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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거짓말과 참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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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0-19 16:27 조회5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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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참말 사이

 

 서울의 지하철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바삐 걷는 사람도 느리게 걷는 사람들도 함께 섞여있다. 광화문을 거쳐 송현정원(미대사관 직원들의 사택이었던 곳이 철거되고 담장이 헐려 광장이 되었다.)을 지나 종각역에 있는 종로서적에서 책 한 권을 샀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저

 한나절을 다니느라 다리도 아파서 지하철 내에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힘없이 걸어가는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예전 같으면 집에 있을 노인들이 불편한 다리를 끌고라도 외출을 하고 친구를 만나는 모양이다. 앞으로 노인인구가 점점 더 늘어나면 아마 지하철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반 이상이 이런 노인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상봉 역에서 환승해서 경춘선 갈매를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더러 서 있는 사람들이 있을 뿐 붐비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지하철 통로에 있던 잡화점 가게를 거의 없애고 열차 내에서도 구걸하는 사람들이나 장사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형편이 나아저서라기 보다는 단속을 철저히 한 결과이다.

 열차 내 저편에서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 아빠가 몸이 아파서 누워 있어요. 도와주세요. 천원입니다.” 

 그녀의 손에는 밤양갱과 초콜릿이 들여 있었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이쪽으로 왔다. 사주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다른 데를 보면서 무관심해 보겠다고 작정하고 있는데 내 앞을 지나가는 여인을 보고 흠칫했다. 도저히 구걸을 할 사람의 모양새가 아니었다. 오십 전후의 나이에 곱게 빗은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은 그녀가 예전부터 어려웠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다.

 그녀의 구걸에 동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동안 수 없이 가짜 동냥에 속아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팔고 있는 물건은 마트에서 사더라도 그 값은 주어야 할 것이다.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사람의 물건을 팔아달라는 것인데 이렇게 차갑게 대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몇 발자국을 지나간 그녀를 소리 내어 불렀다. 

 “여보세요! 여기요.”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서 밤양갱을 받아들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잠시 환한 미소가 스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그녀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앞을 지나가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얘들 아빠가 몸이 아파서 누워 있어요. 도와주세요. 천원입니다.” 

 

 그녀는 지나가고 멀어져 가는 뒷모습이 힘없는 목소리와 함께 사라졌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갑을 열고 천 원짜리 오천 원짜리 만 원짜리가 있는 중에 애써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던 내 모양이 너무 야박하게 여겨졌다. 그녀를 돕겠다면 천 원짜리 물건을 사주어 얼마나 보탬이 되었겠는가. 그래도 아무도 사주지 않는 열차 안에서 살기 어려운 한 여인을 돕겠다고 단 돈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든 것이 도리어 창피한 일이 아니던가.

 설령 그녀의 말이 거짓이라도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남 앞에 동냥 길을 나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한 동기가 없고서는 차마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정말이라면 그녀가 지나가는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몰인정한 사람들이 되고 만다. 어느 날 갑자기 집안의 가장이던 남편이 병으로 쓰러져 도움 받을 길이 없는 형편이라면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갈 길이 너무나 막연하지 않았을까. 당장 끼니조차 감당하기 힘들다면 내가 나서서 차라리 동냥이라도 해야 되겠다고 결심한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천 원짜리 물건 하나를 팔아달라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복잡하고 이해타산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말은 거짓일거야, 다른 일도 얼마든지 있는데 난데없이 무슨 구걸을 하러 나서나 하는 등등으로 냉혹하고 몰인정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런 어려운 형편에 처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넘쳐난다. 

 그녀의 간절한 호소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거짓일지라도 모르는 척 속아주고 싶다. 거짓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거절하기 보다는 속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을 기우리는 것은 전연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심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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