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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 잘 익은 토마토에서는 꿀·아몬드·오렌지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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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7-22 03:00 조회9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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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세계에서 과일,채소 중 가장 많이 생산되는 농산물이다. 사진 pixabay

새콤달콤하고 맛이 진하며 좋은 향이 나는 토마토가 먹고 싶다. 여름은 토마토의 계절이니까.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음식에 넣으면 맛이 더 깊다. 사계절 토마토를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진한 그 맛은 역시 제철에 나는 여름 토마토다. 
 
그런데 ‘좋은 향’ 말고 다른 표현은 없을까. 고백하자면 토마토 향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토마토 맛과 비슷한 냄새가 나지 않았을까? 어렴풋한 풀냄새를 맡았던 것도 같기도 하고. 토마토 글을 써야 하는데, 토마토 향이 기억나지 않아서, 토마토 농장을 2대째 운영하는 ‘그래도팜’의 원승현 대표에게 물어봤다. 맛있게 먹었던 토마토의 기억을 떠올려달라고 말이다.
 
“2007년 이탈리아 남부 여행 도중 맛본 토마토다. 시골 마을의 시장에서 아침 식사 대용으로 구매했다. 토마토 고유의 향이 아주 강했지만 거북하지 않았고, 약간의 꿀 향과 아몬드 향이 섞여 있었다. 또 오렌지 맛 같은 상큼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강한 단맛이 아님에도 달게 느꼈다.” 토마토 농부인 원 대표가 먹어본 것 중에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토마토다. 
 
난데없이 향에 집착하는 이유는, 토마토가 복합적인 향을 가진 과일(식물학상 과일이다)이기 때문이다. 원 대표는 “토마토 맛을 말할 때는, 사실 맛(taste)보다 향미(flavor)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말한다. “토마토 맛은 보통 단맛·짠맛·신맛·쓴맛·감칠맛인데, 이 맛조차 복합적인 향이 없으면 조화가 무너져 단조로운 맛이 난다”는 것이다.
 

토마토는 도드라진 한 가지 맛이 아닌 복합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사진 그래도팜

향이 뭐라고 맛이 무너지는 걸까? 식품공학자 최낙언 대표에게 물어봤다. 최 대표는 “우리는 오미(五味) 외에도 다양한 풍미가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데, 그 다양성이란 결국 향”이라고 말한다. 향이 풍미가 되는 과정은 이렇다. 음식을 먹을 때 입 뒤로 코와 연결된 작은 통로를 통해 냄새 물질이 휘발해 느껴진다. 예를 들면 바나나를 먹을 때 바나나 맛이라고 느끼는 실체는 바나나 향이다.
 
향은 휘발성의 화학물질이다. 모든 식물은 휘발물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토마토의 열매 속에는 최소 400가지의 휘발물질이 있다(휘발물질이 ‘많다=좋다’는 공식은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대 해리 클리 원예과학 교수의 연구팀은 그중에서 20여 가지가 토마토 맛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아냈다. 10년 넘게 토마토 맛의 비밀을 연구해온 해리 클리 교수의 연구 내용은, 진화생물학 박사 밥 홈즈의 책 『맛의 과학』에 자세히 나온다.
 
연구팀은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도와 향, 토마토 맛과 강도 등을 알아보는 시식 테스트를 진행했다. 사람들은 가장 단 토마토를 최고로 꼽았는데, 연구팀의 분석 결과가 의외다. 달다고 평가한 토마토의 실제 당분 함량이 높지 않아서다. '뇌가 ‘단맛’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게라니알(시트랄의 다른 말) 같은 휘발성 냄새 화합물이 풍부하기 때문'이었다.
 
놀라운 결과는 또 있다. 400가지 이상의 토마토 품종 유전자를 서열화하고 토마토 게놈을 샅샅이 뒤지고 분석한 결과, 현대의 토마토에 휘발성 물질과 당분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토마토가 처음 작물화됐다고 추정하는 16세기 이후로 수십 년간 재배돼 오면서 맛보다 생산량을 늘리는 쪽으로 육종됐기 때문이다. 작물화된 채소와 과일의 역사가 대부분 그렇듯이, 크기가 크고 색이 선명하며 해충과 질병에 강하고 이동에도 강한 단단한 토마토로 바뀐 것이다.

