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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결혼 40주년/녹옥혼식(錄玉婚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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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6-01 22:10 조회4,1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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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여자에게 있어 우주라는 것은 그리 넓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 넓이만 한 것입니다.

(사이공대 무명 여대생)

 

아내와 나는 사내 결혼을 했다. J 은행 자금부에 근무하던 때인데 어느 날 입행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향 후배인 미스 지란 여자행원이 자금부로 발령을 받았으니 잘 좀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미스 지가 인사를 하러 왔다. 자태가 여성스럽고 웃는 모습이 예뻤다. 아내와의 첫 만남이었다. 미스 지는 내자리에서 대각선으로 십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근무하게 됐는데 가끔 눈이 마주치면 해맑게 웃어 주고는 했다. 


일 년간의 교제 끝에 1981년 6월 1일 종로에 있는 서울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온 후 장안동의 11평짜리 연탄 아파트를 5백만 원에 전세 내어 신접살림을 차렸다. 아침에 번개탄으로 연탄 4개에 불을 피운 후 공기구멍을 막고 둘이 출근했다가 저녁때 퇴근 후 연탄불을 갈았다. 당시 유행하던 새마을 보일러였는데 한 번도 꺼뜨리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결혼 이듬해 1월 대리로 승진을 해 연고도 없는 군산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출산 두어 달을 남긴 만삭의 아내를 홀로 두고 먼저 내려간 후 아내가 나중에 합류했다. 군산 개정병원에서 큰 딸을 낳았다.


군산에서 1년 반을 근무한 후 서울에 사원아파트를 분양받아 다시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다. 결혼 2년여 만에 내 집 마련을 했다. 당시 주부들의 로망이었던 뜨거운 물, 찬물이 24시간 나오는 중앙 난방식 고층 맨션(?) 아파트였다. 이 집에서 둘째를 얻고 자동차를 구입했다. 자가용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세차장 가면 사장님 소릴 들었다.


1994년3월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퇴직금이 두둑했다. 당시 명예퇴직하면 정규 퇴직금의 두배를 지불했다. 안전한 은행주에 전액을 투자했다. 운 좋게 열흘 만에 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 돈으로 차를 바꿀까 여행을 할까 고민하다가 유럽 5개국(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을 여행하기로 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여행객들은 거의 회장님, 사장님 등 부유층이었고 월급쟁이는 우리가 유일했다. 당시 일행 중 70대 노부부가 있었는데 여행 중반이 지나자 시차와 장거리 이동 등으로 몹시 힘들어했다. 이때 여행은 미루지 말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버킹엄 궁전,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바티칸 성당, 코롯세움 경기장 등 엄청난 규모의 유적이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딜 가나 파란 잔디와 예쁜 집들이 즐비한 동화 속 같은 풍경을 접하고 이민 병이 들었다. 이듬해 하와이, 그 다음해에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캐나다를 매년 돌아가며 답사했다. 뉴질랜드와 캐나다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했다.


결혼 후 한국에서 16년 캐나다에서 24년을 살았다. 한국에서는 한 가지 직업만 가졌었지만 캐나다에서는 커피숍, 일식집 비즈니스를 포함하여 십여 가지의 직업을 전전하였다. 그리고 아내는 캐나다에서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갑상선암과 위암 수술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아내는 신심이 깊어 잘 이겨 내었다. 그리고 말했다. “젊을 때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은 웬만큼 다 보아서 혹시 잘못되어도 아쉬움은 없었다.”라고……


올해로 결혼 40주년이 된다. 결혼 25주년은 은혼식, 50주년은 금혼식이라고 부른다. 그럼 40주년은 뭐라고 할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40주년은 녹옥혼식(錄玉婚式/ Emerald Wedding)또는 벽옥혼식(碧玉婚式)이라고 나와 있다. 녹옥은 녹색 구슬 즉 에메랄드를 뜻한다. 에메랄드는 행운과 행복, 그리고 치유의 보석으로 알려져 있다. 클레오 파트라가 가장 아끼던 보석이었다고 하며,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성배가 에메랄드로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일생에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이란 뜻이다. '한번 만난 사람에게 정성을 다한다. 다시 만날 걸 생각하지 말고 항상 마지막 만남이라 생각한다.' 1,300년 된 일본 호시 료칸(여관) 46대 사장 호시 대표의 말이다. 일생에 단 한 번의 만남인 결혼생활에 과연 나는 정성을 다했는가? 결혼 40주년을 맞이하여 조용히 자문해 본다. 40년 동안 어찌 맑은 날만 있었겠는가? 바람 불고 비 올 때 벽이 되어 주고 지붕이 되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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