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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6-16 07:27 조회9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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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디어 레이크(Deer Lake)에서 바라보이는 언덕, 참나무골로 이사 온 지 어느덧 열 다섯해가 지났다.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저녁,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는데 문을 열어보니 우리 교회의 K집사님이다. 이 동네 아는 분 댁에 놀러 왔다가 그 댁에 방문 중인 손님 부부와 함께 산책 나온 길이라는데 나를 전에 병원에서 알던 사람이라며 어떤 남성 한 분이 멀 찌기 서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본저(Bonsor) 시니어 센터의 운동 반에서 본 낯익은 이웃인데 통성명도 하지 않은 때였다. 미국에 사는 그 부부가 이 동네 친구네로 휴가 차 온 것이고,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정리하는 중에 K집사님 귀에 얼핏 내 이름이 들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혹시 동명 이인인가, 호기심에 확인하러 온 것이란다. 병원이라면 당연히 S 병원이 떠올랐고 거기서 나를 찾아볼 만큼 특별히 알고 지낸 사람도 없는데 갑작스러운 만남에 얼른 생각나지 않았지만 서리가 희끗희끗하게 내린 머리칼의 신사에게서 순간적으로 깜짝 놀랄 옛 모습이 보이면서 꺼져 있던 형광등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서운함을 뒤로하고 미련 없이 김포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끝으로 헤어진 지 37년 만이다.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와 삼십을 갓 넘긴 총각 의사 선생님 사이의 스쳐 간 인연이 이렇게 오랜 뒤에 다시 만나게 됐으니! 당황스런 가운데 거실로 안내하고 남편에게 모두를 소개했다. 여러 해 전에 그분으로부터 받은 그림엽서를 통해 남편에게 알려진 바가 있으나 그것을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엽서에는 본인 그간의 일을 깨알 같은 글씨로 빡빡하게 쓰면서 부군과 함께 자기 고장으로 놀러 오라고, 잘 안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에 우편 주소를 나의 대학 동창 회원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가운데 가까이 대하니 옛 모습이 살아나면서 세월의 덧없음을 느꼈다. 잠시 인사를 나눈 뒤에 일어서면서 이웃 친구가 며칠 뒤에 자기 집에 자리를 마련하겠노라 하며 헤어졌다. 계절적으로 이때쯤 이어서 유난히 더웠던 며칠 뒤 오후, 다시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며칠 동안 지나간 날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다시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고민 반, 설렘 반이었다.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직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자리에서 만났던 사람, 우연한 일로 또는 약속으로 만남이 계속되기를 밴쿠버 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였다. 처음 직장을 떠나 서울 모교로 와 있을 때 그분은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월남전선에도 다녀왔다. 선배님처럼 또 직장 친구처럼 생각하고 그 이후로도 안부를 전하다가 일 년여 후에 열 번째 찍힌 도끼에 넘어가 결혼을 마음 먹은 다음에는 상황을 알리고 통신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랬던 분이 여행 중에, 그것도 한 골에 와서 쉬고 있다니 이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는지!


내가 졸업한 S 여고에 다니던 사촌 동생이 어느 날 시민 회관에서 열린 연주회에 갔는데 옆자리에 어떤 신사가 혼자 와 있었단다. 교복에 달린 교표를 보고는 자기도 아는 사람이 그 학교를 졸업했다고 반가워하며 자기가 일하고 있는 병원으로 놀러 오라고 초대를 했다고… 호기심에 차서 친구랑 같이 들러 봤는데 차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 알던 사람이 바로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고 알려주었다. 이런 우연도 있나, 필연을 거스른 인연인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지난날의 이야기를 알게 된 그 날의 친구들은 더욱더 흥미로워 했고, 남편이 답례로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여 네 가정이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옛이야기 많았지만, 개인적인 대화는 나눌 수 없었을지라도, ‘젊었을 때 붙잡지 못한 것이 내 일생에 제일 큰 잘못이었다.’라는 말을 친구 부부에게 서슴없이 남기고 떠났다고…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싶다 하더니 그렇게 깜짝 나타나실 줄이야!

통신이 매우 쉬워진 지금이지만, 남편에게 남겨준 명함도 있기는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처럼 소중한 추억 속에 조용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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