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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어떤 봄 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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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4-06 07:10 조회6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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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세/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온종일 느낌이 찜찜해서 먼데서 태어난 첫 손녀가 아직도 병원을 오가고 있다는데 심한 것은 아닌가, 뭔가 다른 곳에 궂은 일이라도 생기려나 노심초사 이 궁리 저 궁리를 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돌아 가신 어른들 생일과 제사를 찾아보니 보름쯤 뒤일 것으로 예상한 어머님 생신인 삼월 삼짇날이 코 앞의 이번 주 일요일이란다. 꽃샘 추위가 오락가락 하는 것으로 보아 곧 봄이 들이 닥칠듯 하다.

 
 강남제비가 돌아오고, 진정으로 봄다운 봄이 시작된다고 하여 옛날에는 화전놀이를 하는 명절이기도 했단다. 종가집 맏며느님이신 어머님의 생일이 이날이라 자연스레 십리 안팎에 크게 집성촌을 이루고 산 친척들과 외가집 어른들이 와서 온종일 생일잔치를 벌려 우리 마을은 따로 화전 놀이를 하지는 않았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포도밭의 가지치기와 껍질 벗겨 주기를 시작으로, 논밭 갈이를 마친 동네 남정네들도 모두 사랑방에 자리를 잡고 생일 음식에 화전, 쑥떡, 냉이 반찬등을 안주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삼월 삼짇날  명절을 대신하며 쉬어 가는 날이었다.어린 우리들은 장작이나 서너 집에 나눠 자리를 한 손님들 술상 심부름하는 것도 마냥 즐거웠다.  스무 가구도 안 되는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툇마루에 음식들을 받아 놓고 너른 마당에서 놀이를 하며 봄을 맞이했다. 뒷산 양지녘에 달려 가 찔레 순이나 , 서둘러 핀 꽃들을 꺾어 다 장식도 하고, 나눠 먹기도 하며...


 지금으로 치면 동네 축제라고 해야 할 것인데, 이제는 하늘을 찌르는 30 여층이나 되는 고층 아파트 촌으로 둘러 싸이고, 자투리 땅에는 공장이나 창고며 식당들이 들어서 모여서 놀 공간이나 아이들도 없단다.  몇 안 남은 칠순을 다 넘긴 동네 토박이 청년(?)들이 작은 마을 회관에 모여 음식 배달시켜 놓고 옛날 얘기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단다.

 
 95세에 돌아 가신 지 10년이 되는 지금,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살다 보니 어머님 생신인 삼월 삼짇날도 잊고 산다. 누구라도 기록과 행사로 남기지 않으면 다음 세대들에게는 전설로도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씁쓸하기 짝이 없다. 급속한 양적인 경제 성장에 밀려 향토의 문화들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한 시대의 조류 때문이었다.

 
 일본의 군국주의 자들을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경제대국이 되면서도 국가차원에서 작은 마을들까지 향토축제를 권장해 지원하고, 지역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보전하고 서로 다른 지역민들을 초청해 함께 즐기고 가꿔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을 보면 배울 점이 많다. 동네나 지역 향토 축제에는 가능한 모든 참가자들이 전통 기모노를 입게 해서 옛스럽다. 한류를 자랑하면서도 우리 축제에는 한복을 입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의 행사 진행자들뿐이라 전체적인 축제의 모양새도 많이 형식적이고 멋적기도 하지만...


 축제까지는 못해도 대지에 움트고 꽃 피우는 봄의 자연을 제대로 알고 음미하며,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어 즐겼던, 그 정서는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보다 훨씬 나았지 싶다. 이제 위도가 고국보다 높은 캐나다에도 봄이 머지않아 꽃샘 바람과 함께 밀려 올 것이다. 막연히 공해 방지가 어쩌니 하기 보다는 움트는 자연을 생각하고 하루라도 즐기며 봄을 맞았던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움을 되새기며 봄을 맞았으면 좋겠다.


 오백년전에는 여성 특히 대 여섯살 꼬마 애기씨들이 담장 밖에 나가기 힘든 시대였지만  "난간 위에 꽃이 웃어도 웃음소리 들리지 않고, 숲 속에 새들이 울어도 눈물 보이지 않네!"라는 봄을 노래하는 싯구를 천자문처럼 읊었단다. 규방 규수들은 삼월 삼짇날 축제인 화전놀이에 나가 봄을 노래하는 시를 짓는 것이 화전놀이의 한 큰 이벤트 였단다. 문동이들의 과거시험에 비할 정도는 아니라도 가문의 자존심이 걸린 낭자들의 대결도 되었음직 하다.


 달포 전 태어나 첨단 뉴미디어 시대를 살아 갈 손녀에게 2, 3년 뒤에 이런 일, 봄맞이를 가르치고 실천하게 시도를 해보고 싶다.  엄마인 딸은 만 세 살에 가장 늦게 피는 누운 철죽이 만개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할매도 모르게 유치원을 조퇴시켜 태백산을 걸어 올려 보냈었다. 그후 매년 그렇게 했다. 역시 그때처럼 주변에서는 할매부터, 할배는 못말리는 꼰데라며 핀잔이나 주어 봄 맞이도 제대로 못하게 막지 않으려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기왕이면 아름답게 오는 봄을 멋지게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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