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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 [오징어 게임의 배우 양미선 이야기] 2.상경 –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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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미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1-25 18:51 조회8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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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출연으로 밴쿠버 중앙일보와 인터뷰로 인연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연기 이야기 중심으로 연재 기회가 주어져 좋은 인연으로 생각되었다. 혹시 연극영화과 진학이나 연기 관련 분야에 관심있는 독자들과 소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이어 갈 생각이다

 

758783364_wHfBb3Ak_66d00dceee0b325d44d38aa079439288a9533de0.jpeg무한한 가능성을 느끼게 해주었던 대학생활을 그렇게 마무리 한 나는 본격적인 연기활동을 위해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안착했다.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꿈의 공간 대학로. 혜화동에서 사는 동안 정말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경험을 쌓았던 것 같다. 작품이 들어가면 보통 나는 3시간씩 주어지는 수면시간에 익숙해져야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은 연습시간에 문제가 없도록 아르바이트 시간을 선택해야 했기에 주로 새벽아르바이트를 해야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그러다보니 새벽에 오는 술손님들이 참 많았는데 술을 못하는 나로서는 화장실에 구토해 놓은 흔적들을 치우는 것이 제일 고역이었다.

 

그러나 손님 중엔 영화감독, 연극연출자, 배우들도 참 많았는데 그들의 평소모습을 접해볼 수 있어 재밌게 일했 던 곳이기도 했다. 서빙으로 시작해서 화장실청소로 마감했던 새벽 아르바이트가 모두 끝나고 나면 3시간 자고 일어나 연극연습을 하러 간다. 공연이 시작되면 공연을 끝내고 씻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었는데, 그 때 나의 첫 안식처가 되어준 곳이 고시원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고시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총 4년정도 고시원에 살았었는데, 지금 떠올려보면 그곳에서 지냈던 시간들은 참 아픈구석이기도 하면서 재밌기도 했고, 쓸쓸한 분위기가 늘 드리워져 있는 느낌이었지만 아늑했고, 또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많이 허전했던것 같다. 

 

1평반 남짓한 공간이라 생각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처음에 머물렀던 곳은 딱 1평이었던것 같다. 종로구민회관쪽에 있던 아주 저렴한 고시원이었는데 발품팔아 대학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그 곳 만큼 저렴한 곳은 없었다. 그래서 그 때 참 기분 좋게 들어갔었던 기억이 난다. 저렴한 비용만큼 건물과 내부시설 모두 낡고 허름했지만 그 땐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정도 불편함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당시의 나처럼 목돈 마련이 어려웠던 사회초년생들에게 고시원은 그저 고맙고 감사한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학시절 고시원의 존재를 미리 알았더라면 왕복 4시간이나 소비되었던 교통시간을 더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움이 남을정도였다. 오히려 대중교통으로 지출되던 비용이 훨씬 더 비쌌으니 말이다. 어리숙했던 나는 고시원의 존재도 몰랐지만, 알고 난 뒤에도 고시원은 그저 시험준비하는 고시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줄 알았다. 하하하하하!!!!!

 

보증금없이 월세 12만원. 그 당시 내 방의 크기를 가늠해보자면 키167/몸무게47인 내 기준으로, 성인이 바로누우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유공간 없이 근접하게 맞아떨어지는 길이에, 옆으로는 폭은 좁지만 작은 책꽂이가 딸린 키높은 책상 하나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 책상 위에는 미니어쳐를 연상케하는 작고 오래된 화질 답답한 TV가 하나 놓여있었는데, 그 땐 그것이 왜 그렇게 고맙던지......그리고 발이 닿는 쪽 벽면으로 아주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12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창문 있는 방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었다. 그 작은 창문으로 쏟아지 듯 들어오던 햇빛과 여유롭게 솔솔 불어오던 작은 바람의 향기는 늘 나에게 큰 위안과 행복을 주었다. 새장안에 갇힌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수도 있을 그 공간을 늘 살아 숨쉬게 만들어 주었고, 순환되는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이정도면 그래도 나름 서울에서 집 잘 얻었다! 행복하다! 그렇게 만족하며 지낼 수 있었다. 

