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문학가 산책] 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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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5-25 10:02 조회84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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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인 수필가 캐나다 한인 문학가협회
따스한 봄볕과 향긋한 꽃바람으로 오감의 쾌감을 두루 선사 받으니 참으로 기분 좋은 날들이다. 파란 하늘에서는 어린 양 떼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숨바꼭질이 한창이었다. 찬 기운을 이겨내고 환한 세상으로 나온 어린 초록 것들은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며 가는 곳마다 희망과 행복을 선물하고 있다. 그 파릇파릇한 것들을 보고 있자면 소녀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그 무엇이 이토록이나 귀하고 고울 수 있으랴. 땅을 뚫고 나온 작은 새싹들은 세상과 마주하려 용감하게 눈을 뜬 채 똑바로 몸을 세우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대견하고 소중하다. 저절로 손이 뻗어 나가 그것들을 쓰다듬는다. 그들로 인해 죄가 용서받는 듯싶었다. 눈을 감았다. 깊은 곳에서 고해성사가 흘러나왔다. 천천히 두 팔을 벌리고 안겨 오는 바람을 안으며 이번에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차례로 용서한다. 그 어린 것들이 죄를 고백하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으로 돌려놓는 힘을 가졌다. 몸에 있는 구멍들을 활짝 열고 흙냄새 섞인 원초적인 내음을 가득 채우니 최초의 에덴으로 돌아가 아담이 된 듯하다. 이제야 옛 선인들의 꽃놀이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듯싶다. 거처 가까운 곳에 있는 아담한 폭포는 시원스러운 물줄기를 아래로 떨어뜨리며 적당히 힘찬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조금 떨어진 잔잔한 호수 위에 배를 띄우고 벗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은 담소를 나누다가 말없이 사색에 잠기다 그 사색에서 마중 나온 것들을 글로 엮고 있었다. 이따금 그들은 차례대로 이쪽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호리병에서 맑고 투명한 것을 하얀 사기잔에 따라 마셨다. 나이 많아 흐드러진 붉은 꽃들은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하얗고 옅은 분홍의 꽃들을 유혹하여 살랑거리는 맞바람과 함께 춤을 추게 하였다. 그들은 공중에서 서로를 껴안고 휘돌며 봄의 향연에 몸을 내맡겼다. 작은 몸을 가진 새들은 높은 음색을 자랑하며 저마다 노래를 하였는데 우거진 나무들에 가려져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 더욱 신비스러운 소리를 자아냈다. 라일락의 짙은 향기가 온 사방으로 퍼져 한껏 취한 꿀벌들을 끌어당기고 꽃 입술과의 되풀이되는 황홀한 입맞춤 속으로 계속 빠져들게 하였다. 그것은 허물을 벗고 처음으로 우아한 날갯짓을 하며 꽃밭으로 첫 나들이를 나온 나비들을 적잖게 당황하게 했다. 기나긴 겨우살이 끝에 일감을 얻은 일개미들은 다른 것에는 그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아니하고 동료들과 줄을 맞춰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해는 어느덧 중천으로 기울고 햇살은 심술 맞게도 허리가 휘어져라 일하는 개미들의 등짝을 파고들었다.
무언가 다른 느낌에 소스라쳐 일어났다. 데크에 펴놓은 매트 위였다. 꽃이 활짝 핀 체리 나무들 사이로 스프링클러가 쏴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었다. 얼마를 잔 걸까. 아름드리 솔가지들이 만들었던 머리 위의 그늘은 없어지고 땡볕이 들고 있었다. 저 멀리 아련하게 눈 쌓인 산 아래 오카나간 호수가 말없이 놓여 있다. 잔잔한 물 위의 배도 친구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일장춘몽의 꽃놀이가 끝났다. 코끝으로 바람이 스쳤다. 일생에 한 번인 바람과의 이별이 오직 서러울 뿐인 사과꽃들이 울컥하며 가슴에서 진한 한숨을 토해냈다. 이윽고 가녀린 몸이 부르르 떨리며 앞다투어 여리디여린 연분홍빛의 꽃 이파리들이 안녕을 고하는 바람을 따라가기라도 하듯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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