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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고양이 별에서 온 땅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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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8-17 09:01 조회6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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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인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                        



살아 숨을 쉬는 것 중에 하찮은 것은 그 어느 것도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깊고 큰 우물은 사람의 마음에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동물들도 아주 깊고 큰 우물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던 이전의 나는 동물에 관심이 없었기에 그들의 신비한 우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제라도 그 물을 퍼 올려 나의 목을 축이려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 신비한 세계를 들여다보려 한다. 현실은 너무도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아무리 눈과 귀를 막아도 여지없이 들려오는 뉴스에 숨 막혀 하고 있다. 편한 세상이라지만 그 편한 세상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은 저마다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반려동물이 주는 위안은 상상 그 이상이다. 반려 고양이인 땅콩이가 아파서 나 역시 함께 아파하며 일주일을 살았다. 말 못하는 녀석의 처지가 마냥 안쓰러웠고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픈 눈망울에 마음이 쓰렸다. 사 년 전, 생후 구 주된 새끼 고양이를 입양했다. 웅크려 앉은 모습이 껍질에 쌓인 땅콩 같았다. 생애 첫 고양이였고 동물에 대한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깨뜨린 내게는 소중한 생명이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병원에 입원하고 시술을 끝마치고 돌아온 녀석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쓰러져 곤히 잠들었다. 나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가만히 손을 뻗어 허공을 쓰다듬었다. 종일 긴장으로 지친 녀석이 놀라길 원치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간 낮에도 밤에도 병간호에 매달렸다. 세 가지 약을 여덟시간, 열두 시간, 스물네 시간 간격으로 먹이고 토하지 않게 했다. 고양이는 매우 깨끗한 영역 동물이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먹을 것을 매우 탐내지 않으며 적당한 양의 사료를 알맞게 자신에게 공급할 줄 아는 완벽한 습성을 가진 동물이었다. 막상 아프니 땅콩이는 배변 실수를 하였고 어딘가로 숨으려 했다. 어느 날 새벽, 시술 후 삼 일 동안 정상적인 배변을 보지 못하면 다시 엑스레이를 찍고 더 큰 수술을 해야 한다던 마지막 날이었다. 병간호에 지쳐 소파에서 구기고 자던 나는 어둠 속의 작은 움직임에 손전등을 켰다. 땅콩이는 후미진 구석 테이블 아래에 놓인 겨울에나 이용하는 자기의 숨숨집 앞에 쪼그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나는 주르륵 눈물이 나왔다. 자꾸만 실수하는 자기를 땅콩이는 자책하고 있었다. ‘아, 정말로 땅콩이가 아프구나!’ 자꾸만 숨으려 드는 땅콩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곧 괜찮아질 거야. 이제 아픈 거 나아질 거야.’ 땅콩이는 내 품에 안겨 그렇게 사랑과 안정을 느꼈나 보았다. 까만 별 같은 눈망울로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땅콩이에게 따뜻한 키스를 해주었다. 아침 일찍 땅콩이는 정상적인 배변을 하였다. 그리고 아프기 이전의 움직임을 회복하였다. 그동안 눈치를 보던 세 동생들, 네로와 미오, 그리고 베베도 기쁜지 땅콩이의 주변을 돌며 서로 뽀뽀를 해댔다. 녀석들은 저마다 자신의 우물에서 시원하고 청량한 물을 퍼올려 서로에게 끼얹으며 땅콩이의 회복을 축하했다. 한바탕 녀석들이 피워대는 수선에 털 물결이 찬란하게 눈부신 아침 햇살에 파도처럼 일렁였다.  

        

어느 날, 조물주가 당신이 만든 세상의 한 모퉁이, 바위 하나를 들춰본다면 그 안에서 나는 우리 네 마리의 고양이들과 질서정연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으리라.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며 삶의 틈바구니에서 찌들지 않고 당당히 현실을 마주하고 버티어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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