 

물론 고시원에도 빈부격차는 존재했다. 첫번째, 제일 저렴한 금액을 자랑하는 특급 고시원! 그런 곳은 연령, 성별 상관이 없다. 자는 방의 위치도 남녀 구분 없이 다 섞여 있고, 위생상으로 민감할 수 밖에 없는 화장실, 욕실, 세탁기등을 모두 공동으로 사용해야한다. 주방도 마찬가지이며 냉장고 역시 공동사용이라 반찬을 넣어두면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씨씨티비따위는 없다. 현관비밀번호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누가 들고나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도 그나마 기분좋을 수 있는 건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밥솥에 밥은 늘 준비되어 있다. 

두번째, 어느정도 안전이 보장되는 것 같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중간급 고시원! 이곳의 장점은 남녀를 구분해서 층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1, 2층을 여성들이 사용한다면 3, 4층은 남성들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마찬가지로 화장실, 욕실, 세탁기를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남녀 구분되어 사용되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시스템이다. 게다가 방에는 1인용 개인침대도 구비되어 있다. 물론 언제 구입했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삐걱거리는 스프링이 내장되어 있는 매트리스지만 말이다. 하하하하하!!!

 

세번째, 중간급 고시원보다 조금 더 업그레이드 된 버전으로 여성전용 고시원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곳의 장점은 <여성 외, 출입금지>구역으로 관리되고 있고, 현관에서부터 사용자들의 안전을 위해 번호키 시스템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당시 나의 기억에 휴게실에는 여러대의 공용 pc도 구비되어 있었다. 네번째, 제일 부러움을 샀던 고시원으로 넓은 평수에 큰 방, 개인 욕실과 화장실이 갖추어져있는 원룸형태의 고시원이 있다. 그런 곳은 오피스텔 분위기와 유사해서 고시원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사치스런 느낌(?) 하하하하하!!! 물론 지금은 훨씬 더 혁신적인 형태의 고시원이 많겠지만 그 당시 이정도면 정말 훌륭한 고시원이었다. 

 

758783364_toIe4BZA_8ac4f5846abf5e309fc9a6723b8f79d5ee2c7c5b.jpeg처음엔 참 생소했기에 궁금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고시원에 사는걸까? 그 내부로 들어가면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합소가 고시원이다. 평소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서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나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 얼마 전 KBS<시사기획 창>에서 다루었던 쪽방촌 계급사회라는 타이틀의 방송을 본적이 있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봤고 참 아득한 느낌이었는데 고시원에서 살 던 때가 떠올라 뭔가 더 안타까웠다. 사실 고시원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좀 더 깔끔하고, 절대정숙해야 한다는 것, 연령층이 좀 더 낮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많이 닮아있는 느낌이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쪽방촌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그들처럼 고시원을 선택하는 사람들 또한 나름의 사연이 참 많다고 보여진다.

 

