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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서쪽으로난 창] 들깨꽃 (마흔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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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9-14 12:35 조회1,3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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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향



장민호는 내 아들이다. 가출한 내 막내 아들이 틀림없다” 하시는 타라 할머니 방에 어린민호가 웃고 있었다. 누렇게 바랜 흑백 사진 속에서 한아름 생일선물을 안고서.... 나는 ‘세상에나' 를 연발하며 “어쩐지 한국 남자에게서 버터냄새가 진동 하더라니" 했다. 할머니께서 “그렇지? “하시며 또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삭발을 해 푸르스름한 머리에 밝은 갈색 눈동자가 나를 지나 내 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조그마한 체구, 희고 작은 얼굴에 하얀 곱슬머리를 짧게 자른 들깨꽃 같은 할머니 타라는 독일계 캐네디언이시다. 한국에는 가 본적도 없지만 한국인 손자 며느리를 보신 이후로 한국문화와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문화 예찬론자가 되신 분이다.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손주며느리와 인사말 정도는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한국어 공부에도 재미를 붙이셨다. 그러던 차에 내가 입사를 하자 연습할 상대가 생기신 할머니는 쉽지 않은 발음을 몇 번이나 묻고 되풀이하는 열정을 보이셨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할머니께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도 한국어였다. “안뇬 난자" 하시는데 한국말을 하실 거란 상상도 못하고 있던 나는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몰라 나도 따라 ‘ 안뇬 난자 닌자?” 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안녕 낭자"라 하셨는데 둔한 내 귀가 감지를 못했던 것이다. 어디서 그런 예쁜 단어를 배우셨나 물으니 드라마에서 배우신 거라 하셨다. 손주며느리 덕에 보기 시작한 한국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 푹 빠져 사신다. 주몽, 대장금, 해를 품은 달, 선덕여왕, 등 나도 보지 못한 사극까지 꿰고 계셨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사극도 노래경연프로 “내일은 미스터 트롯"에서 장민호를 보시고는 드라마와의 인연을 끊고 트롯 광 팬이 되셨다.

 

하나같이 예쁘고 사랑스럽다며 아미를 자처하시던 BTS도 그 예쁜 낱말 “낭자"를 가르쳐준 사극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어찌나 “민호 민호, 내 아들 민호” 하시는지 실컷 보시라고 아들이라 하시는 장민호 사진을 몇 장 가져다 드렸다. 당신 아들 헨리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나이 들었을 거라시며 프린트로 뽑은 사진을 아들 보듯 하셨다. 사진을 꺼내 들고 장민호가 부르는 “상사화”까지 웅얼웅얼 따라 부르신다. 잠시 스쳐 지나갈 팬 심이려니 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들 헨리의 사진을 보던 날부터 알았다. 그날 이후, 빌딩내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모자상봉이라도 시켜야 할 것 같은 부채감이 빚문서처럼 따라다녔다. 빚을 갚는 마음으로 할머니의 사연을 꼼꼼히 적었다.  키스대신 꼭 가 닿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봉하고 할머니께서 챙겨 보시는 “사랑의 콜센타"로 편지를 보냈다. 사연을 보내고 혹시나 하고 답장을 기다렸지만 회신은 없었다.

 

10월이면 48세가 되는 아들 헨리는 27세에 여행을 간다며 집을 떠났다.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 박사 과정 중이던 어느 날, 갑자기 학업을 중단하고 떠난 것이다. “좀 오래 걸릴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여행은 알고 보니 출가(出家)였다.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 이라는 몇 줄의 편지와 함께 삭발을 한 아들의 사진이 도착했다. 언젠가는 인도를 걷고 있다 했고 또 언젠가는 중국의 고비 사막을 지난다는 짤막한 엽서가 왔다. 


그러던 어느 가을, 기별도 없이 아들이 돌아왔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들을 위해 세상의 모든 어미가 하듯 정성을 다해 더운 밥을 지었다. 육식을 즐겨 하던 아들이라 큼지막한 스테이크에 어릴 적 실컷 먹이지 못한 닭 날개를 튀겼다. 잘 먹지 않던 야채들도 구운 감자와 함께 차려 놓았다. 불자가 된 아들은 스테이크와 닭 날개는 눈으로 먹고 야채와 구운 감자를 껍질까지 깨끗하게 먹었다. 그것이 마지막 밥상이었다. 어머니 손을 놓고 돌아설 자신이 없었는지 힘겨울 어머니를 생각했는지 아니면 그 둘 다였는지 아들은 다음날 새벽 안개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침상 위에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 낸다 (Everything depends on the mind)"는 숙제를 남겨 두고서.

