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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시 감상) “신림동 바닥에서” -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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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11-17 08:00 조회9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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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내 失業의 대낮에 시장 바닥을 어슬렁거리면,

그러나 아직, 나는 아직, 바닥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구나.

까마득하게 멀었구나.

나는 탄식한다.

아, 솔직히 말하겠다. 까마득하게 멀리 보인다.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 것이 보인다. 내 발 바로 아래에 놓인,

비닐 보자기 위에 널퍼덕하게 깔아 놓은,

저 멸치, 미역, 파래, 청강, 김가루, 노가리 등이여.

그리고 또 그 옆의, 마찬가지로 널퍼덕하게 깔아 놓고 앉아서,

스테인레스 칼로 홍합을 까고 있는,

혹은 바지락 하나하나를 까고 있는,

혹은 감자 껍질을 벗겨 물 속에 넣고 있는,

바로 내 발 아래에 있는, 짓뭉개져 있는,

저 머나먼, 추운 바닥이여,

나의 어머님이시여.

 

 

 7080세대에 이입된 감상-한국의 땅끝마을에서 태어나 서울 최고 대학을 나오기까지,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가 되기까지, 시인은 어머니의 진자리 마른자리를 잊을 수 없다. 남자들은 결혼하고도 내내 어머니를 향한 가슴앓이가 끝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아내들이 속앓이하는 줄도 모른다. 그 시대의 남자들은 어머니의 희생은 가슴으로 느끼고 아내의 희생은 머리로 느낀다. 그의 시 ‘아내의 수공업’을 읽으면 어머니가 아닌 아내의 눈치를 보는 구절이 있다. 그들의 어머니들은 배움도 재산도 없이 농사나 어촌에서 거둬들인 품삯으로 자식을 뒷바라지했기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

 

내 失業의 대낮에 시장 바닥을 어슬렁거리면,

그러나 아직, 나는 아직, 바닥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구나.

까마득하게 멀었구나.

나는 탄식한다.

아, 솔직히 말하겠다. 까마득하게 멀리 보인다.

 

 화자는 대낮에 시장 바닥에서 농수산물을 다듬어 파는 아주머니들을 보고 자리를 잡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어머니의 바닥보다 더 내려가야 해결될 것 같아 탄식하고 있다. 교수가 되는 길이 멀다는 것을 직감하는 구절이다.

 

 알고 보면 모성은 모자지간이 더 애틋하다. 남자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야 끝난다. 전쟁 전, 후에 태어난 세대는 대부분 고생한 세대다. 객지 생활을 한 시인은 신림동 바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과 그리운 어머니를 동일화시켰다. 어서 자리 잡아 어머니를 모시고 싶은 심상이 숨어 있다.

 

Z세대에 이입된 감상-시의 분위기에서 알 수 있듯이 고향 부모님이나 이민 1세대 부모님의 희생은 자식들의 삶에 초석이 되었다. 고생 끝에 정착하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덕에 연착륙하는 자식도 있다. 희한하게도 희생을 많이 한 부모일수록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두 명만 낳아 귀하게 키워서 그렇다고 한다. 예전엔 ‘귀한 자식 매로 키워라’는 속담이 꽤 신빙성이 있었다. 그러나 Z세대는 다르다. 어머니의 넘치는 관심과 사랑도 부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다. 그리움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던 조부모님의 시대와는 다르다. Z세대는 어머니가 그리우면 화상채팅을 하거나, 그래도 보고 싶으면 터미널로 달려간다. 마음에 담아두어 애태우기보다 행동으로 보이는 세대다.

 

 부모님이 허리 꼬부라지도록 몸으로 때우던 시절이 있었다면 자식과 법정 싸움을 하는 각박한 세상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은 인지상정보다 더 깊다. 이 시는 내게 아날로그 정서로 와 닿는다. 그러나 Z세대 혹은 미래의 세대는 어떤 정서로 시를 읽을까. 베이비 붐 세대인 나와 Z 세대를 생각하며 감상을 써 보았다.

 

*7080세대:1970년대와 1980년대에 20대를 보낸 공통의 의식을 가진 세대.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 초반 출생한 인터넷과 정보기기를 접한 디지털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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