과거 충동적인 추진력으로(하하하하하) 단막극과 드라마 대본 공모전에 응시했다가 낙방한적이 두어번 있었는데, 그럼에도 연극대본이나 독립영화 정도의 시나리오를 써볼 수 있겠다는 의지는 아직 남아있다. (하하하하하) 문득문득 떠오르는 소재거리가 많은데, 그중에서 고시원은 늘 마음 한켠에 중심소재 중, 하나로서 자리하고 있는것 같다. 물론 이미 그것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매체들은 많이 있겠지만 말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에 그 의지를 불태울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얄팍한 판자 칸막이를 겨우 덧대어 만든 듯 한 고시원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기란 쉽지 않다. 방 안에서 가만히 있어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금방 알 수 있다. 뿡뿡!! 빵빵!! 소리에 놀라 잠을 깬적이 많았는데(하하하하하) 아~ 오늘은 옆 방 사람이 속이 많이 불편한가보다, 방귀소리가 잦네? 새어들어오는 그 냄새는 또 어찌할 것인가...앞 방의 아무개 코고는 소리는 알람시계보다 더 우렁차지! 저 사람은 왜 울고 있을까? 그 사람이 오늘은 안 들어오네? 맨날 소리가 났었는데 왜 며칠동안 아무소리가 없지? 어디가 아픈가...? 기타 등등....그들의 생리적인 현상부터 매일매일의 일상과 사연들을 보고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고 신경쓰고 싶지 않아도, 다 보이고 다 들리고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직장을 잃은 실직자, 찾는 이 없는 거동 불편한 할아버지, 가족이 싫어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온 사람,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생활에 한창 적응 중인 직장인, 꿈 많은 대학생, 많은 가난한 예술인들...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고시원은 있는 그대로 다큐멘터리였고,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지니고 있다. 

 

작년인가? 뉴스에서 25만원가량의 고시원비를 충당하지 못했던 한 연극인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소주 병 하나 남겨 놓고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같은 배우로서, 참 마음이 아팠다. 고시원에서 혼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는 듯 하다. 누군가에겐 그곳에서의 생활이 힘들었어도 따뜻했던 곳으로 기억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그저 고통스럽기만 한 현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 약해지지 말라고, 용기내라고 꼭 말해주고 싶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어찌 감히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그저 앞으로 고시원을 거쳐 갈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부디 잘 견뎌내어 보다 나은 곳으로 가겠다는 희망의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큰 오빠가 산삼을 캤다면서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서 서울로 올라오신적이 있다. 성인 둘이서 서 있으면 더 비좁아 보이던 내 작은 고시원 방에서 아버지는 품안에 고이고이 들고 온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보이셨는데, 막둥이 몫이라며 큰 오빠가 챙겨놨단다. 가만히 보니 꿀속에 버무려 있는 것이 꼭 인삼같았다. 산삼을 처음 접해 본 나는 본디 입에 쓴 것을 싫어해 먹지 않겠다 고집부렸으나, 아버지께서 그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식구들 다 먹었다고, 귀한거니까 얼른 먹으라고 자꾸 재촉 하셔서 울며 겨자먹기로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느낀바로는 '아이구야 먹기를 참 잘했구나!! 산삼의 효능이 이렇게 뛰어난 것이었구나!!' 경이로웠다. 하하하하하!!! 산삼의 효능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특별한 증거는 없지만 산삼을 먹은 이후부터 수족냉증이 심했던 내 손과 발이 많이 따뜻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내 손은 늘 따뜻하다. 나는 아직도 그 이유가 당연히 산삼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하하!!!

 

잠시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막둥이 막내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여 겸사겸사 올라오셨던 것인데 내 작은 고시원 방을 보고서 여간 놀라신 눈치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표정에서 드러날까 애써 참아내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난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한다. 이런데서 어찌살까, 근심이 가득하셨던 아버지의 그 표정을. 그것도 참 마음이 아팠는데,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아버지를 그 비좁은 한 평짜리 공간에서 주무시게끔 해야 했던 나는 너무 죄송스러워 가슴이 미어졌다. 이것저것 양 손 무겁게 들고 선 힘들게 올라오신 아버지를 나는 하룻밤도 편하게 주무시게끔 해 드리지 못했다. 그 때 그 순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고시원에 사는 것을 유일하게 후회했다. 새벽 아르바이트를 가야했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면서 “아빠 잘자!! 내일 만나!!” 인사를 건네며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던지, 도착할 때까지 울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 역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셨다고......그때의 기억때문인지 누군가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항상 마음이 짠하다. 나의 서울살이는 그렇게 고시원에서 시작되었다. 


배우 양미선 (인스타그램 @yangmiseon_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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