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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신간 소개] ‘정과정鄭瓜亭의 『청산별곡』 고증考證’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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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0-25 22:34 조회5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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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돈 시인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상당히 오랜 시일과 고구考究 끝에 『청산별곡』을 고증하는 책 한권을 상재上梓하게 되었다. 밤늦은 대학도서관으로 도시락을 챙겨주던 아내가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이토록 고된 일을 굳이 마다않는 이유가 개인의 명예 때문인가요? 아님 책을 팔아 부富를 얻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미 둘 다 답이 아닌 줄은 5년 전쯤 700권을 발행한 시집마저 절반 넘게 방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곰팡이 쓸어가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었으리라...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말릴 수는 없었겠지만, 노년에 몸이라도 상해 들어 누울까봐 염려가 되는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내심 이번 일만큼은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다짐하기를 고전문학과 같은 선대의 정신문화가 베일에 가려져서 그 진면목을 알 수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즉 학문적인 진의眞意를 올바로 이해하고 숨은 가치는 존중되어 제 값으로 보존하는 것이 후손된 우리의 의무요 도리가 아닐까 하는 사뭇 역사적 당위성을 내세우면서 본고를 기술했다. 그런데 출판사의 광고가 없어 그런지 책을 내놓고 난 2주가 지나도록 결과물에 대한 희소식이 뜸하다. 약간은 뻘쭘한 필자의 모양새로 스스로 책 내용을 조금 소개하면 이러하다. 


먼저 『청산별곡』 시가는 다름 아닌 고려조의 척신戚臣 과정瓜亭 정서鄭敍임을 밝히고 싶다. 이미 유일하게 작가가 밝혀진 작품 『정과정곡』으로 잘 알려진 과정瓜亭은 동래와 거제를 오가며 무려 20년에 가까운 유배를 체험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이른바 『청산별곡』을 통해 토로吐露하게 된다. 이를테면 자신의 무고함을 밝힌 시적 표현에서 보면 『정과정곡』에서는 ‘벼기시더니 뉘러시니잇가 過도 허믈도 千萬 업소이다’라고 했는가 하면, 『청산별곡』에서는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서 우니노라????’라고 하여 시기와 모함으로 희생된 일관된 심정을 털어놓았다.


화자(瓜亭)가 노래한 돌의 제재는 거제도 둔덕기성의 석환군石丸群을 연상하리만큼 사실적이며, 사료史料에 의하면 돌에 맞았다는 사실은 비유적으로 ‘정서는 곤장을 때려 동래로 귀양보냈다(杖流鄭敍又東萊)’는 기록과도 일치한다. 나아가 적소謫所에서 지내는 밤을 화자는 ‘오리도 가리도 업슨 /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라고 밝힌 점에서 낮 생활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더욱이 화자(瓜亭)가 『정과정곡』에서 자신의 처지를 언급한 ‘산山 접동새 난이슷하요이다/ ’라는 표현처럼 『청산별곡』에서는 ‘우는 새’를 두고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라고 우는 일과日課의 슬픔으로 대변한다. 이 새(鳥)는 다른 문인들이 [정과정鄭瓜亭]으로 소개한 글에서도 ‘정자 우엔 우는 새 정자 아랜 밝은 달’이란 묘사에서 드러나는 새와 유사하며, 이 정자는 ‘오이 밭(에>외)’을 의미하는 에정(瓜亭)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청산별곡』의 형태적인 구조를 ‘가던~, 가다가~, 가다니~’라는 일련의 삽입가요의 합성시가형식으로 볼 수 있는 점인데, 이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즉 중세어의 ‘ᄀᆞᆮ다, 갇다(收‧斂)’의 활용으로 보게 되면 ‘ᄀᆞᆮ‧갇+던>가던, ᄀᆞᆮ‧갇+ᄋᆞ가>가다가, ᄀᆞᆮ‧갇+ᄋᆞ니>가다니’와 같은 형태구조로 판명된다.


