복했어요. 로키를 속속들이 알고 계신 아빠와 함께해서 더 잘 즐긴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이 좋은 곳들을 혼자 다니시며 우리와 함께 올 날을 손꼽았을 아빠를 생각하니까 멋진 곳을 보고 있는데도 눈물이 핑 돌았어요. 여행이 끝나니 더 잘 해드릴걸 후회도 남네요. 그래도 너무 행복했고 감사해요~”

막내딸 사랑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내게 보내온 카톡 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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