토마토는 16세기 이후 수십 년간 재배되어 오면서 변화되어 왔다. 사진 그래도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지금껏 먹은 토마토는 뭐란 말인가!’라며 회의감에 젖을 필요는 딱히 없다. 육종의 역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색이 빨갛고 단단한 토마토 역시 사람들이 원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더 다양한 풍미를 원한다면, 토마토의 육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해리 클리 같은 원예과학자들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향이 잘 살아 있는 토마토의 품종을 개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토마토 향에 너무 심취해서 빠트릴 뻔한 이야기가 있다. 원 대표가 가장 인상적으로 먹었다는 첫 번째 토마토다. 1983년부터 유기농업을 해오던 그의 아버지가 키운 토마토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살아 있는 땅에서 키운 토마토”다. 미생물 활성도가 높아 유기물을 잘 분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의 땅이다. 원래 토마토를 먹지 않던 그이지만, 아버지가 키운 토마토를 먹어본 후 생각이 바뀌었고 가업을 잇기로 했다.
 
원 대표는 “그래서 비교군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먹어본 경험을 최고로 치기 때문이다. 진짜 맛있는 토마토가 있다고 말해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믿지 않는다. 처음 맛본 토마토가 영 별로였다면, 시도조차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저 다양하게 먹어보고 비교하는 수밖에 없다.
 
진화생물학 박사 밥 홈즈의 잔소리(?)는 이보다 더 구체적이다. 『맛의 과학』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음식을 먹을 때 “책을 읽거나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우적우적 먹지 말고, 맛 경험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단맛이 얼마나 났는지, 얼마나 시큼한지, 향이나 맛이 풍부했는지 표현하고 점수를 매기라고까지 한다. 맛의 세계를 즐기고 싶다면, 민감한 식감과 맛을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뜻이다.
 
어쩐지 몹시 찔린다. 토마토 향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쉽게 말하기 전에, 노력부터 하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사실 쉽게 구한 건 쉽게 먹는다. 내가 정성껏 키운 채소는 뭐가 됐든 맛있듯이, 절실한 행위가 맛을 더 증폭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야말로 맛있는 토마토를 위한, 토마토의 다양성을 위한, 정성으로 키우는 농부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도 오늘 먹은 토마토의 맛을 충분히 음미하고, 맛과 향 표현에 도전해보길 바란다.
알고 보면 더 맛있는 토마토
  
1. 토마토는 100% 다 익은 게 좋은 상품이다. 그리고 잘 익은 토마토는 물렁하다. 또한, 나뭇가지에 걸린 채로 완숙한 토마토는 익기 전에 따서 후숙한 토마토보다 향이 훨씬 강하다. 최대 20배까지 차이가 난다. 
국내에서는 토마토를 주로 생식으로 먹기 때문에 미리 수확해서 후숙하는데, 이 때문인지 물성이 단단한 토마토를 신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물렁물렁해서 터질 것 같은 토마토야말로 맛의 진하기가 차원이 다른 ‘끝판왕’이다.
 
2. 사실 토마토는 단맛을 담당하는 식재료는 아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단맛이 강한 토마토를 주로 찾다 보니 육종의 방향이 그렇게 잡혔지만, 원래 토마토는 단맛에 버금가는 신맛과 고유의 향 그리고 감칠맛이 주 포인트인 작물이다.  
특히 토마토는 감칠맛 나는 글루탐산과 방향성 황 화합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고기 맛을 보충하거나, 깊고 복합적인 맛을 내는 요리에 많이 쓰인다. 또한, 좋은 토마토에는 발사믹 소스를 쓰지 않는 게 좋다. 토마토 고유의 향을 다 억누르기 때문이다.
 
3. 토마토는 기본적으로 가로 썰기를 한다. 가로로 썰면 토마토의 과피, 씨가 든 젤리 부분, 그리고 씨방 부분이 혀의 넓은 면적에 앉혀지듯이 들어간다. 그만큼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맛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토마토를 썰 때는 물결무늬의 칼로 써는 게 좋다. 실제로 해외에 나가서 토마토를 썰 때 쓸 칼을 찾으면, 물결무늬의 칼을 내준다. 물렁한 질감에 겉이 미끈한 토마토의 특성상, 일반 과도로 자르면 눌리기만 할 뿐 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4. 토마토는 더운 기후의 작물이다. 즉 실온보관이 기본이다. 꼭지를 떼고 물로 헹군 뒤에 습기를 닦아서 보관하면 된다. 냉장 보관은 권하지 않는다. 휘발물질 함량이 떨어지고 고유의 향과 단맛이 덜해지기 때문이다. 
토마토는 휘발물질을 계속해서 방출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부족분을 보충하는데, 냉장 보관하면 휘발물질을 만드는 효소가 떨어져 나간다. 또, 리코펜 함량도 줄어든다. 리코펜은 활성산소를 배출해주고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독성물질을 배출해주기도 한다. 
 
▶도움말 = 그래도팜 원승현 대표, 식품공학자 최낙언 대표.
▶참고서적 =『맛의 과학』『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음식과 요리』『제3의 식탁』
 
이세라 쿠킹객원기자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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