‘가던 새’에서 ‘새’는 ‘僿 사=새’로서 임춘林椿이 과정瓜亭의 시에서 차운한 내용을 통해 밝혀진 ‘한가로이 사노라니 여가가 많아 장구長句를 찾고 또 선발했네, 느낀바 심정을 글에다 부치니, 잡다한 내용이 종이마다 가득하네’라는 내용의 자서전적 기록과 상통한다고 본다. 즉 조선시대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이란 문헌처럼 려조(麗朝)에 이미 과정瓜亭은 시와 글을 ‘가려(갇다) 뽑거나 거두(收集)어서’ 그의 문집 『습기잡서習氣雜書』로 묶었다는 얘기가 된다. ‘새’는 곧 ‘사(僿) 사설(僿說)’로서 과정瓜亭이 스스로 밝힌 ‘잡다한 글, 자질구레한 구전口傳 자료’가 될 것이다.


나아가 그 문집의 취지(跋文 성격)와 내용의 일부가 『청산별곡』의 원문 가운데 삽입시가에 해당하는 가칭 「전리지곡」(제 3장 7‧8장)이라고 간주하면, 이를 별도의 시가로 유심히 살펴 볼 때 『정읍사』와 『찬기파랑가』 등의 소개이거나 의역시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이다. 참고로 필자는 현존하는 『정읍사』를 솟대쟁이패 ‘줄타기’의 연출자인 줄광대(어름산이)가 부르는 「줄소리‧줄노래」이거나, 줄타기 전 주과포酒果脯를 두고 지내는 ‘줄 고사告祀’ 의식의 「축원」 또는 「고사告祀 소리」로 보고 있다. 


각설하고 밴쿠버에 사는 정봉석 선배님도 「동래 정씨세덕고」를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격려를 주신다. 정서가 귀양 가서 먹었다는 굴인 ‘나ᄆᆞ자기 구조개’를 필자는 동래의 ‘남내포南乃浦 즉 남촌南村’의 ‘작개>작애>자개’라는 조군돌의 장소로 보았다. 현 부산 용호동 근처 자갈치 시장이 ‘작개>자개’라는 ‘조군돌(작은 돌‧자갈)’ 지역이었으리라고 본다.


이처럼 고전의 연구가 과거 시간 속에 잠자는 옛것이란 고루한 사고 속에서만 사로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비로소 살아있는 현실의 실체로 걸어 나올 수 있었던 힘은 역시 작가와 당시의 역사적인 사료가 작품의 원동력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산별곡』이란 작품 외에도 화자(瓜亭)는 오랫동안 배소에 머물러야했던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선대의 글을 모아 3권의 문집(習氣雜書 또는 瓜亭雜書)으로 남겨놓으려고 한 노력에 의미를 두려고 했다. 


논고에서 『청산별곡』의 화자(瓜亭)가 지향했던 선대의 문학작품에 대한 체취를 느끼려는 방편의 일환으로, 가칭 「전리지곡田里之曲」이라고 명명해온 독립시가적인 성격에서 여러 통로의 시도를 통해 산 입김을 불어넣어보려고 애썼다.


비록 소실된 과정瓜亭의 저서에서 여러 측면의 옛글이 수록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청산별곡』을 해석하고 대하는 태도 또한 상당한 국문학적 가치와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뇌가로 된 10구체 향가작품 『찬기파랑가』에도 화자(瓜亭)가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짐작했으며, 전래민요나 설화를 바탕으로 가칭 「전리지곡」을 이해했을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정瓜亭의 저서를 대신해서 이러한 『청산별곡』의 합성시가와 같은 성격의 일면을 통해 보게 되는, 작품의 내용 속에서 추측되는 선대의 작품을 모아 엮었던 사례事例야말로 또 다른 값진 작품유형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우리 문학사의 긴 앞날을 내다본 과정瓜亭의 시공을 넘나드는 탁월한 안목이었으므로, 후손된 우리는 어떤 평가로든 『청산별곡』 작가에게 합당하게 되돌려 보답해야할 관심이자 귀중한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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