 

백 번 동의하지만 너무 유명해서 진부하다고 느끼는 문구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는 불교경전 중 하나인 화엄경의 핵심 사상이다. 슬픔도 기쁨도 내 마음에 달린 것이고 세상만사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 시는 할머니는 숙제를 끝냈다.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 이라는 화엄경의 핵심을 알았다고 해서 마음 먹은 대로 살아지는 것도 핏줄로 이어진 인연을 단번에 자를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고 인연이다. 숙제를 끝내셨지만 끝내지 못한 아들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노래 속에 감춰 두신 할머니께 여쭈었다. 무엇을 노래하는지 아시냐고.  “그립단 말 아니겠어? 피는 꽃 속에 지는 꽃 속에 지가 있단 말 아니겠어, 눈을 보면 몰라?” 하시는 할머니 눈에 그렁그렁 아들이 고였다가 주르르 흘러 내렸다. 할머니는 다 듣고 있었다. 혹여 부르면 아플까 부르지도 못한 아들의 이름 “헨리”, 마음껏 부를 수도 없는 이름을 피는 동백꽃 속에 지는 모란꽃 속에 묻고 살았다.

 

어떤 이는 피 끓는 모정을 피고 지는 꽃잎 속에 묻고 어떤 이는 아들의 발자국 위에 뿌렸다. 어머니나 아들이나 서로에게 갚을 빚이 없다고 애써 부정하던 이청준의 소설 “눈길" 에서 아들의 발자국 위에 뿌리던 노모의 소리 없는 통곡이 다시금 들려온다. 아들을 태우고 휭하니 떠나버린 버스를 바라보다가 아들과 함께 걸어온 아직도 어두운 길을 홀로 되돌아오던 어머니의 허망하고 처참한 마음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하시던 노모의 기도소리와 함께.

 

할머니 타라는 대학생이던 20세에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니던 22세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혼인신고만 하고 시작한 결혼생활은 처음엔 경제적인 문제로 나중엔 잠자리문제로 잦은 말다툼을 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한 부부싸움으로 발전한 말다툼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열차 같았다. 아이들 앞에 가재도구를 던지며 폭언과 폭력을 주고 받았다. 방치된 브레이크는 막내아들의 열살 생일에 완전히 터져 버리고 말았다. 아들의 생일날 남편은 사랑에 빠졌다며 열 여섯 살 아래 제자와 가출했다.

 

남편이 떠나면서 아버지의 자리까지 채워야 하는 삶은 쉽지 않았지만 집안엔 평화가 찾아왔다. 그것도 잠시, 남편의 가출로 정리된 줄 알았던 그들의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 남편은 ‘실수였다’ 며 용서를 구했고 잊을 만 하면 찾아와 온 집안을 휘저어 놓고 떠나기를 반복 했다. 그런 부모를 이해하기엔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책임감 없고 감정적인 남편을 받아줄 수 없었던 엄마를 원망했고 자식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했다. 위의 두 아들은 자라면서 아픈 소리를 쏟아내기도 했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아버지를 용서했다. 지금도 가까이 살며 자주 찾아와 말벗이 되고 살뜰히 챙긴다. 유달리 마음이 여리고 어렸던 막내 아들만은 학교생활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치 않았다. 말수가 적었고 아무 곳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외톨이로 책 속에 숨어 살았다. 자식들에게 아버지도, 경제적인 안정도 주지 못한 죄책감에 할머니는 떠나는 아들을 붙잡지도 돌아오라 소리쳐 부르지도 못했다.

 

‘부르다 내가 죽을’ 아들의 이름을 가슴에 묻은 할머니는 당신도 꽃인데 꽃인 줄도 모르고 산 세월을 노래 속에 쏟아 내신다. 너무 작아서 겨우 보이는 들깨꽃 같은 할머니가 웅얼웅얼 노래를 부르시면 나는 할머니 속에 흐르는 눈물을 가만가만 듣는다. “모란이 피면 모란으로/ 동백이 피면 넌 다시 동백으로/ 나에게 찾아와 꿈을 주고/ 너는 또 어디로 가버리나/ 인연이란 끈을 놓고 보내긴 싫었다/ 향기마저 떠나 보내고/ 바람에 날리는 저 꽃잎 속에/ 내 사랑도 진다/ 아 모란이 아 동백이/ 계절을 바꾸어 다시 피면/ 아 세월이 휭 또 가도/ 내 안에 그대는 영원하리.”

 

할머니는 산비둘기만 푸르르 날아 올라도 아들의 넋 인줄 뒤 돌아보던 “눈길"의 어머니처럼 한 마리 나비만 날아 들어도 행여 아들인가 창 밖을 내다 보신다. 인연이란 끈을 놓고 아들은 떠나 갔지만 어머니는 단 한 순간도 보내거나 잊은 적이 없다. 해도 뜨지 않은 눈길을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 아들은 노인에게 “갚아야 할 빚이 없다”고 외면 했건만 어머니는 아들의 발자국 위에 눈물을 뿌리며 “너라도 좋운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기도 하셨다. 

 

나의 여름이 진다. 까맣게 타 들어간 모정을 꽃잎아래 숨긴 할머니 타라의 여든 네 번째 여름도 진다. 언제라도 서리가 내리면 단번에 지고 마는 들깨꽃 같아도, 세상의 어머니는 자식의 발자국 위에 기도를 바치고, 어머니의 가슴을 밟고, 어머니의 등을 딛고 일어 선 자식들은 들깨꽃 보다 옹색한 변명을 자신의 가슴에 바치게 되리라. “어머니! 그때는 몰랐습니다. 내가 밟고 선 자리가 어머니 가슴인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라고 동백꽃보다 붉은 눈물을 바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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